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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를 살린 똘똘이의 슬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차원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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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 사람들이 ‘보배 할매’라고 부르는 건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노인을 존경하는 뜻으로 그 말이 통했습니다. 인정이 많아서 누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서 자기 일처럼 돕는 성미를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늘 산바람도 아침 인사를 하러 다가와서 살랑거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자주 찾아왔습니다. 늘 바지런히 세수를 하고 ‘얼레빗’과 ‘참빗’으로 머리를 다듬은 뒤 기도를 드렸습니다.
“해님! 또 이처럼 밝은 빛을 주십니다.”
그리운 손녀를 만난 듯 반기면서 곧 햇빛을 안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부와 성모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러면서도 가슴속에는 남모를 고통이 숨어 있었습니다. 벌써 8년이 지났는데, ‘민지’가 마을에서는 하나뿐인 중학생 3학년, 세상에 뽐낼 만한 금싸라기 손녀를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그는 힘든 집안일을 도맡았었습니다.

 

할매는 잘 키워서 시집 보낼 때 밑천으로 쓰려고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키웠습니다. 시골에서는 큰 재산입니다. 송아지가 설치면 웃으면서도 걱정했습니다.
“저게 철부지라서 설치는데, 철들면 좀 의젓해지겠지.”
송아지는 잘 자랐습니다. 민지도 틈틈이 먹이인 꼴을 챙겼습니다. 마구간 청소는 소똥 냄새가 고약하고 벅찬 일이었지만 기를 써서 치웠습니다. 그런 걸 보면 허리를 펴고 바라보던 할매는 대견스러웠습니다.
“내 강아지는 금싸라기 보물이다.”
감탄과 기쁨, 가슴속에서 솟는 진심이며 뜨거운 사랑이 묻었습니다.

 

그날 오후, 철딱서니 없는 게 이웃집 배추밭에 들어가서 짓뭉개고 뜯어먹었습니다. 그걸 보고는 기겁했습니다.
“저 망나니 좀 보게. 이놈아, 그건 김장감이야. 넌 풀을 뜯어야지?” 
까무러치게 놀라면서 한탄을 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지어서 너 같은 망나니를 만났나 보다.”
주인한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늘에 느닷없는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할매는 비를 맞고 집에 가서 한숨만 쉬면서 송아지를 원망했습니다.
“저걸, 2년은 더 키워야 철이 들 텐데, 당장 팔아치울까 봐.”
“내 힘으로는 널 못 기르겠다. 헛욕심을 부렸나 보다.”
그 결심은 다음 장날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내다 팔아버렸습니다.

 

송아지가 사라지면서 할매는 두리번거리며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시원한 오후, 대청에 누워 있는데 문 앞에서 난데없는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벌떡 일어나서 내다봤습니다.
“네가 웬일이냐.”
아담하고 하얀 개가 기다렸습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눈을 마주친 건 푸들이라는 종류인데, 뻣짱한 것만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 이름은 모릅니다.
“네가 어디서 왔니? 이게 꿈인가 모르겠다. 혹시 내가 쓸쓸한 줄 알고, 하느님이 보내주신 특별한 선물인가 보다.”
할매는 대뜸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얘야, 네가 어디서 날아왔지? 넌 눈이 똘똘해 보인다. 우선 이름이 ‘똘똘이’다. 네 주인을 찾아보자.”
그건 진심입니다. 꿈같다면서 두리번거려도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개한테 물어봐야 대답할 리 없습니다. 낡은 방석 1개를 댓돌에 내다 놓고 똘똘이를 불렀습니다.
“이게 우선 네 집이거든.”
똘똘이는 그 말을 고분고분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할매는 달력 귀퉁이를 3조각 잘라서 글을 썼습니다. 이를테면 주인을 찾는 광고 전단이었습니다. 핸드폰 번호도 적었습니다.
“똘똘이 주인을 찾아서 돌려보내겠습니다. 우선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걸 노인회관 앞과 길거리 벽에다가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개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귀여운 민지를 잃고, 송아지도 팔고 쓸쓸한데, 난데없이 나타난 똘똘이는 금쪽같았습니다.

 

그날 밤 할매는 꿈을 꾸었습니다. 작은 트럭에다가 쇠창살로 엮은 가두리 개집을 싣고 돌아다니던 개도둑의 트럭이 집 앞에 멎었습니다. 차가 앞집 큰개 누렁이를 훔치려고 실갱이를 하면서 문이 감깐 열린 틈에 잽싸게 도망친 똘똘이가 쏜살처럼 할매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똘똘이가 꼬리를 치고 다가왔습니다. 할매는 앞발을 들고 끌어안으면서 꿈을 되짚어보았습니다.
“너 고생해서 우리 집에 왔더군. 내 꿈은 틀리지 않는단다. 아마도 하느님이 보내주셨을 거다.”
비록 꿈인데, 할매는 그걸 똘똘이가 겪은 사실처럼 믿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면서 며칠간 걱정하던 시름이 풀렸습니다. 품에 안긴 똘똘이도 편안하게 할매를 쳐다보았습니다. 할매는 혼잣말로 찜찜하던 기분을 달래었습니다.
“똘똘아, 우리 집에서 함께 편안하게 살아야 할까 보다!”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똘똘이는 졸졸 따라다니면서 꼬리를 치면 그걸 반겼습니다.
“얘, 너 꼬리 떨어지겠다. 힘들겠네. 네 맘 잘 알고 있어. 이제 그만 흔들어도 돼.”
다시 한번 앞발을 싸잡고 안아주었습니다.
동네에는 약국이 한 군데뿐입니다. 다정한 홍 약사는 할매를 따라오는 똘똘이를 볼 때마다 챙기면서 반기며 정다운 말을 걸었습니다.
“하하, 똘똘이 손님도 또 약 사러 왔네! 예뻐라. 넌 귀한 손님이란다.”
그처럼 반겼습니다. 그러면 똘똘이도 답례 인사를 하는 듯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할매는 노인들을 괴롭히는 뇌경색을 앓기 때문에 약사는 큰 병원을 권했습니다. 그건 형편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그뒤 더 아파서 약을 지으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음식을 먹지도 못하면서 몸은 기운이 죄다 떨어졌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똘똘이가 연신 쳐다보고 갸웃거리더니 머리를 굴렸습니다. 저 혼자 빈 약봉지를 물고 쏜살같이 약국으로 달려갔습니다. 홍 약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똘똘이, 네가 어떻게 왜 이 약봉지를 물고 왔지?”
홍 약사는 곧 알아차렸습니다.
“와, 장하다! 할매가 더 편찮으셔서 네가 약을 지으러 왔구나. 기특하다! 개가 약 짓는 심부름은 난생 처음 보는 꿈같은 일인데.”
감동한 약사는 약을 지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똘똘이 입에 물려주고 또 한번 쓰다듬었습니다.
“어서 가서 약을 드려라! 좀 나아지실 거다.”
그처럼 들뜬 목소리로 일렀습니다.

 

똘똘이는 할매 곁에 가서 약봉지를 내밀고 컹컹 짖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목소리는 놀랐습니다.
“이게 웬일이냐? 아니 우리 똘똘이가 할매 약을 다 지어 왔어? 세상에나! 꿈만 같다. 네가 우리 민지 몫까지 하는구나! 고맙고 고맙다.”
할매는 와락 똘똘이를 끌어안으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약을 들고 정신을 차린 뒤 창밖의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런 기특한 일도 다 봤습니다. 똘똘이가 할매를 살렸습니다. 꿈만 같은데, 민지가 살아와서 똘똘이한테 뭉친 듯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잘 살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감사 기도를 드리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날 한낮인데, 집 앞에 난데없는 자동차가 멎는데 낌새가 이상해서 할매가 맨발로 뛰쳐나갔습니다. 낯선 트럭에 실린 개집을 얼핏 보고도 다짜고짜 호통을 쳤습니다.
“네놈들, 개도둑이지. 똘똘이는 하느님이 지켜 주신다. 빨리 꺼져.”
큰소리에 놀란 그 녀석들은 후닥닥 달아났습니다. 그때 다가선 똘똘이를 와락 끌어안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쇠갈구리로 낚아채려던 개도둑을 쫓아버린 큰 은총을 주셨습니다. 후련합니다. 더 잘 지키고 기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똘똘이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습니다. 그 마음을 읽은 듯 꼬리를 치며 똘똘이가 애교를 떠는데, 할매는 속내를 쏟아놓았습니다.
“할매가 잘했지! 똘똘이는 내가 꼭 지킬 거다. 딴생각 말고 잘 크렴.”
하늘에서 지켜보던 해님이 눈웃음처럼 더 밝은 빛을 쏟아 주었습니다. 산바람도 몰려와서 펄렁거렸습니다. 할매는 뜬금없는 힘이 솟아올라서 아픈 것도 죄다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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