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나도 귀여운 여인?

한국문인협회 로고 설영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조회수33

좋아요0

고등학생 때였으니 50년도 훨씬 전이었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이라는 책을 제목에 끌려 단숨에 읽었지만 실망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여자는 일부종사(一夫從事)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혼을 하고 또 다른 남자에게도 정을 주는 여자가 귀여운 여인이라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남러시아 아조프해 항구 타간로그에서 식료품 잡화상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76년 집안이 파산하여 가족 모두 모스크바로 떠나버리고 혼자 남아 3년 동안 하숙했다. 가정교사로 또는 지방지에 글을 써 모은 돈을 가족들에게 보내면서도 모스크바 의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학비 마련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작가가 된 계기가 되었다.
‘의학은 아내요 문학은 애인이다’라던 그는 26세가 된 1886년 당시의 노작가 그리고로비치(1822∼1899)의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고 작가로서의 자각을 새로이 했다.
2012년 8월 한국산문 러시아 문학기행에서 현재는 체호프 마을로 불리는 멜리호보에 있는 그의 박물관에 갔었다. 의사로 일하면서 「갈매기」 「외삼촌 바냐」 등을 집필한 곳이다. 아름다운 꽃들이 살랑거리고 한쪽에서는 체호프의 작품을 공연하고 있었다. 방에는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그리고로비치, 차이코프스키 등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멋을 잔뜩 낸 넓은 챙의 모자를 쓴 안내원은 신이 나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설명에 통역할 틈도 없었다. 방실되며 윙크까지 던지는 그녀는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 같기도 했다.
체호프는 그의 첫 희곡 「갈매기」에서 주인공 이리나 역을 맡았던 여배우 올리가 크니페르와 41세인 1901년 결혼했다. 여행을 무척 좋아했던 그는 44세에 남독일 바덴바일러 온천장으로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을 갔다가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타국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노트에 ‘네 노래는 왜 그렇게 짧니?’ 하고 한 마리의 새가 물으니 ‘나는 퍽 많은 노래를 알고 있어. 그런데 그 많은 노래를 모두 부르고 싶어서 그래’라는 대화에 쓰여 있듯이 체호프는 겨우 44년을 살았지만 세계적인 단편의 대가이다.
자유 속에서 인간의 성스러움을 찾으며 직설적이고 깊은 통찰력으로 현실을 꿰뚫어 보면서 삶의 진리를 추구하는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마치 막장 연속극을 보는 듯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책장에 그의 단편집들과 희곡집을 꽂아 놓았지만 어려서 읽은 「귀여운 여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실 「개를 끌고 다니는 여인」도 바람피우는 얘기요, 「갈매기」도 불륜투성이로 도덕과 윤리의 틀에서 벗어났지만 작품 속에 푹 빠져든다.
인생의 끝자락에 나도 사랑이 넘치는 진정한 귀여운 여인이 되고 싶다. 「귀여운 여인」을 60년 만에 다시 펼쳤다. 체호프의 작품 활동이 전성기였던 38세인 1898년에 쓴 작품이다.
집 안채에서 뜰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처녀, 올렌카. 처음 읽을 때는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인이었는데 지금은 손녀 또래이다. 순탄치 않은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듯 동쪽으로부터 검은 비구름이 몰려들어 습기 찬 바람이 불어왔다.
올렌카는 어려서부터 살았던 집을 팔등관(八登官)이었던 아버지가 상속해 주었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집시촌이며 저녁때가 되면 치볼리 야외극장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가 들려왔다. 그 극장의 경영인인 쿠우킨이 올렌카 집 건넌방에 세 들어 살았다. 그녀는 극장 경영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쿠우킨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자기도 극장 경영인처럼 내조하며 행복했는데 3년 만에 남편이 모스크바에 출장 가서 급사했다.
배우자를 잃은 비통함 속에 3개월이 지나서였다. 상복을 입고 미사에 다녀오다 바실리 안드레이치 푸스토발로프라는 이웃 남자의 위로를 받았다. 그는 목재상이었다. 그와 재혼한 올렌카는 다시 행복했지만 남편이 오랫동안 출장을 떠나면 적적함을 참지 못했다. 건넌방에 세 든 군수의관(軍獸醫官) 스미르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트럼프놀이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스미르닌은 부인이 바람을 피워 이혼했고 아들은 엄마와 살았다. 올렌카는 스미르닌에게 아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합치라고 충고했다.
두 번째의 결혼 생활도 6년 만에 남편이 갑작스러운 감기로 사망하여 끝이 났다. 군수의관이 마음을 달래 주었으나 그마저 군(軍)이 이전을 해 떠나버렸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여인. 아버지를 사랑했고 언젠가는 숙모를, 여학교 시절에는 프랑스 선생을 사랑하기도 했었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재롱을 피웠지만 그녀의 외로움을 채워 주지는 못했다.
어느 날 떠났던 수의관이 문을 두들겼다. 군(軍)을 그만두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살 곳을 찾아왔다고. 그녀는 집세도 필요 없으니 자기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다. 올렌카는 다시 생기를 찾았다. 특히 그들의 아들인 사샤에게 모성애가 꿈틀거렸다.
엄마는 친정언니 집에 가 버리고 아빠는 나가서 소식이 없는 사샤가 자신의 아들 같았다. 혼자 쓰는 방을 마련해 주고 숙제를 같이 하고 먹을 것을 챙겨 주면서 사샤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올렌카는 젊어지고 행복했다. 중학생인 사샤는 반항을 했고 뚱뚱하고 늙어버린 올렌카를 부끄러워했다.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도 싫어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몰래 뒤따라가 그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6개월이 지나자 사샤의 엄마가 자기 아들을 보내라는 전보가 왔다. 올렌카는 다시 절망에 빠졌다. 바로 뒤이어 사샤의 아버지가 돌아와 아들을 잘 돌봐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잠자리에 누워 사샤의 잠꼬대 소리를 들으며 소설은 끝이 났다.
여자는 일부종사해야만 된다는 나의 관념이 언제부터인가 깨어졌다. 두 번이나 결혼을 하고 남편이 긴 출장을 갔을 때는 외간 남자와 수다를 떨었지만 그 여자 편이 되었다. 자기가 낳지도 않은 사샤에게 정을 듬뿍 쏟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건강한 몸에 즐겁게 조잘거리며 상대의 이야기에 티 없는 미소를 짓는 여인. 사랑하는 대상이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여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삶의 생기를 얻는 여인. 귀여운 여인이다.
치과에 다녀온 뒤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다가 손자들을 생각하니 치통이 사라지고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순간 나도 어쩌면 조금은 ‘귀여운 여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