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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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리기를 배우면서 나의 재능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는 했다. 10대도 아니고 지금 어떤 재능이 있는지 찾는다고 하면 어이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은 그리는 것도 감상하는 것도 잘 몰라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럴듯하게 그려보고 싶다는 꿈은 간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는 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았지만 더 절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재능이 있는 일을 할 때는 쉽고 신이 나지만, 소질이 없는 일을 할 때는 우울하고 힘이 든다. 재능이 있었다면 뒤처지지도 납작해지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스케치북과 필통이 든 에코백을 만지작거리며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수업에 가야지와, 가고 싶지 않다의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주에 한 가지씩 스케치를 완성했다.
딸아이보다 더 어린 선생님은 내가 흥미를 느꼈으면 해서인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각이 있다는 둥, 느낌을 잘 살린다는 둥 무엇이 되었든 칭찬거리를 찾아 말해 주었다. 더 이상 재능이나 소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입시생도 아니고, 화가가 될 것도 아니니까 즐기면서 하자고, 좀 못하면 어떠냐고 속으로 반복해서 읊조렸다.
글쓰기처럼 용기와 뻔뻔함이 필요했다. 기울어진 사각형, 찌그러진 원에 어색하게 그려진 원근감을 가지고 선생님한테 들이밀었다. 얼굴을 두껍게 만들어 부끄러움을 감추고 고쳐주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수정을 통해 더 잘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잘 그리는 사람을 보고 나도 잘 그렸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컸었다. 해 보고 싶은 목록에 있던 그리기를 꺼내 수업에 등록을 하고 진행 중이다. 나는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대체로 꾸준히 하는 편이다. 시작한 일을 웬만하면 무던히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무기라 생각하며 살았다. 4B 연필을 잡으면 기분이 가라앉지만 꾸준함의 힘을 알기에 버거운 그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글을 쓸 때도 매번 좋은 글이 되는 게 아니었고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합평을 신랄하게 받아도,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려도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계속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인 것이다. 그러면 계속 그리는 사람은 화가이지 않은가. 이렇게 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화가가 될지도 모르겠다며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언젠가는’이 좋다. 그 부사 속에는 모든 가능성이 들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타고난 능력이 여의치는 않지만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잘할 수 있겠지 하며 계속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끈기 있게 무던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꼭 온다.
언젠가는 글을 잘 쓰겠지.
언젠가는 인어처럼 수영을 할 거야.
언젠가는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줌바 댄스를 출 거야.
언젠가는 자신 있게 그림을 그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