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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희망사진관

무심코 포로처럼 걸어두었을 희망사진관.나에게 들리던 희원(希願)의 목소리가 커지던 날닷새에 한 번, 제법 오래 전에 친구가 되었다.덩그러니 넉살 좋은 욕심도 모른 채나처럼 양손을 모으고 서 있는 직사각형 사진관 간판.손님이 마음먹고 거기로 들어가는 입구도그 집 주인 사진사가 나오는 출구도 알지 못한다.어쩌면 비밀만큼 버려진 듯한 얼굴 모양 사운댄다.연한 청

  • 윤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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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2025.3 673호 우울 에피소드

교실에 벌 떼 몰려든다방금 전 친구였던 나비 사라진다지우개가 닳을 때까지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지워진다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다친구들이 사라지는 걸 용서할 수 없다이러한 폭력을 사랑하지 않는다서로를 생략하고 압축되는 눈빛 별빛위장한 침묵 지워지는 교실혼자서 밥을 먹는다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몹쓸 허기벌 떼가 완성한 로열제리는 달콤하다벌 떼는 아이

  • 라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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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2025.3 673호 리듬을 타요

12월에서 이듬해 2월 중순 이맘때쯤이면만평 농사일이 마무리되어 춘삼월까지암튼 자유를 얻는다문득 끼의 바람을 타고 싶다음악이 있으면 꽃이 있고 젊음이 부대끼리라내내 행복에 겨워 밤잠을 설쳐댈 것이 틀림없고설렘이 눈앞에서 소금쟁이처럼 뱅뱅거린다 이 세상에 시와 음악이 없다면 어떻게 변할까?우선 자신의 가치관에 매우 회의적일 것 같다삶을 실연당한 사람

  •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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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2025.3 673호 잊혀 가는 소중함

항간의 떠들썩한 소란을 듣고 보니장유유서의 전통은 사라지고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숭고한 존엄이 허물어지고 있다한 시절 중추였던 노인이 홀대를 받고사제지간 풍미했던 스승의 은혜도씁쓸한 뒤안길로 남는다 갈등의 간격은 점점 퇴보하고사고(思考)들이 소통의 벽에 가로막히니처연한 달빛에 지는 낙엽처럼허무함이 가슴에 쌓인다 잊혀 가는 소중함어떤

  • 나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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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2025.3 673호 울음 냄새

사막 낙타는 열두 달을 꼬박 모래바람으로 연명하면서도 이따금 쌍봉 열고 꺼이꺼이 운다는데, 그렇게 쏟아낸 울음 냄새로 타오르는 갈증을 한소끔씩 식혀준다는데, 여기는 쌍봉 없는 낙타들이 말라붙은 혓바닥으로 심호흡하는, 도심 속 비탈길. 아니, 그 많던 조향사들 어디 갔는가? 온몸에서 진동하는 갈급을 남김없이 모아서 쌍봉의 울음 냄새와 똑 닮

  • 김선아(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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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25.3 673호 눈치를 보다

충성으로 평생을 허비한 개가슬슬 주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한때는 갖은 아양을 다 떨어온몸을 비비 꼬며온갖 애교로 주인의 귀염 더미에 깔렸었는데 눈곱이 비치기 시작하고조금만 움직여도 혀를 길게 늘여끈끈한 점액을 흘리기 시작하면서부터주인이 관심을 거두고발길질이 잦아지는 푸대접으로뒷전에 밀려 꼬리를 푼다. 인심을 눈치 챈 늙은 개

  • 이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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