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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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느 봄날 서강대학교를 찾았다. 지혜가 여기에 서 근무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지혜를 만나는 순간 상실감이 밀려왔다.
흰 가운에 위생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영락없는 영양사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학생식당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커피 한 잔 할 수 있다며 그를 휴게실에 안내하였다.
그를 빤히 쳐다보며 실망하느냐고 물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지혜는 상당한 미모를 가진 여자이며 이제 40대 중반에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은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했고 남동생은 교육청 장학사이고 올케도 선생님이라 교육자 집안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기 때문에 적어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식당에서 일을 하는 종업원이라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말을 하여 적잖이 놀랐다.
교육자 집안이라고 자랑을 하면서 어찌 본인은 식당에서 일을 하느냐고 물어볼 수는 더더욱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어 허공에 날려 보냈다.
처음 만난 지혜는 북한산 자락 성곽에서 자리를 잡고 칼을 갖고 사과를 깎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흘러가는 말로 한마디 던졌다.
“여자가 겁도 없이 칼을 갖고 다니네.”
그리고는 지나가는데 그의 뒤통수에다 “그럼 사과를 칼로 깎지 손으로 깎나? 아이 참, 별꼴이네.” 하면서 야무지게 쏘아붙였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와서 무어라고 한마디 하려고 하였으나 웃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싱겁게 덩달아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손으로 뒷꼭지를 긁으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등산은 오늘 처음이라 멀리는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도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럴 생각이라며 어느새 다정한 연인처럼 웃고 웃었다. 개구리 뛰어가는 방향 모르고 여름 날씨 모른다고 갑자기 옅은 구름이 지나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 모두 우비를 준비하지 않았다. 서둘러 하산길에 올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오다 보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일요일 그 시각 그 장소를 지나가는데 지혜는 역시 사과를 먹고 있었다. 이번에는 칼을 갖고 오지 않았다. 이것도 인연일까 아니면 맞춘 인연일까. 서로 인사를 하고 악수까지 했다.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그를 따라 지혜는 처음으로 힘들게 백운대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이 험난하여 위험에 처하면 어김없이 그가 와서 손을 잡아 주며 이끌어 주었다. 우람한 남자의 맛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혼자 갈 수 있어도 애교스럽게 손을 내밀면 어김없이 달려와 손을 잡아 주었다.
백운대 가는 길은 험난하고 위험한 코스가 많았다. 그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결코 갈 수 없는 난코스다. 특히 백운대 정상 가는 길은 죽을힘을 다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데 지혜라고 포기할 수는 없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오르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등산이 주는 행복감에 도취되어 생각 같아서는 그의 가슴에 푹 안기고 싶었지만, 여자이기에 참아야만 했다.
오랜만에 등산의 기쁨을 마음껏 느끼며 백운대 정상 태극기 휘날리는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점심 준비를 알차게 해 왔다. 그러나 지혜는 준비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염치 불고하고 웃음을 팔고 점심을 얻어먹었다.
그러나 미국 속담에 하늘 아래 공짜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백운대 아래에 백운산장이 있었다. 우선 막걸리 두 잔 하고 안주 부침개를 시켰다. 백운산장은 높은 지대에 있다 보니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평소에 술을 못 하는 지혜는 한 모금 마셨는데 얼굴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르고 정신이 아롱아롱했다.
이제 두 사람은 이야기 보따리를 양파 껍질 까듯이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기 이름은 박길수이며 나이는 48세라고 했다. 수출하는 무역회사에 다니다 그 독한 IMF 병에 걸리면서 수출길이 막히고 회사는 방향타를 잃고 침몰하는 바람에 해고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고 다행히 마누라는 다니는 회사에서 지금까지 근무하는 바람에 아들 하나 키우며 셋이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의 자리를 아내에게 넘겨주고 집에 들어가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지혜는 자기 이름만 밝히고 남편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왈칵 눈물이 났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위험하다. 가파른 길은 손을 잡고 놓지를 않았다. 조심조심 천천히 조금씩 내려왔다. 우이동까지 내려와서 시원한 냉면을 먹었다.
헤어지면서 지혜가 그를 불러 세웠다. 다음에는 설악산에 가자고 했다. 그는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설악산 가려면 하루 만에 갔다 올 수가 없는데 이 일을 어쩌랴.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가 없다. 그것도 내가 먼저 제안했으니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하고는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지혜는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보다 일찍 결혼했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남편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남편은 키도 크고 무엇보다 잘생겼다. 본인이 키가 작으니까 키 큰 사람을 부러워했는데 남편은 키도 크지만 아주 멋쟁이다.
제 눈에 콩깍지라고 지혜가 먼저 전화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남편도 자기를 마음에 쏙 들었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지만 예의가 바르고 겸양지덕을 갖추고 선견지명이 있어서 자기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지혜는 싫지 않았다.
한번 마음을 뺏긴 지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하루라도 만나지 못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자연히 고향 공주에서 난리가 났다. 무엇보다 엄마가 아직 나이도 어린 것이 10살이나 많고 반반한 직업도 없는 사람을 절대로 사위로 받아줄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평소에 그렇게 다정하던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나 남동생은 언제나 내 편이다. 누나 일은 누나가 결정해야지 엄마 아빠가 누나 인생을 책임질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내 편을 들었다.
동생마저 반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반대만 하는 결혼이 잘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혜에게는 귀밖에 들릴 뿐이다.
충남 당진에 있는 남편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어머니는 맨발로 뛰어나와 지혜를 맞이했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며 혼자 평생을 살아왔는데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왔으니 한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네방네 자랑하느라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시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이라 매 한번 들지 않고 키웠다면서 앞으로 하루 세 끼 더운밥 차려주고 매일 속옷을 준비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기어가는 목소리로 가늘게 “네” 했다.
“그럼 됐다. 귀한 내 아들을 맡겨도 되겠다.”
다음 날 아침에 지혜는 손수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일 늦게 들어온다고 언니가 야단을 쳤다. 다 큰 처녀가 어디를 헤집고 다니느냐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걸 어쩌란 말인가. 남편도 지혜를 만나면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누가 먼저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모텔을 찾게 되었다. 24년 동안 소중히 간직한 순정을 송두리째 바치기로 했다. 숲을 헤치고 들어온 남편의 성기가 처음에는 무서웠다. 자신도 모르게 괴음을 지르고 온몸이 경직되어 금방이라도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황홀하고 영롱한 잿빛이 어둠을 뚫었다. 핑크빛 사랑을 닦으며 “나를 정복한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은 반웃음만 지으며 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생겼다. 소식을 접한 부모님은 집안 망신 시킨다며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무엇보다 언니에게 얹혀사는 게 싫었다. 언니보다 형부의 눈치를 안 본다면 거짓말이다.
금호동에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엄마, 아빠도 이해를 해 주었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과일 가게를 하자고 제의했다. 동네 한 모퉁이에 과일 가게를 차렸다. 남편은 이른 새벽 청과물시장에 가서 싱싱한 과일을 도매상에서 조금 싸게 사 왔다. 과일이 싱싱하고 맛이 있다며 손님이 하나둘 늘었다. 다마스 작은 차를 구입했다. 청과물시장에서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이웃 동네 과일 가게에 배달해 주기도 했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상냥스럽고 친절한 미소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살살거리는 지혜의 상술도 한몫했다.
과일 장사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말이 있다. 싱싱한 과일은 제값을 받고 며칠 지난 과일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 지혜는 아끼지 않고 덤으로 많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재고가 없다. 지혜의 후한 인심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차츰차츰 장사가 잘되니까 기분이 좋았다.
알뜰하게 돈을 모아 비록 14평이지만 아파트를 구입했다. 남편은 기분이 좋다며 막걸리를 한 잔씩 했다. 처음부터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한 잔 두 잔 하다 보니 술이 조금씩 늘었다. 이것이 비극의 실마리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바쁘게 살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장사에만 신경을 썼다. 그사이 둘째 딸아이가 태어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눈만 뜨면 오늘은 어떤 과일이 좋을까 온통 과일 가게 장사에 미쳐 있었다. 시어머니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고도 지혜는 가지 못했다.
남편 혼자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과일 장사는 하루만 지나도 과일이 싱싱하지 못하고 시들시들해 버린다. 어떻게 하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잘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돈밖에 모른다. 아이들도 싱싱한 과일은 구경도 못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상하다. 자꾸만 피곤하다면서 술을 찾는다. 잠자리도 멀리하고 자꾸만 다음 다음으로 미룬다.
“그러지 말고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하니까.”
“아직 젊은데 무슨 소린가.”
너무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쉬엄쉬엄하라고 해도 자기가 아니면 과일 가게 물건은 누가 하느냐, 자기의 책임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데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에 일어나 청과물시장에서 물건을 사 왔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푹 하고 쓰러졌다. 급하게 119를 불렀다. 병원에 도착하니 담당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너무 늦었다고 했다. 지혜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게 무슨 소린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곧장 형부와 언니가 달려오고 뒤이어 남동생이 달려왔다. 담당 의사는 간암 말기이며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늘이 노랗다. 이럴 수가, 잘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했는데 하늘도 야속하지 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천벌을 내리는가. 동생의 도움으로 집에 들어온 지혜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병원을 갔다. 무심한 남편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누가 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눈을 감고 있다. 이러면 안 되지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간호사는 지금은 안정이 필요하다며 접근을 막았다.
밖으로 나온 지혜는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잘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있는데 너무나 가혹한 천벌을 받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다시 중환자실에 들어가 남편을 보니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울고 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서러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또 울었다.
가게를 정리하고 병원으로 갔지만 어제와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이대로 그냥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무서움이 앞선다. 아니다, 이럴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다짐했다.
병원에 있어야 지혜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남편은 오직 링거 주사에 의지해 산소마스크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똑똑한 보험이라도 가입해야 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설마 이런 일이야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아무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끔찍한 일이 생겼는데, 엄마가 울고불고 있으니 오히려 엄마를 위로해 주고 도와줄 생각뿐이다.
병원비가 얼마이고 어떻게 되는지 지혜는 알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게 남동생이 카드 결제하였다고 간호사가 알려주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줄 몰라 넋을 놓고 울고 있는데 언니가 찾아와서 무어라고 위로하지만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약 1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은 멀리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병원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남편은 산소호흡기 그대로 눈 한번 뜨지 못하고 처음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담당 의사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을 주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숨만 나온다. 인생이 이렇게 허망할 줄 누가 알겠는가.
언제나 내 편인 남동생이 제일 먼저 달려왔고 엄마는 자리에서 누웠다고 올케가 알려준다. 지혜는 어떻게 할 줄 몰라 몸부림치고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한 줌의 재를 안고 시어머님이 계신 고향 땅에 고이 묻었다. 그리고 고 김창수라는 짤막한 묘비를 한글로 써놓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울지도 못하고 헛발걸음을 든든한 남동생이 손을 잡아주었다. 시어머니 역시 재처로 들어와 아들 하나 잘되기를 빌고 빌었건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제 이 세상에 남편은 없다. 나쁜 사람이다. 나를 두고 혼자 가버리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아직 젊은 년이 청상과부가 되었으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큰 저주를 받아야 하나. 인생살이가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반대하는 결혼 잘되는 게 없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했다. 그럼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지혜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한 결혼,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때는 왜 그렇게 콩깍지가 씌었는지,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이젠 그런 생각 접어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 당면한 문제가 코앞에 다가왔다. 매일 울고불고 콧물이 뒤범벅되어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마침 고향 언니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그러지 말고 자기 식당에 와서 자기를 좀 도와주라고 했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음식은 많이 해보지 못하여 잘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했다. 언니는 지혜가 불쌍하다며 끝나고 집에 갈 때는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웃음을 되찾고 지혜도 살아가는 보람이 있었다.
언니 부부는 착실한 천주교 신자이다. 모든 것이 배울 점이 많았다. 꼭 자기 친동생처럼 잘해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다. 아주머니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한편 친정 공주에서는 재혼하라고 했다. 혼자 있는 것이 보기에도 그렇고 부모의 마음은 다른 짝을 찾아서 재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직 젊은 것이 혼자 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언니가 좋은 자리가 있다면서 자꾸 선을 보라는 것이다. 아직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혼자 살겠느냐, 좋은 자리 있을 때 마음 정리하고 시집을 가라고 한다. 그럼 아이들은 어떡하고 하니까 그쪽에도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두 사람이 합치면 문제없을 것이라 했다. 양 사방에서 재혼 이야기를 하니까 마음이 자꾸 흔들린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떤 때는 이럴 때 그냥 시집이나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니의 성화에 선을 보기로 했다. 만나보니 사람은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사람이 진실해 보이고 착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그럼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언니가 이것저것 다 알아봤다고 하며 아무 걱정 말고 재혼을 하라는 것이다. 언니와 통화하는 것을 아들이 들은 모양이다. 지혜의 옷가지며 가방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놓았다. 한마디로 심통을 부리는 것이다. 괘씸하다. 그냥 눈 딱 감고 시집을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뿐, 아들을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는 절대로 너희들 두고 시집가지 않는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희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달래고 겨우 진정을 시켰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자기는 서강대학교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있다면서 지혜를 소개해주었다. 학교에 가면 학생들 밝은 모습도 보고 무엇보다 깨끗하고 위생적이다. 혼자 있을 때는 늘 음악을 들었다. 집에 오면 외로우니까 언제나 음악을 들었다.
이제 노래는 지혜의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어떤 때는 노래방 가면 두세 시간씩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 노래방 주인이 1시간을 서비스로 더 주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달이 지고 해가 가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서강대학교라는 이미지가 좋았다. 월급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젊은 학생들 건강을 지켜주는 자부심도 있었다. 이제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가끔 웃음소리가 나기도 했다.
하루는 아들 영호가 엄마를 찾는다.
“엄마, 나 비행기 조종사 되어 엄마 외국 구경시켜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아들의 뜬금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외삼촌이 전화 왔는데 완벽하게 다 되었다고 하더라.”
외삼촌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제 이야기하니?”
“확실하게 결정 나야 말하지, 어떻게 함부로 이야기해.”
“그럼 확실한 거야?”
“외삼촌이 누구야? 똑똑한 선생님 아니셔?”
“그야 맞지, 그래. 사나이가 한번 거대한 꿈을 가졌으면 꼭 이루어야 한다. 우리 아들 파이팅!”
손가락 걸고 도장을 찍었다. 지혜는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이참에 친정이 있는 공주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인사를 해야겠다. 남편을 보내고 한 번도 공주에 가지 않았다. 공주에 간다고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우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내외, 조카 선물까지 사기로 했다.
좋은 것을 생각하니 끝이 없다. 아버지, 어머니는 검소하니까 오히려 좋은 것보다 실용적인 것을 골랐다.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라 예쁘게 꽃단장하고 집을 나서니 기분이 상쾌하고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친정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계셨다. 어머니가 너무 놀라신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이 없는 분이라 반웃음으로 반겨준다. 공손히 절을 하고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는 금세 눈물을 보이려고 한다. 얼른 선물을 드렸다.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는 스카프다. 목에 둘러주고 “예쁘지?” 물으니 눈물이 웃음으로 변한다. 아버지에게도 평소 즐겨 하는 백세주를 따라 드렸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은지 역시 아무 말을 않으시고 그냥 허허 할 뿐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아들 영호 자랑을 했다. 아들이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하며, 모두가 남동생이 주선해 주었다 하니까 어머니는 미리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역시 별 말씀이 없다.
“엄마, 나도 선생이야. 그것도 서강대학교.”
“그래? 대학은 교수님이라 하지 않니?”
“아니야. 그냥 우리끼리 선생이라고 하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역시 말씀은 안 하시고 허허 하고 그만이다. 막내딸이 시집가 청상과부가 되어 돌아왔으니 이 무슨 기막힌 일인가,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동생 내외가 외출에서 돌아왔다. 우선 동생에게 고맙다고 했다. 동생은 영호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하기사 영호는 키도 크고 우선 똑똑하고 예의가 바르다. 올케가 한마디 거들었다. 수민이는 천사 같은 간호사가 되겠다고 하니 언니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위로를 해 주었다. 오늘은 어머니 손잡고 어머니 품에 안겨서 포근히 잠들고 싶었다.
이튿날 집으로 돌아온 지혜는 기분이 좋으면서 어딘가 허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집 안 구석구석을 먼지털이로 털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음악을 깔고 분위기를 살렸다.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지혜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엄마에게 거짓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 좋다. 오늘부터 선생이야, 하고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아주머니에게 김 여사 대신 “어이, 김 선생”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애써 웃음을 멈추고 “우리 앞으로 선생이라고 부르자.” 했다. 어떤 사람은 박수 치며 좋아했다. 아무도 나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으니까 우리 스스로 선생이 되는 거야. 여기는 마침 대학이니까 그렇게 부른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악산으로 등산을 가는 날, 아들이 가방을 메고 따라나섰다. 상암 터미널까지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지혜는 엄마 걱정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상암 터미널까지 오겠다는 것은 누구와 가는지 확인하고 싶은, 엄마를 지키기 위한 보호 본능주의가 작용했을 것이다. 오전 10시까지 약속했는데, 약 1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가 버스표를 들고 함박웃음을 가득 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혜는 가방을 메고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그가 웃으면서 어디 이사 가느냐고 농담했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하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차에 오른 두 사람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들뜬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지혜는 설악산이 처음이다. 먹고 살기 바빠 설악산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두 사람은 맞춤 인연에서 벗어나 다정한 인연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가 살며시 지혜의 손을 잡으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만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버스는 약 2∼3시간을 달려 속초 시내까지 왔다. 두 사람은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아보고 어느 횟집으로 들어갔다. 속초 하면 오징어가 유명한 곳이 아닌가. 오징어 중에도 갑오징어 껍질을 벗기고 회를 떠 주었다. 입안에 들어가니 그냥 살살 녹는다. 한입씩 서로 주고받으니까, 주인 아주머니가 심통이 났는지 한마디 했다.
“금술이 좋은 부부네요.”
그가 얼른 맞장구쳤다.
“허허, 보통입니다.”
횟집을 나온 두 사람은 설악산 입구까지 올라왔다. 이제 민박을 구해야 한다. 민박하는 집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 위치 좋고 찾기 쉬운 집을 골랐다. 지혜가 먼저 방 두 개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가 눈을 찡긋거리니까 “방 하나밖에 없는데요.” 한다. 영업을 오래 한 사람이라 역시 눈치가 빠르다. 지혜가 한숨을 푹 쉬고는 “할 수 없죠.” 했다. 여자들은 좋으면서 내숭을 떠는 여성 본능의 이기주의가 있나 보다. 방에 들어와 보따리를 푸니까 이것저것 없는 것이 없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설악산 대청봉까지 가는 케이블카는 약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설악산 유래 푯말을 구경했다. 대청봉에 올라가니 어떤 사람이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다고 하며 이름을 물어본다. 박길수, 이지혜라고 하니까 어느새 메달에 이름을 새겨준다. 우리는 좋아서 받아 들고 목에 걸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얼마씩 내라고 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하였지만 별 수 없었다. 얄미운 사람이다. 두 사람은 대청봉 푯말을 기준 삼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청봉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이 산허리에 머물고, 높고 높은 산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악산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산이다. 굽이굽이 솟은 산봉오리가 웅장한 장관을 이루었다. 금강산 구경은 못하였지만 대신 설악산 위용을 볼 수 있었다.
오늘 흔들바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흔들바위는 다음으로 미루고 노래방으로 갔다. 1시간 예약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 숙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자꾸만 시간을 지체한다. 평소에는 못 먹는다는 맥주도 한잔하면서 괜히 응석을 부린다. 지혜가 숙소 가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알 것 같다. 아무래도 여자이니까 합방을 생각하니까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 같다. 되도록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해는 지고 어둑어둑하니까 하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다른 방에서 마루에 나와 고스톱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사람들과 같이 고스톱을 했다. 반면에 지혜는 샤워를 했다. 고스톱 치는 사람들은 친인척으로 오빠와 동생, 제부 하는 것이다. 그가 방으로 들어오니까 지혜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오늘이 그날이라 안 되겠다.”고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샤워했다. 마치고 나오니까 수건을 깔고 준비를 해 놓았다.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얼마 만인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타오르는 욕정을 태우지 못해 안달을 부렸지만 막상 남자를 만나니 부끄럽다. 두 사람 다 말이 필요 없다. 무성한 숲속을 헤치고 들어온 무골장수가 물을 만난 물고기다. 마음껏 헤엄을 치고 몇 번의 폭포수 쏟아지고 갑자기 몸부림치며 소리소리를 질렀다. 경천동지(驚天動地)라고 하늘도 놀라고 땅이 흔들린다는 말이 있다. 한참 젊은 나이에 물고기를 만났으니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하늘이 무너지듯 소리를 지르니까 마루에서 고스톱 하던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 버렸다. 울고 웃던 지혜는 또 그를 끌어당겼다. 밤새도록 몇 번 정사를 치렀는지 아침에 늦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또 한 번 행사를 가졌다. 하기야 이제 마흔다섯인데 맛을 알 만큼 아는 사람이라 불타오르는 욕정을 마음껏 누렸다.
아침은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그렇게 애교를 부리며 응석을 부리던 지혜는 그만 말이 없다. 역시 여자는 자기의 순정을 바치면 그때부터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속초항에 와서 오늘도 갑오징어를 시켰다. 어제보다 가격이 약 두 배가 높다. 배가 언제 들어오느냐, 또는 만선인가 아닌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지혜는 말이 없다. 혹시 막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등산을 가고 싶다. 그이에게 전화하고 싶지만 여자이기에 그냥 가면 만나겠지, 막연한 생각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맛있는 김밥을 준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혹시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이와 처음 만났던 그 자리 그 시간에 사과를 먹고 있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이는 보이지 않는다.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답이 없다. 전화는 더더욱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보다. 그이가 없으니 등산이 재미가 없다. 서둘러 하산했다. 산에서 내려와 전화해도 깜깜무소식이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쉬고 있는데 그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워서 얼른 “여보세요” 하니까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간통으로 고발할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는 끊어 버린다. 간통이라는 말에 온몸이 떨리고 소름 솟는다. 여자로서 최악의 소리 아닌가. 머릿속이 햐얘졌다. 내가 정말 간통했단 말인가. 나의 빈 가슴을 채워 줄 사람은 오직 그이뿐인데 간통이라니 수치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요즘은 간통죄가 없다고 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대라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은 박길수 씨를 아느냐 물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짧게 “네” 했다.
“그분이 자살을 했습니다. 확인할 것이 있으니 내일 오전 10시까지 남대문경찰서까지 와 주시겠습니까.”
역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은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직 경찰서에 가본 적이 없고 경찰이 제일 무서운데 경찰서로 오라고 한다. 이 일을 어쩌나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갑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핸드폰을 없애야겠다는 것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한강으로 달려가 핸드폰을 강 깊숙이 던져 버렸다. 이제 위치 추적을 못하겠지 생각하니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아니다, 경찰은 신원조회를 하면 내 주소를 알 수 있다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마음이 급하다.
밤새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를 찾지 말고 너희들 갈 길을 찾아 봐라, 엄마는 산속 깊숙한 곳에 들어가 너희들 잘 되라고 기도하겠다. 편지를 쓰면서도 눈물이 나서 종이가 젖기도 했다. 아들은 곧 미국으로 비행기 훈련 받으러 가고 딸아이는 간호전문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것 같다고 하니까 아이들 부담은 없는 것 같지만 이렇게 쫓겨 가는 신세가 너무 처량하다.
간단한 가방을 메고 무조건 북한산을 올라갔다. 제일 먼저 보이는 절에 들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어떤 분이 왜 그러느냐고 했다. 나오면서 스님을 찾았다. 마침 주지스님이 계셨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나도 스님이 되어야겠다고 하니까 한참을 생각하더니 꼭 그러면 이곳을 찾아가라고 했다. 쪽지를 받아보니 천문사 절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어느새 해가 기웃기웃하고 있다. 주지스님을 만나 추천서를 주니까 오늘은 그만 쉬고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아침에 스님을 만나니까 “밤새 잘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주지스님은 여러 가지를 물어 보신다. 속세를 떠나게 되면 옛날에 있었던 일은 모두 버리고 깨끗이 잊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난 생각을 하면 스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겠느냐 또 묻는다. 백 번을 물어도 변함이 없다고 하자 다른 스님을 따라가라고 한다. 따라가니까 우선 삭발하고 스님의 옷을 주었다. 옷을 갈아입고 주지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책을 하나 주었다. 천수경인데 마음이 흔들릴 때는 이 책을 읽으라고 한다.
이제 지혜도 스님이 되어 간다. 대웅전에 혼자 앉아 목탁 치는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