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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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떠오른다
핑크뮬리, 그 꽃말처럼
떠나간 연인을 마음에 심고
나는 해마다 이 들판을 걷는다
바람이 눈동자처럼 흘러
밭고랑마다 놀란 숨결을 뿌릴 때면
햇살이 붉은 탄성으로 터지고
세상은 해종일 핑크빛을 슬어 놓는다
햇빛도, 그림자도
모두가 한 사람을 향한 빛깔이 되어
억새처럼 바스러지는 오후를 지나
나는 흐른 마음을 가만히 출력한다
서양 억새풀 사이에 머무는
나의 사진 한 장
그대가 머물다 간 자리에
가을이 어김없이 도착하고
분홍빛은 점점 묽어지다가
어느새 투명한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내 생의 한복판도 아마 핑크빛이었을 것이다
그대가 웃던 그 계절 잠시라도
내 안이 분홍으로 물들던 시간
지금은 말없이 지는 햇살만이 내 어깨에
조용히 앉아 이별의 열기를 식히듯 머문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이름 부르며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잊음 쪽으로 걸어간다
핑크뮬리, 꽃잎 하나하나가
기억의 끝자락을 만지듯 아련히,
그러나 놓지 못할 듯 피어난다
바람 한 줌에 흩날리며
나는 또다시 그대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