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함께하던 한 길가.공사장의 쿵쿵대는 소리와 빗물 냄새가 함께했다. 거리마다 위치한 세월의 흔적 남은 가게들. 그중 한 중고서점이 눈에 띈다. 아침이라 빨개진 코와 손 비비는 서점 주인, 의자 하나 놓이는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여러 주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전해주던 책들은 서로 인사하며 요양을 하고
- 박진홍
사람이 함께하던 한 길가.공사장의 쿵쿵대는 소리와 빗물 냄새가 함께했다. 거리마다 위치한 세월의 흔적 남은 가게들. 그중 한 중고서점이 눈에 띈다. 아침이라 빨개진 코와 손 비비는 서점 주인, 의자 하나 놓이는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여러 주인을 만나고 이야기를 전해주던 책들은 서로 인사하며 요양을 하고
길고 긴 겨울을 이기고하이얀 웃음을 터뜨리며봄소식을 전하더니야속하게도하르르 꽃잎이 금방 떨어지다 “하얀 꽃이 져야빠알간 앵두 열매가 열리지”“그래 그래”앵두꽃이 전하는 말에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푸른 바다를 박차고 솟구친 검붉은 태양이 익살스럽게 ‘사랑한다’라고 허공에 외치니고요한 새벽이화들짝 놀라 동그랗게 눈을 뜬다 꿈결처럼 흘러들던 어젯밤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침 햇살에 물든 연분홍 구름 한 조각에 스며들어목마른 귓전을 간질인다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소식텅 빈 마음, 사랑 한 줌에 녹이려니심술궂은 바람이떼구름
서해의 별 한 점 함박도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사연애달픈 인간의 운명처럼 눈물겹다 조선시대 교동군과 연안군이 자기네 땅이라며 데모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지일제강점기엔 조업분쟁 태풍처럼 일어났고분단시대 조개잡이 어민 112명 북한군에 끌려가자 눈 감은 채 지켜보았지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 97번지 주소를 갖고도 북한군 군사시설로 철의 장막이 된 곳&n
광야로 광야로 날아라높이 더 높이날다가 지치면 네 몸이 닿는 곳거기가 고향이다너는 자유를 지닌 나그네가장 깨끗한 영혼을 갖은 물음표다 허공 아래 숨은 깊고무심한 듯 날개를 버린다양지를 내어주던 날얄팍한 깊이에 제 육신을 묻고앙다문 채눈물 나게 몸피를 불리며 뜨겁다사는 일이 세상에 던져진 눈물 같아서 티끌 같은 존재로 거기 움트는 거다&nb
초목은 밝은 햇살을 받아 튼실하게 자라지만인간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튼실하고 성숙하게 자란다 봄 가을 아버지의 그늘은 선선하면서도 포근하고삼복더위 여름철엔 느티나무 그늘처럼땀을 식혀주듯 시원하다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에는 굼불을 뎁혀 구둘방 아랫목처럼 따끈따끈한 그늘을 만들어 주신다 어머니의 그늘은 늘 따뜻하고 포근한 그늘이라면
2월 빙점 박차듯 눈보라와 맞서다가검은 바다 파도 날에 울컥울컥 베어졌네 벚꽃 핀 영산강 길을 칠순 절반 잘라 걷네 힘들면 놀다 가고 지치면 쉬어 앉고눈흘긴개나리그눈빛좀빌려볼까 철쭉꽃 멍울을 딛고 노랗도록 재촉하네 애틋한 길 돌아돌아 달려서 당도하네 “칠순 길 봄날이다” 노교수 말을 따라 화려한 자목련
단어 하나 더 가질 수 없다는 불안허기진 배꼽부족한 언저리만 만지작거린다 무너지고 거세당한 시간들이 즐비하다 부족한 서사에 목이 타들어간다초승달을 채근해서몇 방울의 이슬로 목을 축인다 신선한 낱말들이 유영하는 바다유자망에 걸려든 멸치 떼 살점처럼자음 하나 놓치지 않으려 힘차게 털어보기도 한다 빈 행간을 채우려는 파득거림&
겨울이 지나면봄은 반드시 온다는데올 겨울엔네게는 다시 오지 않는 봄이 되었구나.가보지 않은 길이 두렵고무섭기만 하다고손을 꼭 잡아달라던 동생은야윈 비틀거림으로차가운 겨울 속으로 아득히 멀어지고 하얀 천사가 맞아주는 천국에선 네겐 늘 봄이기를 기도한다.가슴에 슬픔주머니 하나 달고 살아내야 할 내 삶에도네게 그렇게 냉정했던 봄이&nb
지나온 삶의 길 모퉁이에 서서 할매는 손에 쥔 보자기에보따리 하나 들고 있네 서울서 온 자식 손에이끌려 길을 나선다 저 할매는 어디로 갈까 어느 시설 좋은 요양원 일까 아니면요양병원일까 이 길로 요양병원으로 가면 또 세상 밖 본인 발길로 걸어 나올 수 있으려나 한참을 뒤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