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라고도 하는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학교 뒷동네에 분이네 집이 있었는데, 마당에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어. 살구나무는 봄이 되면 꽃이 활짝 피어 눈이 부실 정도였어. 벌들도 모여들어 종일 잉잉거렸고…나는 늘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되도록 분이네 집 앞으로 돌아가곤 하였어.“얘,
- 심후섭
‘6·25전쟁’이라고도 하는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학교 뒷동네에 분이네 집이 있었는데, 마당에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어. 살구나무는 봄이 되면 꽃이 활짝 피어 눈이 부실 정도였어. 벌들도 모여들어 종일 잉잉거렸고…나는 늘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되도록 분이네 집 앞으로 돌아가곤 하였어.“얘,
아늑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바람을 막아주고 하늘의 유수를 받아 주니 살 만한 집이다. 뜰에는 감나무와 사철나무, 동백나무가 있어 봄이 오면 잎 피우고 꽃 피우면서 계절을 알리니 계절이 돌아오고 떠나는 순리를 배우면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마음이다. 때로는 수리도 하면서 자식 낳고 기르 며 살아온 지 40년이 넘어서인지, 나만이 느끼는 아늑함과 자유로움을
밤마실을 나왔다. 초여름인데도 밤공기가 서늘하고 상쾌하다. 올해는 서풍이 아닌 북풍이 불어서 미세먼지도 없고 공기도 시원하다고 한다.내 발끝은 자연스럽게 동네 마트로 향한다. 밤늦은 시간에는 할인 행 사를 하여 싼 맛에 구매하는 재미가 있다. 먼저 과일을 진열한 곳으로 간다. 형형색색 원색의 과일들이 마치 수채화 파레트에 담긴 물감처럼 화사하다. 몇 해 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학업에 부담이 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성적이 부진해도 크면서 나아지겠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다른 학부모의 마음과 같았다.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쓴 손편지를 가지고 왔다. 집사람과 내가 깜짝 놀랐다. 우리는 학교 가까이도 가지 않았으므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선생님의 또박또박 예쁘게 쓴
냉장고 서랍을 여니 오래된 당근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미안했다. 싹튼 부분을 잘라 수반에 담은 뒤 햇살 좋은 창가에 뒀다. 친구 지희가 생각났다.10여 년 전 지희는 뇌경색 발병으로 한국에 와서 수술을 잘 받고는 몇 개월 치료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병원 진료 차 다시 한국에 나왔을 때, 친구들과 만나 밤새 얘기꽃을 피웠다. 그렇게 우린 세월을 거슬러
토요일 아침 일찍 상견례를 위해 서울로 출발했다. 아들이 결혼하게 되어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는 절차였다. 대전에서 지내고 있는 딸은 금요일 저녁 집에 왔다. 남편은 토요일 일을 접었고 가족 모두 합심했다. 남편은 주말에 서울 도로가 막힐 것이라고 염려하면서 대중교통으로 가야 하나, 승용차로 가야 하나 망설였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두 여자의 말에 시
어릴 적 나의 외갓집은 나주군 왕곡면이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벌건 황토 땅을 안고 사는 동네이다.방학 때 외갓집에 가려면 골목길이 어찌나 질퍽거리던지 신발은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흙 묻은 신발을 들고 꽁꽁 언 맨발로 집에 가면 외할머니께선 언 발을 아랫목 이불 속에 꼭꼭 눌러 녹여 주셨다.그런데 생강은 황토 땅이 제격이란
어머니를 찾으러 왔습니다. 낯선 청년의 느닷없는 물음이었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선 남자는 네 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는 중이라 했다. 청년의 눈빛은 진지했고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소란했던 공간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어떤 말을 해야만 하나 망설이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청년은 자신이 결혼한 지가 일주일 정도 되었으며, 네 살 되던 해
요즘은 토마토를 채소로 분류하지만 나 어릴 적 토마토는 당당히 과일에 속해 있었다. 특이 참외 수박과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로 이름을 날렸다.어릴 적 시골집에는 마당 외에 열 평 남짓 되는 텃밭이 있었고, 이 텃밭은 우리 집 보물창고였고 어머니의 전용 마트였다. 여름이면 상추·쑥갓이 자랐고 오이와 감자에 보라색 가지와 청·홍 고추에 청양고추까지. 작은
문간에 쥐 한 마리가 있다. 햇살을 받으며 배를 깔고 누운 모습이 더없이 평안하다. 고양이도 새도 인기척에 놀라지 않게 된 세태가 이윽고 쥐에게도 이르렀나 보다. 객(客)이부 산스레 드나드는 문 앞에 대자로 누운 쥐라니. 안방이 따로 없다. 한낮의 쥐가 태평해 보이고 오후는 더디 간다. 쥐를 비켜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선다. 초를 밝히고 향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