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득한 별은 어디서 살다가 왔을까. 그녀가 사는 동안 잔별들이 무리 지어 황금물결이던 날은 처음이었다. 손에 손을 잡은 별은 금빛 날개를 펼쳐 어둠을 힘껏 밀어냈을 것이다. 긴 머리 나풀대던 여자와 귀에 이어폰을 꽂은 남자는 죽도봉 연자루에서 환호를 지르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흔든다.“하늘이 우릴 축복하려나 봐, 우리 결혼할까?”여자의 말에 남자의
- 이송연
하늘 가득한 별은 어디서 살다가 왔을까. 그녀가 사는 동안 잔별들이 무리 지어 황금물결이던 날은 처음이었다. 손에 손을 잡은 별은 금빛 날개를 펼쳐 어둠을 힘껏 밀어냈을 것이다. 긴 머리 나풀대던 여자와 귀에 이어폰을 꽂은 남자는 죽도봉 연자루에서 환호를 지르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흔든다.“하늘이 우릴 축복하려나 봐, 우리 결혼할까?”여자의 말에 남자의
1신입사원 안승호가 부서로 배치된 이후 김인문 부장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승호는 기본적인 업무 능력이 없다. 김 부장은 안승호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8명의 부서원을 대상으로 일일이 업무 분담을 했지만, 그에게 맡긴 일은 도무지 불안하다. 가장 쉬운 일을 가장 적게 주었지만, 그조차 실수 연발이다. 안승호가 단독으로 업무를 맡아 진행할 능력이
폭음과 함께 GP는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내 몸이 부서져 허공에서 분해되는 그런 비통한 심정이었다. 아, 혈기 왕성했던 젊음이 혼신을 다해 열정을 쏟아 몰입했던 곳 250 GP. 오래되어 낡은 노트 속에는 젊었던 시절, 전쟁으로 사라져 흔적만 남은 아무도 없는 외가 마을을 가보고 느끼게 된 얘기들이 소
달을 보러 빌라의 옥상에 올라갔다가 하마터면 처음 보는 여인의 발목을 부러뜨릴 뻔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보니 대뜸 하얗고 둥근 달이 이마 너머 저쪽 하늘 위에 높게 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감동과 함께 성큼 맞은편 난간으로 다가갔는데 갑자기 발 아래가 물컹하더니 여인의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난간 아래쪽에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무심히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조상님의 묘소가 있는 산등성이에 잘생긴 나무들은 쓸 데가 많아 다 베어가서 없고, 볼품없는 등이 굽은 나무만 남아 더 중요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부모를 모시고 효를 다하며 사는 게 당연한 일이고 미덕이었지만, 가족의 유형이 대가족에서 핵가족화되어 가면서 요즘은 모시고 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시대가
어릴 적에 염상섭의 소설 「두 파산」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두 파산’은 광복 직후 경제적, 도덕적 가치의 혼란 속에서 살아간 정례 모친의 물질적인 파산과 고리대금업을 했던 김옥임과 교장의 정신적인 파산을 의미한다.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기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31억 원의 로또에 당첨된 한 영국 여성이 8년 만에 모든 돈을 탕진하고 이
우연히 누군가 쓴 브런치에 올린 기사가 눈에 띄었다. 나의 8번째 개인전, ‘루시부파긴을 잡아먹는 밤’을 감상하고 쓴 글이었다.“그림은 저의 삶의 궤적이지요. 각각의 궤적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반딧불이나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해요. 제 삶의 궁극적인 의미죠.”<코람데오>라는 작품을 인터뷰하면서 설명했던 나의 말이었다. 종교적인 주제
아버지는 오늘도 치킨을 사 오셨다. 역시나 오늘도 술을 거나하게 드신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누르신 늦은 밤 초인종 소리보다 더 강력하게 잠을 깨우는 것은 치킨 냄새였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셔서는 신발장에서 술기운에 비틀거리시며 뒷굽이 약간 주름진 구두를 겨우 벗으셨다. 그리고 치킨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를 높이 들어 올리시고는 소리치셨다.“애들아! 치킨 사
또르르 똑 또르르 똑…. 빗물 소리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물소리 장단에 가만가만 몰입을 하다 보니 일간 소란했던 마음자리에 사부자기 평화가 깃드는가 싶다. 하마터면 이 여명의 새벽을 살아서는 경험하지 못할 뻔도 하였다.새벽 단잠에서 깨어난 나는 지금 내 친구 ‘쬐맹이’를 다시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별명이 ‘쬐맹이’였던 이 친구는 여중학교 시절 고만고만한
운명이 궁금했다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 시이모님들이 집에 오셨다. 그날 어머님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얀 반죽을 치댔다. 끓는 육수에 떼어낸 반죽은 목련 꽃잎처럼 포르르 떠올랐다. 이내 거실의 둥근 상은 희끗희끗한 시이모님들의 머리로 뒤덮였다. 시이모님들의 화제는 시간이 갈수록 발효된 빵 반죽처럼 며느리에 관한 이야기로 부풀어 올랐다. 이를테면 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