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마음을 수평선에 걸어둔다 잘라낸 손톱이 아쉬운 낱말처럼 다시 자라난다물 젖은 문장을 뒤적거리는 가마우지들과 풀렸다고 생각하면 엉기고열렸다고 생각하면 막히는 글줄들, 그리고 자판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동안여지없이 자라나는 손톱들눈치 없이 깜빡거리는 커서와걸핏하면 캄캄하게 저무는 노트북을다 식은 커피 향기 아래 펼
- 김영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마음을 수평선에 걸어둔다 잘라낸 손톱이 아쉬운 낱말처럼 다시 자라난다물 젖은 문장을 뒤적거리는 가마우지들과 풀렸다고 생각하면 엉기고열렸다고 생각하면 막히는 글줄들, 그리고 자판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동안여지없이 자라나는 손톱들눈치 없이 깜빡거리는 커서와걸핏하면 캄캄하게 저무는 노트북을다 식은 커피 향기 아래 펼
어디에서든 수직으로 서야덜 맞는다는 걸머리가 깨지기 직전에깨닫는 아둔한 못다시 뽑히지 않을 만큼만뿌리박고서박힌 채로제 뿌리를 생각하면그래도 부모는 철광석수천만 번의 담금질로 태어났으리세상을 향해 박았던못난 원망의 못내 혓바닥으로 박은 못된 못들은그대 가슴에서 이물질로 뼈를 찌르고 그대가 박은 수많은 못들도어느 가슴속에서 피 흘리며 삭고 있으리죄인들
가을길 들녘에 핀키 큰 코스모스맑은 가을 하늘만큼청초하고 아름답게소슬바람 따라 춤춘다.오곡의 숨결이 살포시 전해오는 조용한 미소가을 끝에 들녘이 허허로우면 가을 바람 따라조용히 떠나가는 여인의 뒷모습 같네.
해인사에서 주식을윤회와 탈윤회가 부처님 안에서 하나라고 법장스님 말씀하실 때 고개를 끄덕거린 후 해우소 가는 길에 뒷마당에서 휴대전화 앱으로 주식 시세를 확인하고얏호! 그 기쁨이 아니었으면일주문에서 봉황문까지빈 지게를 짊어진 모양으로허위허위 올라가는 노스님의 걸음에서 색을 비운 세상을보지 못했을 것이다살아있는 것은 쉬지 않고 색을 뿜는데죄
“너 이런 거 쓰면 안 된다.”윤리 교사가 나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 고교 2학년 때였다. 그때 동료 학생들이 수학여행 떠났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으나, 대세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춘기 항심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아이들이 없는 교실에 혼자 등교한 나는 칠판에 무언가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쓴 것 중 하나가‘
서재에서 꽤 많은 글을 쓴다. 직장 업무인 신문 기사를 만들고, 문학 작품을 끄적거리기도 한다. 창작 산실이라고 하긴 민망하지만, 그 비슷한 일이 서재에서 벌어진다.몇 년 전 이사를 올 때 아내가“이 방은 당신 서재로 하지요”하고 말했을 때,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했다. 집안 권력 서열 1위의 아내는 방 하나를 내게 떡 내주면서도 생
부쩍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어디서든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읽을거리 볼거리들이 많이 늘어난 탓이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문학의 난해함을 먼저 말한다.난해함은 소설보다는 시에서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특히나 요즘 일부 젊은 시인들의 시는 정말이지‘난 해’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시가 언제 그렇게 우리에게 친근했던 적이 있었던가?시는‘
서울·인천 장정이라고 불렸다. 논산에서 기초훈련을 마치기 전까지 이등병 계급장도 없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대에 배치되면서 우리는 뺀질이 기수로 바뀌어 불렸다. 평균 신장 180센티미터 내외의, 수도권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입대한, 이른바 조상님과 부모를 잘 만나 큰 고생 없이 살아온 인생들일 거라는 선입관을 담아, 몇몇 선임들이 한 번
오늘은 유대계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타계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중편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를 내세워 인간이 동물로 퇴화하는 내용을 담은 전위적이고 독특한 문학세계를 개척했다.그는 한낱 ‘과거완료형’ 작가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카프카적’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리는 ‘현재진행형’ 소설가이다. 요즘 우리나라
요즘은 산책길에서 기다란 나뭇가지만 보여도 화들짝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겨울잠 자던 뱀들이 따뜻한 햇볕을 쏘이려고 산책 나오는 일들이 많아졌는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바닥엔 지난가을 떨어진 마른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무심코 길을 걷다가 사르륵 소리가 나서 쳐다보면 마른 낙엽 위로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