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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9호 여우비

호랑이 장가들기 좋은 날선명하게 첩첩 포개진 섬들을 멀리서부터 하얗게 지우며 달려옵니다 이렇게 쨍쨍한 날이라 더 황당하여 당황스럽습니다만 긴 기다림 끝 에 이렇게 잠시라도 그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벅찬 행운임을 압니다기별도 없이 급히 왔듯이 금세 또 얼굴만 보여주고 떠나가겠지만 스쳐 가는 그대 뒷모습만이라도 족하기에 붙잡지 아니

  • 곽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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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9호 님을 위한 비가(悲歌)

산천을 피로 물들이던 총성이 멎은 지 오래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호국영령들그날의 전투화를 신은 모습 그대로어두운 산하에 누워 눈을 감지 못하고 있으리라 늦가을 차가운 햇살에 흐느끼는 님이여빈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별빛들소리 없이 숨어 울다 지쳐 잠든 지하방 이곳에서 고향 산천을 부르다 눈을 감지 못하고 잠든 님이여발굴단

  • 정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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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9호 공작산 가는 길에

은빛 좌운 저수지 맴도는상서로운 기류 속엔 그대의 머릿결 향기 싱그러운 들꽃 향 머금고 있었소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 아래 바람이 머물고 있을 때그대와 나, 옹이 박힌 발걸음 쉬어 갑시다 혹여 날아드는 새들 눈동자엔우리 부부가 아름다운 공작새 한 쌍으로 보일지도 모르잖소여보, 오늘 같이 좋은 날지금 누가 그림으로 그려 준다

  • 정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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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9호 1442계단을 오르다

살아오며 오르고 내린 계단의 수가 얼마나 될까 오른 계단은 여지없이 내려와야 했으니아직 내려 딛지 않은 계단의 수는 또 얼마나 되려나 처음에는 누구나 직각으로 오르다가어느 순간부터 예각으로 무너져내리기 마련이다 턱까지 차올라 더는 들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도계단의 모서리는 여전히무딘 단면을 무심하게 갈고 있었다 정상은 화려

  • 정용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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