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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망양정

처마를 훑은 바람은 호젓한 정자를 휘감아 돈다. 망루에 올라서서 동해를 한눈에 굽어본다. 노송과 어우러진 절경을 빚어 놓은 울진의 망양정 단청에 시선이 머문다. 계자난간에 기대어 활처럼 휘어 오른 겹처마 아래 우주 만물이 서로 어우러져 좋은 기운을 자아내라는 화려한 단청은 서양 건축처럼 여러 가지 색채도 아니다.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그저 청색, 적색, 황

  • 임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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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이 시대의 독서법

우리 협회 카드 발급을 하려면 대표자가 사인해야 한다며 함 차장이 농협에서 나를 만나자고 했다. 농협에 가면 내가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확인 작업이며 증명 입회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는 오랫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한 다. 그래서 보르헤스의 소설 한 권을 들고 갔다. 그리고 농협 넓은 매장에 앉아 읽었다.지하 감옥 중앙을 가로지르는 쇠창살 앞

  •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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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굴러다니는 돌

고향 근처를 흘러가는 강변에는 수심이 얕은 여울목이어서 돌들이 널려 있다. 모든 돌이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하나같이 둥글고 매끄럽다. 물살에 떠내려 오는 동안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진 돌들이다.돌멩이가 부딪치면 약한 돌은 깨지고 모난 돌은 둥글어지면서 본래의 모양은 사라지고 새로운 돌이 만들어진다. 어 떤 돌은 심사를 거쳐 선발된 미인들처럼 좌대에서 버젓

  • 육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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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파란 수국 한 송이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을걷고있다.제주 올레길 8코스다. 대왕수(大王水)는 예래동의 대표적인 용천수이며, 제주 마을 형성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자연유산이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의 빨래터이며 식수를 공급해주던 곳이었다.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로 ‘큰이물’이라 부른다. 대왕수 주변에 예래생태공원이 조성되고 굽이굽이 물길 따라 산책로가 연

  • 음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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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이야기가 있는 꽃밭

우리 집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수줍게 피어서 언제나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오래 전부터 화분을 하나둘씩 들이면서 식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늘 꽃집에 발이 머물고 작은 화분을 데려와서 자식을 키우듯 가꾼 소중한 오랜 나의 꽃밭. 꽃대를 내밀고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뻗어 올리는 새 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환하게 밝히는 이름 모를 꽃들의 이름

  • 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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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공책(空冊)과필경(筆耕)

시골학교의 폐교가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의 도시 집중에 따른 농촌 인구의 감소로 적령 취학 아동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을 닫거나 아니면 겨우 10여 명의 학생으로 유지되고 있는 초등학교도 있다. 궁여지책으로 일찍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시골 노인들에게 문해(文解)의 기회가 되기도 하여 노인 학생들로 폐교의 위기를 버티어 나가는 학교도 있다.

  • 옥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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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조지아 문인과의 만남 - 한국문학과 코카서스 지역문학 비교 조명

한국문학과 코카서스 지역문학 비교 조명 진행_ 박원명화(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사무총장) 통역_ 마리(조지아 작가·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 정리_ 서금복(수필가·월간『한국수필』편집장)아래는 2024년 8월 23일 오후 4시, 제26회 한국수필가협회(이사장 권남희)가 주관한 조지아 심포지엄(좌장: 노상비 수필가, 주제발표: 김호운 한국

  • 정리_ 서금복(수필가·월간『한국수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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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해무, 1971년 여름바다

안개였다.지독한 해무가 몰려 왔다. 대화퇴(大和堆) 어장을 벗어나 울릉도 동북방으로 접어들 때까지만 해도 하늘이 흐리기만 했을 뿐 늦여름 밤바다는 평온했다. 거친 동해바다 물살을 헤치며 2박3일 조업한 제2성창호는 이미 만선이 었다. 어창이 오징어로 가득 찼다. 갑자기 짙은 해무가 몰려들자 집어등은 희뿌연 불빛만 깜빡일 뿐 휘몰아치는 안개의 그림자를 지우지

  • 서성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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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한 입 베어 문 영광

나는 교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면을 위한 콘텐츠를 찾다가, 그 중 하나를 클릭하고는 반응을 보느라 영상 아래 댓글을 읽었다. ‘엄마가 추천해 주셨는데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잠을 잘 잤다’엄마가, 라는 핑계가 내 가슴에 쏘옥 들어온 까닭은, 내게는 ‘엄마’같은 연인이 있었다. 어젯밤 망설임 없이 이 영상을 클릭했던 이유다.‘오늘 세계 최고의 명문중 하나인

  • 최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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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668호 쪼가리 헝겊을 모아서

엄마는 석 달 전부터 병원에서 누워 지냈다. 몸은 이미 굳을 대로 굳었는데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면 마른 입술을 움직거렸다. 엄마의 입술이 하는 말을 나는 눈으로 읽었다. 오빠를 찾았고 막내 순미를 찾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가 눈앞에 있는 듯이 바라보며 알아 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저기… 안, 안 돼…저기…가지 마, 저….”앙상한 엄마의

  • 권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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