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부모님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고, 해방 후 콜레라 같은 전염병과도 싸우면서 배고픔과 병마의 고통을 이겨 내야 했다. 그런 중에 이 나라가 육이오 전쟁을 겪었고, 휴전 후 우리는 자기 자신은 가난과 병마로 고난 속에 살았지만, 자손들은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기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였고, 생활에서는 아끼고 절약하면서
- 김호찬수필가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부모님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고, 해방 후 콜레라 같은 전염병과도 싸우면서 배고픔과 병마의 고통을 이겨 내야 했다. 그런 중에 이 나라가 육이오 전쟁을 겪었고, 휴전 후 우리는 자기 자신은 가난과 병마로 고난 속에 살았지만, 자손들은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기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였고, 생활에서는 아끼고 절약하면서
내가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기쁜 일보다 슬픈 일들이 더 많았던 세월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1939년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았으나, 1950년 동족상잔의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다. 휴전된 후 폐허가 된 국토 위에서 온 국민은 배고픔을 달래며 전후 복구에 온 힘을 다해야 했던 시절과 4·19와 5·16 등 역사의 격동기를 겪으
1장르와 상관없이 작가가 “글을 쓴다”라고 할 때의 동사 ‘쓴다’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될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환경에 대해, 또 살아내야 하는 각자의 삶과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 의미가 아닐까.사자후처럼 직설적 산문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에서처럼 나름의 이미지를 만들어 에둘러 말할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되돌아가 보려고 한다. 여름방학을 기다리던 무더운 날이었다. 나에게는 예쁜 누이가 혜성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얼마 전부터 할머니는 손님이 온다고 누차 말씀을 하셨지만, 일상의 일이려니 무심히 지내고 있었다.예쁜 누이는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시골인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버스는 하루에 서너 번은 다녔지만, 걸핏하면 거르는 게 부지
칭따오 공항에 내리자 붉은 글씨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국스럽다. 공산국가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혹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현지 안내인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출구를 벗어나서도 우리가 찾는 안내인이 보이지 않아 가족들이 흩어져 찾아야 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작은 팻말을 든 작은 남자가 보였다. 피부도 까무
카톡이 왔다.‘교동도에 가려고 합니다.’지난번 순담계곡에 함께 갔던 지인이다. 무료하던 터라 같이 가겠느냐는 물음에 선뜻 따라나서기로 한다. 강화읍에서 두 가족이 한 차로 출발했다.교동대교는 아직 먼데 꼬리문 자동차 행렬은 끝이 없다. 설 연휴 첫날이라 귀향 차량과 관광객이 몰린 모양이다. 석모도로 목적지를 변경하려다가 오늘 같은 날은 거기도 매한가지일 것
오래전 어르신의 쨍쨍한 호통 소리가 골목길에 들렸고, 어린아이들은 위엄 있는 호통 소리에 꼼짝없이 따랐다. 아이들은 어르신의 호통 소리에 복종했었고, 때로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었다. 아이들은 어르신의 권위에, 아이들 자신의 행위의 잘잘못을 떠나 어르신의 말씀에 순종했다.그 시절에는 어르신의 말씀 한마디에 지역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치안이 확보되었다. 때
세상일도 잊게 만든다는 바둑은 도대체 누가, 언제, 무슨 동기로 만들었을까. 문헌에 대략 약 4000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것만 봐도 오랜 세월 인류와 접했다는 걸 금방 알 수가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바둑, 그곳에 오묘한 삶의 진리가 있을 줄이야. 죽은 돌도 살리고 살아 있는 돌도 죽는 무궁무진, 온갖 신비스러운 변화가 곳곳에 포진하여 인간의 지능을 접
관이 내렸다. 어린 자녀들의 통곡과 지인들의 오열 속에 그녀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어느 죽음인들 슬프지 않은 것이 없건만 그녀의 죽음은 슬픔을 넘어 비통함이었다. 남편 일찍 보내고 오랜 세월 홀로 지내다 사랑하는 사람 만나 행복해지려고 하는 그때, 어린 삼 남매를 남겨두고 아무런 말 한마디 못한 채 10여 년 전에 떠난 남편 곁으로 갔다. 떠나기 하루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에 갈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꼭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묘지를 가보리라 생각하고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를 찾았다. 렌트카를 하여 파리 시내의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돌다가 길가에 주차를 하고 입구로 들어섰다. 안내원에게 “사르트르”라고 말하자 그는 얼른 오른쪽으로 가보라고 친절하게 손짓을 했다. 몇 개의 비석을 지나가니 사르트르 보봐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