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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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 없는 그녀의 등이 흔들린다. 먼지 날리는 아스팔트 도로변에 앉은 그녀의 등 뒤로 오토바이와 승용차, 버스, 트럭, 때로는 구급차가 달린다.
한때 그녀의 배후는 든든했다. 남편과 함께 횟집을 할 때, 가게 앞에 난전을 펼쳐 놓고 해산물이며, 갓 캐 온 푸성귀도 팔았다.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에 말투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다. 그녀는 빨간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누가 뭐라든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빨강, 좀처럼 식지 않는 빨강.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았고, 더위도 추위도 그녀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나는 계절도 잘 타고 멀미도 잘해서인지, 삶을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끌렸다.
“아지매, 빨간색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 이 시장에서 아지매만큼 씩씩하고 열정적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하세요.”
엄지를 치켜세우면 활짝 웃는 그녀. 그녀도 내가 마음에 드는지 지나갈 때면 아는 체를 한다. 손은 또 어찌나 큰지. 마트에서 사라진 덤과 정이 그녀에게는 있다. 잘 먹겠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면 돈 받지 않느냐고 말하는 그녀. 돈이야 당연한 거고, 이렇게 고생하는 아지매가 없으면 이 싱싱한 것들을 어디서 얻어먹을 거냐고, 아프면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면 활짝 웃는다. 그녀가 좋아하는 쑥떡을 슬쩍 건네며 빚 갚는다고 하면 본인도 빚졌다고 말하는 그녀. 빚은 항상 내가 더 많이 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가게 문도 계속 닫혀 있다. 어찌 된 상황인지 주변에 물어봐도 연유를 모르겠단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적 드문 호젓한 산길에 눈길이 끌려 걷고 있는데 그녀가 거기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녀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전나무 숲속 평상에 남편과 함께 있었다. 남편의 혈색은 창백하고 몹시 여위어 있었다. 사정을 묻고 싶었지만, 상처를 건드는 것 같아 안부만 전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가게엔 임대 딱지가 붙었고 더 이상 시장 거리에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형편이나 기질로 보아, 그녀가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아 빈자리를 자꾸 두리번거렸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을 즈음, 그녀가 돌아왔다. 예전의 자리가 없어졌기에 한동안 보따리를 들고 이리저리 이동하곤 했다. 전은 펴 놓았는데 보이지 않아 주변에 물어보면, 또 어디 가서 자고 있을 거란다. 그녀의 쓸쓸한 등이 차가운 바닥에 닿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녀는 더 이상 빨간색 옷을 입지 않았다.
“아지매.”
“시장 나왔습니꺼.”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녀의 슬픔을 알아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까. 사실 나는 그녀의 아픔을 제대로 모르지 않는가.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이라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녀의 조각난 배후 뒤에 슬픔과 외로움이 자리 잡았다. 그녀의 등 뒤가 어두워지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평생이 기우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그와의 기억일랑 아름다운 배후로만 간직하면 좋을 것을. 이 세상에 영원한 배후는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리라. 유한한 목숨을 지닌 나약한 인간끼리 영원한 배후를 기대한다는 건 허망한 짓이다. 그녀의 배후에 그녀 자신이, 나의 배후엔 내가 당당하게 서 있으면 좋겠다.
하루는 그녀의 얼굴에 멍 자국이 나 있었다. TV <가요무대>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와 흥에 겨워 따라 부르며 춤추며 화장실 가다가 미끄러졌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혼자 추는 춤이라니, 혼자서도 허전함을 달래며 잘 놀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애잔하면서도 동시에 안도감이 든다. 잘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오전에 비가 내린 날, 산에는 또 언제 갔다 왔는지 두릅이며 봄나물을 잔뜩 뜯어왔다. 미끄러웠을 텐데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니, 훤히 아는 산이고 늦게 가면 누가 다 따버린단다. 그녀가 비를 맞으며 온 산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건 삶의 의욕일까. 어쩌면 아무리 이름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 그리워, 산중을 헤매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녀에게서 고독의 냄새와 함께 야생과 자유를 느낀다. 그녀가 휘젓고 다닌 봄 산은 그녀에게 또 다른 고마운 배후였으리라.
모든 존재는 배후를 지니고 있다. 슬픔도 기쁨도 눈물도 웃음도 저마다의 배후가 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배후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우리는 서로의 배후다. 배후의 배후를 쫓아가면 어디에 닿을까. 삶의 배후는 결국 죽음일지라도, 살아 있는 한 배후끼리 위로와 의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요즘 시장 거리에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멸치 터는 작업을 하며 지낸단다. 비린내 나는 그물을 손에 쥐고 장정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산이든 바다든, 그녀의 배후엔 언제나 삶이 있다. 구성진 멸치 후리소리 장단에 맞춰, 은빛 멸치와 그녀가 낀 빨간 장갑이 소금기 묻은 허공 속에서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