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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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수도 밸브에 문제가 생겼다. 오늘은 집에서 물을 쓸 수 있는 곳이 베란다와 화장실 두 곳뿐이다. 욕실에서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찝찝하다. 늘 하던 대로 마실 물도 받았는데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야외라면 물을 어디서 받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집 안에서야 굳이 따질 일이 있을까 했다. 집집마다 있는 정수기를 설치하지 않았고 그냥 수돗물을 먹는다. 수도꼭지의 위치에 따라 물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선입견인지, 꺼림칙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하루 중 물 끓이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적이 있었다. 가족이 많을 때는 볶은 보리나 옥수수를 사다가 커다란 주전자로 두어 번씩 끓여냈다. 식구가 단출해진 후엔 생수를 사서 마셨다. 살아 있는 물, 생수를 먹어야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소외당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물은 끓이면 미네랄과 산소 등의 성분이 날아간다는 잘못된 정보를 믿고 편안했다. 물이 떨어진 어느 날, 빈 병에 수돗물을 받아 마시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식수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주방 수도 밸브를 통한 물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자신에게 놀랐다. 수도꼭지가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닌데 마음마저 거부 반응을 보인다.
수돗물이 식수로 가능하다고 수질 검사 수치를 밝히며 홍보하지만, 정수기와 생수가 필수품인 시민들은 냉담하다. 얼마나 풍요로운 세상인가, 배가 고파 먹기보다 몸에 좋은 것을 찾아 꼼꼼하게 따져서 챙겨 먹는 시대다. 자연에서 바로 나오는 물, 생수도 다양하게 상품화되어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 제주도의 화산암반수, 바다 깊은 곳의 해양 심층수, 백두산 백산수,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의 광천수 등 지역을 아는 게 고작이지만, 이름만 달리한 비슷한 공장에서 정제와 살균 처리를 거쳐 플라스틱 병에 담겨 집 현관 앞까지 온다. 수돗물도 푸른 강에서 정수장을 거쳐 배수지에서 수도관을 타고 문턱을 넘어 집 안까지 들어온다. 성분과 가격의 차이는 있겠으나 물은 그냥 물이 아닌가.
물은 순수하다. 이른 봄비 끝에 단풍나무 빈 가지에 맺힌 영롱함에 빠지곤 한다. 별처럼, 아침이슬처럼 찬란한 그 작은 물방울에 하늘과 들판은 물론 우리 동네까지 가득하였다. 순간이지만 영원할 것 같은 나를 위로하는 작지만 큰 세상이다. 더 큰 강물은 그리움마저 품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워터파크라는 인위적이고 환상적인 공간에서 물놀이를 하지만, 예전에는 뙤약볕 아래 강물에서 풍덩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 강가에는 반짝이는 은빛 모래와 짙푸른 산 그림자가 함께 있었다. 물속을 들락거리며 옥수수와 더불어 우리도 여물어 가던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이었으니 자애로운 품성을 가졌을 것이다. 바닷물은 또 어떤가. 살다가 힘겹거나 폭폭해지면 바다를 찾는 사람이 많다. 일상의 온갖 시름을 받아주는 넓은 바다를 바라만 보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괜찮다, 괜찮다고 위로하는 자비로운 손길이다.
물의 위치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방이냐 화장실이냐를 이유로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도 탄생의 순간에는 물처럼 순수했다. 세상살이에 적응하다 보니 관점이 달라졌는지, 선입견이 문제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품격을 달리 보는 경향이 다분하다. 직장이 어디며 직책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곳에 이르기까지 경로를 파악하여 사람을 평가한다. 은퇴했어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이 그러하고 바라보는 사람 또한 그러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부추기거나 부러워한다. 하물며 들풀에도 적용된다.
지리산 줄기에 있는 산머루 와인밸리에 갔을 때였다. 와인 창고와 주변 산책 끝에 카페에서 산머루차를 마시다 시선이 머문 곳이 커다란 화분이었다. 멋진 나무보다 화분 아래까지 길게 뻗은 작은 풀이었다. 같이 간 친구가 “어? 우리 집 잡초네, 이거 뽑느라 날마다 전쟁인데 여기서 보니 화초네 화초!” 한다. 역시 우리의 관점은 위치에 따라 품격을 달리 보고 있었다. 바닥만 구르던 잡초가 도자기 화분에 올라앉아 등나무처럼 우아하게 넝쿨을 뻗어 화초로 승격한 정체는 괭이밥이었다.
과연 우리의 ‘도자기 화분’은 무엇일까를 이야기하던 그날도 올여름 최고 기온이었다. 날마다 기온이 오르며 보름째 이어지는 폭염에 물과 한몸이 되고 싶은 날이다. 물이 될 수 있다면 다이내믹한 계곡물이었으면, 산줄기 따라 굽이치다 낭떠러지에 이르러 번지점프하듯 떨어지는 폭포라면 더없이 후련하겠다. 푸르른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물 한 잔 마시니 집 안에서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난다. 말끔해진 주방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이니 품격이야 말해 무엇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