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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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외출을 위해 후문 쪽으로 나서는데 눈에 띄는 트럭 하나. ‘칼, 가위 갈아 드립니다.’ 지난 명절 전에 오고는 처음이니 정말 오랜만이다. 잘 안 드는 칼과 가위가 생각났지만 마음과 달리 발은 신호등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예전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오던 트럭인데 이젠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그러고 보니 밤 껍질 깎아 주는 차와 함께 내가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장사 트럭 중 하나다.
칼보다는 가위를 훨씬 많이 쓰는 편이다. 살아가면서 가위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다. 하루에 가위를 쓰는 횟수는 생각보다 많다. 일단 집 안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가위의 개수를 살펴봐도 그렇다. 문구용 가위와 주방에서 사용하는 요리용 가위, 식탁 위에서만 쓰는 가위, 바느질할 때 쓰는 길고 날렵한 가위, 허드레 물건에만 쓰는 막가위, 뜨개질할 때나 소품 바느질할 때 쓰는 쪽가위, 그리고 머리 다듬을 때, 손톱용, 코털 가위까지… 종류도 많다.
어릴 때부터 가위질을 잘했다고 한다. 젓가락질을 잘해 세 살 때부터 콩을 하나씩 집어 먹었는데 종이를 오리는 건 더 잘해 어른들이 놀라셨다고 한다. 지금도 칼질보다 가위를 더 잘 사용하는 이유일 것 같다. 칼질은 아무리 해도 서툴고 손목도 아픈데 가위는 그럴 일이 없다. 음식을 하며 웬만한 식재료는 거의 가위로 자른다. 칼은 도마를 따로 꺼내야만 하기에 번거로워 잘 안 쓰게 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위가 편하다. 김치는 물론이고 대파나 고추 같은 채소, 고기와 생선 손질도 가능하다. 용도에 따라 전용 가위로 사용하면 더 위생적이다. 외식할 때 식당, 캠핑이나 펜션에 놀러 가서도 가위가 있으면 다 된다. 그만큼 편하고 흔하게 쓰인다고도 할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은 날이 무뎌지면 버리게 된다는 것인데 은박지를 자르거나 유리병 입구, 사포에 가는 방법 등 너무 많은 자세한 정보가 있으니 전문가인 ‘칼, 가위 갈아드립니다’ 트럭이 잘 안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생각해 보면 일생을 가위와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다. 태어나며 의료용 가위로 탯줄을 자르고 어릴 때는 문구용 가위와 놀며 공부한다. 커가면서 사무용 가위를, 또 바느질 가위를 쓰기도 한다. 서투르게나마 아이의 머리를 잘라 주고 싶어 이발용 가위를 사는 용기도 내보지만, 어른이 되어 가며 규칙적으로 방문하는 미장원에서 매번 만나는 게 된다. 식당이나 캠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도 바로 가위다. 이 가위가 없으면 숯불구이, 바비큐도 의미가 없다.
가위 팔자 중 상팔자는 엿장수 가위일 것이다. 어릴 때의 강렬한 기억은 물론이고 지금도 시골 오일장에서 운 좋으면 볼 수 있는 엿장수. 형형색색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신명나게 노래하고 춤추며 장꾼들을 모을 때, 그 투박하게 크고 덜그럭거리는 가위가 없으면 시선을 끌 수 없다. 그 가위는 부채춤을 추는 무용수의 부채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드러머의 스틱처럼 현란하게 리드미컬하다. 크고 둥근 손잡이로 툭툭 쳐서 잘라 주던 막대엿, 호박엿, 땅콩엿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기억은 기어코 입맛을 다시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트럭은 가 버리고 없다. 어느 장터에서 엿장수를 만나면 좋을 것 같다.
어릴 적 엄마가 반짇고리를 끼고 살며 손바느질로 만들어 입혔던 원피스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엄마 옆에 앉아 종이를 오리고 자르며 놀던 나는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단발머리 소녀였다. 가위를 달라면 뒤로 돌려 손잡이 쪽으로 드려야 한다는 생활 속 예절을 가르쳐 주시던 엄마는 홈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멋쟁이 여인이었다. 가위 하나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마법을 부리던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다. 가위는 안 좋은 표현이나 나쁜 뜻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흉기로 급변하는 칼에 비하면 안전한 편이다. 결코 나서지 않고 눈에 띄진 않지만 꼭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가위처럼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