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확 속에 연꽃 한 송이 박혀있다 어느 석공의 해탈이 저처럼 우아한 연꽃을 꺼냈을까 올려다보는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하필이면 돌절구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얼음 같은 시간이 밀려가고 드디어 연(蓮)의 시간 칙칙한 먼지가 걷히고 돌확에 흠뻑 피어나는 염화미소 그 연의 미소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긴다 돌보다 암담했던
- 최경순(평택)
돌확 속에 연꽃 한 송이 박혀있다 어느 석공의 해탈이 저처럼 우아한 연꽃을 꺼냈을까 올려다보는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하필이면 돌절구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얼음 같은 시간이 밀려가고 드디어 연(蓮)의 시간 칙칙한 먼지가 걷히고 돌확에 흠뻑 피어나는 염화미소 그 연의 미소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긴다 돌보다 암담했던
‘내 마음이 왜 이리 스산한가?’ 나직나직 <파우스트>의 아리아를 부르며 걷는 앞산 자락길 마른 낙엽들 흩날려 스산한데 계절을 역행한 꽃무릇이 회색으로 바랜 길섶을 생명의 빛깔로 채색한다. 꽃대마저 말라버린 10월의 어느 날 환생하여 만추의 한기에도 청청히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여린 몸이지만 살을 에는 동지섣달 칼바람도 꿋꿋이 버틴다.
우리 동네는 온통 함박웃음이다 천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벚꽃이 몽글몽글 찬란하게 웃고 복사꽃이 화사하게 웃고 황매화가 환하게 웃고 살구꽃이 활짝 웃고 개나리 민들레 제비꽃 등 함박웃음이 온통 지천이다 나는 이 웃음들을 차곡차곡 내 마음 속에 쌓아 두고 일 년 내내 꺼내 써야겠다 그러면 나의 일 년은 온통 함박웃음일게다
바람은 너블거리는 옷자락을 잡고 서럽게 울고 저만치 그리움은 봄꽃으로 오고 있다 유년의 봄날은 주마등처럼 안겨 오고 숙제를 못한 어린아이처럼 일요일 저녁 가슴만 욱신거리고 그렇게 2월의 동백꽃은 무심히 떨어지고 있다.
가진 것은 엄청난 시간과 약간의 뱃살이 객기 부리고 악산을 타고 놀던 다리는 무시로 경고장 난발하니 배짱 없어 자중하는 신세요 조석으로 헛기침하며 초근목피도 음미하던 치아 이젠 단체로 몽니 부리며 산해진미도 사양해 난감하오 이런저런 핑계로 나태한 일상 속에서 파뿌리는 모자로 변장하고 자식자랑 배추 잎 자랑에 경로당은 고슴도치 풍년이요 자동차 타이어는 하품하
저 엄중한 바위 한 채, 어느 손에 다듬어졌을까? 꿈틀거리는 눈썹이며, 지긋한 눈매며 우뚝한 콧날, 굳게 다문 입술 두둑한 귓밥 목에 걸린 염주까지 저녁노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장삼 자락 길게 바닥까지 펼쳐진 위로 한 손은 가슴에 또 한 손은 무릎에 어느 손길일까? 손가락 마디, 사이까지 세밀하다 촛불 밝혀놓고 절 올리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앉아계셨
맛있게 먹다 목에 걸린 생선 뼈다귀같이 일차선 도로를 폭주하는 광란의 오토바이야 만용의 그물에 걸려 일생을 불사르는 넌 도대체 누구냐
시선엔 보이지 않는 문이 있다 적막이 푸른 숲, 소리는 고향처럼 침묵울 찾아가고꽃잎은 잃어버린 길처럼 흩어진다 꽃들의 뒷모습이 활짝 핀다 그들의 고독은 진자(振子)처럼 왔다 갔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 오고가는 ‘운동방정식’을 풀고 있다 바람은 조용하면 죽는다 습관으로 길을 낸다 누군가, 화가의 물감처럼 여름을 짜내 숲에 바른다 여름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맺어진 관계속에는 간극이 산다 이만큼에서 저만큼까지 다리를 걸치고 겹치거나 벌어진 거래를 한다 계산이 엇나 서로를 긁기가 일쑤이지만 고약이거나 붕대로 감싸는 치유는 거래하지 않는다 상대를 깁는 일을 용서라고 부른다 문장을 고치듯 사람 관계에서도 놓친 수순을 사과하는 기술이 거래다 내가 믿고 싶은 진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거래한다 작법은 내민 나를 줄이거나 지
바람이 분다 끈적하고 축축한 바람. 한여름에 철없는 진눈깨비가 내린다 환한 대낮에 벌거벗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얽힌 시간 속을 뛰어다닌다 오고 가고 보내고 마중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가고 삶이 굴러가고 추억이 굴러가면 다시 또 처음인 듯 설레며 마주할 수 있을까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