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이른 아침이다. 가는 빗방울이 가로의 태극기를 촉촉이 적신다. 유난히 길었던 지난 겨울의 추위에, 메말랐던 대지의 흙냄새가 코끝을 적신다.심호흡을 해본다. 휘날리는 태극기의 환상이 이 아침에 떠오르는 것은 뜻깊은 날이기 때문이리라. 얼었던 육신이 녹는 듯, 이날이 우리의 자유를 찾은 날처럼 느껴진다. 가랑비도 이 자유를 재촉하는 듯하고….천변으로 내
- 정경수
삼일절 이른 아침이다. 가는 빗방울이 가로의 태극기를 촉촉이 적신다. 유난히 길었던 지난 겨울의 추위에, 메말랐던 대지의 흙냄새가 코끝을 적신다.심호흡을 해본다. 휘날리는 태극기의 환상이 이 아침에 떠오르는 것은 뜻깊은 날이기 때문이리라. 얼었던 육신이 녹는 듯, 이날이 우리의 자유를 찾은 날처럼 느껴진다. 가랑비도 이 자유를 재촉하는 듯하고….천변으로 내
긴 아파트 담 밑으로 이어지는 사철나무 경계수가 대견스럽다. 콘크리트 담을 따라 1m쯤의 폭으로 덧대서 이어지는 경계수들은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괘념치 않고 묵묵히 사철 푸르름을 지켜갈 뿐이다.대개의 아파트들은 콘크리트 담으로 구획되지만 다시 그에 덧대어 경계수인 사철나무를 심은 것은 담만으로 경계를 구획하는 것이 미덥지 않거나 미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던 당신이 내게 핸드백을 건네면서 환하게 웃었습니다. 붉은 잇몸에 하얀 건치를 드러내면서.난 참고 참았던 배뇨의 시원함도 더없이 좋았지만, 당신의 미소에 그만 옥죄었던 마음이 스르르 무장해제되었답니다. 미리 입국비자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 라파스공항에서의 입국 절차는 왜 그리 까다롭고, 한없이 느리던지요. 게다가 하필이면 내 바로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서해로 뻗어내려 변산반도국립공원이 형성되었다. 또한 산·들·바다가 반반으로 접경하고 있어 아름다운 육·해 공원이라 할 수 있다.부안 변산은 예부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 온 지역이다. 변산은 특이한 지명이 많다. 원래 현계산, 선계산, 봉래산, 영주산, 능가산, 변산 등으로 명명되어 왔다.변산에서 두 번째로 높고 덕성스러운 산으로 불
손가락 하나로 온 세상의 소식을 끌어올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뉴스, SNS, 끝없이 재생되는 짧은 영상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고, 넘쳐나는 정보 덕분에 한순간도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다.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든 사이버 공간에서 ‘친구’는 많지만, 불쑥 전화를 걸어 “나 힘들어”라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모방심이 강하다. 아이들은 만화나 영화, 드라마, 탐정소설 등에 나오는 내용이나 주위 환경 속에서 새롭게 듣고 보고 느낀 것이 있을 때에는 강한 호기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무분별하게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언행은 절대적으로 모방한다. 따라서 한집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은 은연중에
사랑하면 주고 싶고, 받으면 기쁘고 감사한 것이 선물이다.내가 엄마의 자궁을 통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나는 선물 속에 안겨 있었다. 부모님은 내게 하늘 같은 선물이며, 나 또한 그분들의 사랑으로 찾아온 선물이다. 게다가 햇빛과 공기, 물과 불, 대자연과 계절의 순환까지-, 그 무엇 하나 내가 값을 치르고 받은 것이 아니다.젊은 날엔 이 소중한 것들이
화사한 봄날이다. 낙동강변 벚꽃축제가 일주일 연장되어 이번 주말에 마침표를 찍나 보다. 이 축제가 시작된 이래 기간을 늘려서 2주일간 축제를 연 건 처음인 듯.전국적인 현상이긴 했다. 날짜를 잘못 예측하여 꽃 없는 축제를 전국적으로 펼친 올해이다. 예년과 비교하여 해마다 당겨지는 꽃 피는 시기를 예상하여 3월 말에 초점을 맞췄던 것. 얄궂게도 날씨가 사람들
애견센터 케이지 안엔 젖비린내 나는 2개월 미만 강아지 열 마리 정도가 분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면 슬며시 눈을 피하는 녀석도 있고, 눈을 맞추며 끙끙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방금 들어왔는지 푸들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애달프게 울음소리를 냈다. 가까이 가보니 눈물도 흘렸다. 생애 최초 불안과 두려움에 노출된 어린 새끼들이었다. 한 구석에
자, 보시라. 내 이름은 강현남이다. 이름부터가 얼마나 든든한가. 강(江)처럼 유구하고 현(賢)명하며 남(男)자다운 자. 내 입으로 말하기 좀 쑥스럽지만, 나를 거쳐 간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를 ‘현남 오빠’라고 불렀다. 그건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일종의 성호(聖號)랄까, 아니면 ‘인생무료상담소’의 VIP 회원권 같은 것이었다.나는 그녀들보다 딱 반 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