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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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며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은 다행히 소강 상태였다. 버스에서 내리며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내려놓는다.
내 깐에는 지방에서 1박 2일 동안 열렸던 시상식 행사에 쫓아다니는 게 힘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행 가방도 풀지 못한 채 누워 버렸다. 수상자만 열댓 명이 넘는 시상식에서 사회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등단 패를 먼저 받은 수상자 중에는 시상식이 진행 중인데도 본인 축하객들과 사진 찍느라 행사장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피곤한 몸을 채근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집에서 세 시간이나 걸리는 행사장으로 향하며 나의 쓸데없는 ‘의리, 책임감, 오지랖’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사회를 보는 것도 아니고, 주최 측에서 ‘꼭 와 주십사’ 초청한 것도 아니고 ‘꼭 참석해야 한다’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뭐 때문에 이렇게 강행군한단 말인가.
문득 며칠 전 둘째 아들이 가족 카톡방에 올려놨던 글이 생각났다. 별로 친하지 않은 군대 동기가 부친상을 당했다는 거다. 그런데 상가가 지방인데다 평일이라 동기 중 아무도 가지 않는다 하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썼다.
‘너도 직장 다니고 당일에 다녀오기에는 먼 거리니, 조의금만 보내지 그러니’ 하니까 ‘아무도 안 가니 저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검은 넥타이와 재킷을 준비하긴 했는데, 솔직히 직장에 반차(半次)까지 내면서 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라고 했다. 그럴 때 좀 더 따뜻하게 응원해 줘야 하는데 평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너는 확실히 엄마 닮아 K-오지랖이구나. 그런데 이왕 가려고 마음먹었으면 군소리 없이 다녀올 것이지 왜 구시렁거리느냐’고 하니, 아들은 아무 말 없더니 잠시 후 단체 카톡방에 몇 마리의 카톡 새를 날렸다.
냉정한 엄마에겐 위로받기 틀렸다 싶으니, 아들이 AI에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나 보다. 그랬더니 AI가 아들에게 성심성의껏 대답한 내용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손해 보는 느낌의 정체-관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 의무감에 따른 억지 행동이라는 인식.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피로감.>
<왜 가기로 했는지 되짚어 보기-의리냐, 실리냐를 떠나서 당신은 사람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결국 아들은 엄마가 아닌, AI의 응원과 위로를 받으며 회사에 반차를 내서 지방까지 문상 다녀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역시 가길 잘했어요. 군대 동기가 몹시 고마워했어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행사장에 가면서 복잡한 심경을 AI에 물어보고 싶었으나 방법을 몰라서 그만두었는데, 행사장에 도착할 무렵 더 피곤한 일이 생겼다. 행사장인 어린이도서관으로 들어오려면 실내화를 지참하라고 안내문에 쓰여 있는 걸 신발을 벗으며 확인했다. 그나마 바지를 입고 흰 양말을 신고 간 게 천만다행이었다.
시상식 장소는 내가 수필 강의하는 교실보다 작았다. 모인 숫자도 수강생 정도였다. 2025년 상반기에 등단하는 작가는 4명. 축하객은 부모나 배우자, 동인 정도? 문예지 주간과 수상 작가들을 가르친 선생님과 사회자와 심사위원인 내가 전부였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될수록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문예지 발행인의 축사와 나의 심사평은 마음을 다해 간단히, 수상자들이 당선패를 받을 때는 등단자의 사진과 이름과 작품명을 쓴 영상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당선 작가들이 당선패를 공손히 받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드디어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첫 번째로 나온 당선자가 소감을 말하며 울먹였다. 자기를 이 자리까지 끌어주신 스승님께 감사드린다며 눈물지으니 그 스승 또한 눈시울을 적셨다.
30여 년 동안 수많은 시상식을 보거나 진행한 나로선 이해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울 일이라고…. 40대, 동화 작가라 그럴까.’ 그런데 두 번째 당선자, 세 번째 당선자도 울고, 그 스승들도 눈물을 닦았다. 설마 내가 심사한 동시 당선자는 안 울겠지. 점입가경, 동시 당선자는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그 스승도 울었다. 심사위원인 나는?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에 눈물짓고 말았다. 원고지 다섯 장이 안 되는 심사평을 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심했던가. 문예지 발행인은 자기네 문예지로 등단하는 신인에게 부족한 점은 꼭 짚어주되, 상처는 주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결혼 주례사 같은 심사평은 안 된다고 당부했었다.
일 년에 몇 번씩 심사해도 시상식장에 와서 인사하는 신인은 흔치 않았다. 자기를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가족이나 지인들과 사진 찍기에 바빴고, 나도 그러려니 해서 서운했던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내게 감사하다고 정중히 인사하니 나도 눈물이 고였다.
집으로 오는 길, 세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진정 축하할 사람만 모여서 ‘감사하다’며 당선자가 울 때 스승도 울고 심사위원도 운 들꽃 같은 시상식 덕분이었다. 심사위원이라는 의무감으로 참석했지만, AI의 해석대로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만남이어서 들꽃 가득한 들판을 거니는 기분으로 피곤함을 참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