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나물무침커다란 양푼에 모였다. 따듯한 보리밥에 깔린 순간검붉은 고추장 한 숟가락 맞는가 하는 중에 향긋한 참기름 뒤집어썼다.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니 밥과 나물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붙들고 놓지 않다가 결국 다 붉고 푸르스름해졌다. 여기저기에서 날아든 숟가락들고봉으로 퍼담더니만최대로 벌린
- 최상근
각종 나물무침커다란 양푼에 모였다. 따듯한 보리밥에 깔린 순간검붉은 고추장 한 숟가락 맞는가 하는 중에 향긋한 참기름 뒤집어썼다.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니 밥과 나물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붙들고 놓지 않다가 결국 다 붉고 푸르스름해졌다. 여기저기에서 날아든 숟가락들고봉으로 퍼담더니만최대로 벌린
이제 마—악서산에 떨어지는 노을 사그라드는 석양빛 초저녁에 뜨는 낙조가 더 없이 화려하다분홍빛 하늘 소잔한 햇발 황혼 너울 쓰고내려앉은 고운 몸짓 하루가 끝나가는 즈음에 서쪽 하늘이 아까보다 더 붉게 불타고 있다어쩌면성숙한 한 시골 소녀가 서산머리에서수줍어 남몰래 숨어서 첫 달
장미는 가시로 꽃을 피워요몸 안에 가시가 피를 품어내요몸 안의 가시가 한 타래의 진한 향기를 뽑아내요고통에서 삶을 빌려왔기에 아픔을 꽃으로 피워내는 것일까요 가시는 꽃을 돋보이게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에요가시는 아픈 손가락이에요내 몸 안의 죄와 암과 질병에 항체를 만들고허약한 것과 능욕과 핍박에 면역력을 키워요송곳처럼 에이는 가시는 자기를 지키는 방
큰 북을 두드립니다혼돈의 세월 견디지 못하여답답한 사립문을 열고검은밤슬픈달을불러구름 함께 애절히 통곡하던지난 당신이 그립습니다새벽이슬이 부활하기 전 거목을 붙들고 토혈하며 몸부림쳐 보았습니다목이 터지도록온몸이 떨렸습니다오늘은그대의 가슴을큰 북으로 한 번 두드립니다.
계절의 갈림길에 목발을 짚고 서 있는 가로수 꿈을 꾸듯 그림자마저 안으로 접어 사윈 채 윤곽만으로 떠도는 묵시의 거리 어느 여가수가 부 르는 이별의 노래처럼 조금은 슬프게 음률에 맞추어 비가 내린다 후드 득 한기로 몸을 떠는 핏빛 나뭇잎 악장처럼 떨어진다 발에 밟히는 작은 존재의 떨림에서 예수의 옷자락 한끝을 몰래 잡았던
하늘이 지워지고 있었습니다파란 마음 지워가는 저 하늘 때문에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밀려왔습니다때로는 양떼구름과 새털구름이 수를 놓을 때도 두려움은 티끌만큼도 바닥에 쌓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혼란스러운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새들 지저귀고 벌 나비가 날던 시절은 다 어디로 숨었는지사라지고 없습니다높이 뜬 비행기가 길게 가로를 긋고
나의 쉼터는하늘과 땅 바다오늘은 경포대를 거닐며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천지를 다스리는 그분의 창조 곳곳마다 멋진 조화의 선물평화롭고 붉은 여명이바다를 물들이며 다가선다 언제나 불평과 불안을 모르는 듯 기쁨과 감사만이 존재하는 여기허물을 벗은 온전한 하루 아름다운 결실의 여정
나는 오늘 한 장의 엽서에 편지를 쓴다 매화꽃 잎 가지런히 펼쳐놓고 개나리꽃 산수유꽃도 살며시 얹어놓고 그리움의 벚꽃도 함께 포개 인다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뒤섞어 봄날의 사랑을 노래하고그리운 날의 추억을 적는다 한 장의 엽서 가득 적어놓은그리움의 연서봄날 향기가 사그라지면가슴 가득 벅차오르던 사랑도 사그라
세상 인간사의 갈등과 싸움은듣는 것과 보는 것에서 시작되고행복과 고통, 사랑과 증오까지도 좌우될지니 듣고 싶은 것만 듣고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하지만 그 반대의 것들도 눈과 귀로 마구 파고 들어오니 그것들을 이 겨낼 장사 있으랴혹자는 스스로 들어선 안 될 것을 몰래 듣고 싶어 하고 봐선 안 될 것도 기어코 봐야
올라가는 쪽에스컬레이터 앞에 고장이라는이름표가 붙었다 멀지도가깝지도 않은 내려가는 발길도 만만치 않다주춤거릴 겨를도 없이 숨차게 달려 온 길 가야 할 길은 아직 저만치 남았는데대문 밖이 오리무중이다 한치앞을보르는 인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