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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어른을 울게 했던 기억

6월, 아스라한 기억의 슬픈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육이오, 동란은 끝났단다. 미군이 임시로 머물고 있던 흙먼지 날리는 차도 옆의 미군 막사 그 부대가 떠나간 후 집 앞의 공터는 안전한 놀이터였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무슨 놀이를 하는지까지 집에서 다 알 수 있었다. 동무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빨리 나가려고 숙제는 일찍 해놓고 밥도 빨리 먹고 밖의 소리에 전전

  • 한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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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24.7 665호 9월의 바다

지난여름. 새로운 직장을 미리 알아보기로 했다. 직장동료에게 커피숍 창업을 물었더니 주변에 보이는 게 커피숍이라며 말렸다. 대학 동기에게 커피숍은 못 하겠다고 하니 커피 원가가 얼마나 되겠냐면서 커피숍을 권했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침, 경이 삼척으로 낚시하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경은 고등학교 친구이다. 제대 후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면서 광명으로 이사

  • 박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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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4.7 665호 물방울의 변주

스며들며 흘러내리던 한 점, 곧 떨어질 듯 아스라이 매달려 있던 투명체가 눈을 사로잡는다. 어쩜 저리 영롱할까. 뚜우욱 하고 떨어질 듯도 하지만 끝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린 그림은 아닐 터. 동양의 무명 화가를 주목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관심과 생활고에 시달린 화가에게 남은 것은 알량한 캔버스와 열정뿐, 타국은 이방인에게 지독한

  • 김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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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4.7 665호 노인을 위한 변론

그 여자는 할머니란 소리를 들은 지도 꽤나 오래된 노인이라고 해 두자. 계절에 비유하면 가을도 지나 백설이 분분이 쌓이는 한겨울쯤이라고 할까. 그동안 그 여자는 열심히도 살아온 것 같은데… 오늘 새삼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꿈길같이 희미하고 잠깐 순간처럼 짧게 느껴진다. 그 긴 세월이 왜 단축되어 짧고도 희미하게 기억될까. 망각의 그림자가 그의 뒤를 따라와서일

  • 방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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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24.7 665호 나비의 겨울 밤

여동생들은 한 주 전에 친정집에 다녀갔기에 명절에 올 사람은 남동생뿐이었다. 이번 설에는 나도 가게 문을 열기로 했기에 남동생과는 전화로만 인사를 했다. 며칠 후 아버지 제사 때나 얼굴 보자고 하니 동생은 하필 그날 일본 출장이 잡히는 바람에 제사에 참석을 못한다고 했다. 모두 모이면 웃을 일이 많아 창밖으로 새 나가는 고성이 걱정될 때도 있지만 그래봐야

  • 이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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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4.7 665호 절규

어느 햇살 좋은 봄날,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면서 아득한 청년 시절, 어둡고 두려웠던 과거를 회상한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주위가 산만스러웠다. 열대의 정글 지대는 야자수잎들이 축 늘어져 더위에 지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통행하지 않은 좁은 숲길은 열대림이라서 습기가 많다. 그 길을 걸으면서 고향 생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한다.

  • 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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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레퀴엠

중학교 때 일이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명동으로 걸어오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머리가 쾅 울리며 발목이 잡혔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리니‘대한음악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슴을 흔드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가 긴 회랑을 걸어 어둠에서 환한 곳으로 나오는듯한 묘한 기분이

  • 명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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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머슴 아버지

어느 작가의 「아버지 노릇」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글 속의 아버지는 IMF 위기에서 오는 대량 해고와 조기퇴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며 발버둥치는 삶을 살아왔다. 월급날이면 얄팍한 봉투였지만 가족들의 군것질거리라도 사들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금융전산화’로 월급이 봉투째 통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즐거움도 없어졌다. 크고 작은

  • 윤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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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유년의 무의식이 우리를 이끈다

첫 수필집을 출간한 작가의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녀는 2019년 3월부터 우리 수필 교실에 나온 최윤실 작가였다. 수필 공부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신인상을 받고 4년여 만에 첫 수필집을 내었다. 그사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채 2년이 안 되었다.그간 180여 편의 글을 썼다는데 그중 삼분지 일 정도만 선하여 책으로 엮었다. 작가들 대부분이 첫 수필집에서 가

  • 김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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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 665호 차창

수원 평생학습관을 간다. 오목천 버스 정류장에서 700-2번을 타고 벚꽃길 황구지천 가로질러, 환승역을 거쳐 가면 옛 고등동 사무소가 보이고, 모교인 수원여자고등학교를 지난다. 17살이 된다.팔달산 서장대 길에 만나는 경기도지사 관사는 하얀 건물 그대로 시민 공간인 도담소, 근대 문화유산이다. 화서문 지나 비둘기도 놀러 나온 장안문 공원에 눈향나무가 바짝

  • 김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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