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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문체(文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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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한국문인협회 고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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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수필 창작과 이론6

‘십인십색(十人十色)’이란 옛말이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생김새, 기질, 성향 등 서로 다른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쓰는 글이나 문체도 사람마다 다르다. 타고난 기질이나 습성, 자라온 환경, 교육 수준, 세상이나 사물을 보는 태도, 인격 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반영하는 글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흔히 “문(文)은 곧 그 사람이다” 또는 “문장은 그 사람 자신이다”라고 하는 것도 글을 보면 그 사람의 특성, 생각, 교육수준, 삶의 환경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에서는 내용뿐만 아니라 문장이나 문체에서도 글을 쓴 사람의 특성이나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문체란, 문장이 지닌 개성적 형태를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 개성이나 특성 등이 그 글의 문구 속에 표현된 독특한 성질 또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문체는 흔히 몇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이것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요소나 특성에 의해 분류된다.
①문장 구절이 길고 짧음에 따라 간결체(簡潔體)와 만연체(蔓衍體) 
②표현이나 묘사 등에 있어 그 표현 방법이나 성격이 강한 편이냐 또는 약하거나 부드러운 편이냐에 따라 강건체(剛健體)와 우유체(優柔體)
③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표현하느냐, 또는 그러한 수식이나 미사여구를 피하고 그 내용이나 요점, 의사표시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화려체(華麗體)와 건조체(乾燥體)로 구분할 수 있다.

(1)간결체(簡潔體)
수필문학은 보편적으로 간결과 압축, 그리고 절제를 지향한다. 간결과 압축, 그리고 절제된 조화야말로 수필이 지닌 특징이자 문학적 아름다움이다.
비단 문장 길이의 간결과 압축, 절제뿐만이 아니라 상념의 절제와 압축, 치밀하고도 압축된 구성, 표현의 절제와 생략 등도 모두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다 문학성과 예술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간결과 압축, 절제에만 너무 치우치다 보면 자칫 문학 작품에서의 멋과 향기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의 아름다움과 유연함’ 또는 ‘멋진 문학적 표현’ 등이 소홀해질 수 있다. 나아가서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문장의 아름다움과 유연함’, 그리고 ‘멋진 문학적 표현’도 충분히 갖추면서 동시에 간결과 압축미, 절제의 화음도 함께 지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쓰인 글 중 상당수가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잡문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두 가지를 조화 있게 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간결과 압축, 절제에만 집착하다가 문학으로서의 멋과 향기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거나 멋과 향기를 위하여 간결과 압축, 절제의 미학을 잃고 산만하고 장황한 글이 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또 어떤 글은 단지 문장을 난도질하듯이 짧게 토막만 냈을 뿐 그 속에 작가의 의도나 상념 등이 제대로 나타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학성을 찾기도 어려운데, 이것은 수필 문학으로서는 실격이다. 단지 문장만 짧다고 해서 그것이 곧 간결과 압축, 절제있는 글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필 작법에 있어서 간결체란 말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요점만 간결하게 압축시켜 표현하는 문장 스타일이다. 즉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하고 함축성 있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글은 대개 문장의 길이가 짧고 접속사나 수식어, 또는 반복 어구가 적은 것이 특징으로 의미 전달이 빠르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우며 경쾌한 느낌이 든다.

…나는 잔디를 밟기 좋아한다. 젖은 시내를 밟기 좋아한다. 고무창 댄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기를 좋아한다. 아가의 머리칼을 만지기 좋아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지기 좋아한다. 나는 보드랍고 고운 화롯불 재를 만지기를 좋아한다. 나는 남의 아내의 수달피 목도리를 만져 보기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한다. 웃는 아름다운 얼굴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수수한 얼굴이 웃는 것도 좋아한다. 서영이 엄마가 자기 아이를 바라보고 웃는 얼굴도 좋아한다. 나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신발을 좋아한다. 태사신, 이름 쓴 까만 운동화, 깨끗하게 씻어놓은 파란 고무신, 흙이 약간 묻은 탄탄히 삼은 짚신,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이 글은 피천득의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의 일부이다. 참으로 간결하고도 산뜻하며 경쾌한 수필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의 말이나 애써 꾸민 수식이나 미사여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글보다도 아름답고,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짤막한 문장 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따뜻한 인간애와 깊은 진실이 담겨 있다. 온갖 수식어나 많은 어휘, 또는 반복되는 설명이나 묘사 등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간결체 형식의 수필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나는 남의 아내의 수달피 목도리를 만져 보기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한다” “나 아는 여인들이 인사 대신으로 웃는 웃음을 나는 좋아한다” 또는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 등과 같은 표현은 얼마나 간결하면서도 수필로서의 멋과 아름다움,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글귀인가.
진정 훌륭한 간결체의 수필이라면 짤막하게 정제된 언어 속에 심오한 상념이나 철학이 응축되어 내재하여야 한다. 어울려 그 속에서 꽃향기가 풍겨오듯이 은은한 문학적 향취도 스며 나와야 하며, 간명하면서도 힘찬 설득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2)만연체(蔓衍體)
만연체란 간결체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즉, 간결체와는 달리 문장의 구절이 대체로 길며, 많은 어휘나 수식어 또는 반복어나 긴 설명이 자주 사용된다.
따라서 만연의 글은 자연히 장문(長文)이 많다. 심지어 어떤 글에서는 한 문장의 길이가 무려 2백자 원고지로 따져 한 장 분량이 넘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오상순(吳相淳)의 「짝 잃은 거위를 곡(哭)하노라」란 글을 보자.

내 일찍이 고독의 몸으로서 적막과 무료의 소견법(消遣法)으로 거위 한 쌍을 구하여 자식삼아 정원에 놓아기르기 쉽게 성상이러니, 올 여름에 천만 뜻밖에도 우연히 맹견의 습격을 받아 한 마리가 비명에 가고 한 마리가 잔존하여 극도의 고독과 회의와 비통의 나머지 식음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비 내리는 날 밤, 달 밝은 밤에 여윈 몸 넋 빠진 모양으로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동무 찾아 목메어 슬피 우는 단장곡을 차마 듣지 못할러라. …
말 못하는 짐승이라 때 묻은 말은 주고받고 못 하나, 너도 나도 모르는 중에 일맥(一脈)의 진정(眞情)이 서로 사이에 통하였던지, 십 년이란 기나긴 세월에 내 홀로 적막하고 쓸쓸하고 수심(愁心)스러울 제 환희에 넘치는 너희들의 약동하는 생태는 나에게 무한한 위로요 감동이었고, 사위(四圍)가 적연(寂然)한 달 밝은 가을밤에 너희들 자신도 모르게 무심히 외치는 애달픈 향수(鄕愁)의 노랫소리에는 나도 모르게 천지 적막의 향수를 그윽이 느끼고 긴 한숨을 쉰 적도 한두 번 아니러니.

그야말로 읽는 사람의 호흡이 가쁠 정도로 긴 문장으로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글은 문장 하나가 원고지 한 장 분량을 넘을 정도로 긴 것들이 있고, 문장이 너무 길어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통일성과 문학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문과 장황한 표현은 오히려 아끼던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뜻밖에 개에 물려서 죽고 난 후 나머지 거위가 애통해하는 모습과 그러한 거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을 더욱 잘 나타내주고 있다. 말하자면 만연체 문장의 특성을 작품의 내용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결부시켜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만연체 문장의 특징을 지닌 예문을 하나 더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의 음향을 찾아 듣기를 나는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겨울이 익어 가면 최초의 강설(降雪)에 의해서 멀고 먼 동경의 나라는 비로소 도회지까지 고요히 들어오는 것인데, 이 눈이 와서 도회가 잠시 문명의 구각(舊殼)을 탈(脫)하고 현란(眩燃)한 백의(白衣)를 갈아입을 때 눈과 같이 온 이 넓고 힘세고 성스러운 나라 때문에 문득 얼마나 조용해지고 자그만 해지고도 정숙해지는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때 집이란 집은 모두가 먼 꿈속에 포근히 안기고 사람들 역시 희귀한 자연의 아들이 되어 모든 것은 일시에 원시시대의 풍속을 탈환한 상태를 정呈한다.
온 천하가 얼어붙어서 차돌과 같이도 딱딱한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한 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려오는 것인지 비가 겨울이 되면 얼어서 눈으로 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 글은 너무나도 유명한 김진섭(金鎭燮)의 「백설부(白雪賦)」라는 수필의 일부분이다.
눈(雪)에 대한 작가의 깊은 상념과 겨울의 서정과 낭만을 유려한 필치로 잘 묘사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수필을 읽노라면 밤새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려온 천지를 온통 하얗게 만든, 겨울날 아침의 그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정경이 눈앞에 저절로 펼쳐지며, 자못 감상적이고도 설레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만큼 이 수필은 눈 내린 날의 풍경과 서정, 그런 날의 인간의 마음을 절묘하게 그려놓은 작품이다. 또한 문장이 길고 수식어가 많으면서도 그것이 산만하다거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문장이 길면서도 그 내용이나 이미지는 산뜻하고 또렷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런 것이 잘된 수필, 훌륭한 수필이다. 그러나 만연체의 문장으로 이처럼 훌륭한 수필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수필을 잘 못 쓰는 사람이나 초보자들은 공연히 이런저런 내용이나 단어, 수식어 등을 마구 늘어놓아 문장을 길게 늘여 놓기는 잘하지만, 호박넝쿨처럼 길게 뻗어나가기만 했을 뿐 의미 전달이나 표현 묘사가 부족하여 산만하고 장황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말이나 수식어 등을 길게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만연체의 글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연체 글은 문장이 길면서도 그 체계나 흐름이 분명하고, 의미 전달이나 묘사가 확실하며, 거기에다 문학성까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3)강건체(剛健體)
흔히 산에는 산세(山勢)가 있고 글씨에는 필세(筆勢)가 있다고 한다. 그 산의 생긴 형세(形勢)나 기운, 또는 그 사람이 쓴 글씨에서 드러나는 기운이나 기세, 필력(筆力)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쓴 글이나 문장에는 문세(文勢) 혹은 ‘필세’라는 게 있다. 글이나 문장 속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기질이나 문장의 기세(氣勢),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나 심리상태 등이 담겨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이 바로 문세 혹은 필세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글이나 문장 속에 씩씩하거나 호방한 기운이 넘치고, 힘차고 박력 있으며, 강인한 의지나 신념, 굳센 결의나 각오, 거센 저항의식이나 격렬한 분노심, 여러 사람에 대한 촉구와 외침 등이 강하게 담겨 있는 글을 보통 강건체의 문장이라고 한다.
이런 류의 글은 특히 연설문이나 호소문, 결의문이나 격문(檄文), 신문의 사설이나 논설, 시평, 권두언이나 서문(序文), 평론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의 의지나 뜻을 강하게 나타내는 편지나 건의문, 또는 좀 더 강한 의사표시를 나타내고 강한 효과를 주기 위한 안내문이나 광고문 등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글이 쓰인다.
이와 같은 강건체의 문장은 수필 작품에서도 더러 쓰인다. 특히 작가의 뜨거운 열정이나 강인한 신념 등을 표시하고, 여러 사람을 향해 각성을 촉구하며, 보다 강력한 전달 효과를 얻고자 할 때 이와 같은 강건체 문장이 많이 쓰인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울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動力)은 바로 이것이다. 理性은 투명(透明)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랴!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러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이 글은 이미 잘 알려진 민태원(閔泰瑗)의 「청춘 예찬」이란 수필 작품이다. 특히 이 수필 작품은 청춘의 끓는 피와 청춘의 아름다움, 청년기의 위대한 힘과 뜨거운 정열,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 굳건한 의지와 신념, 사랑의 열정 등을 짧은 글 속에서 아주 적절하고도 설득력 있게 표현한 글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실 누구나 이「청춘 예찬」을 읽으면 청춘의 끓는 피와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뼛속 깊숙이 느끼며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수필작품에 쓰는 문체가 바로 강건체이다. 이와 같은 글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강건체의 문장이 가장 적합하다.
만일 여기서 강건체와 반대되는 문체인 우유체의 문장을 썼다고 하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 글은 힘과 박력이 넘치지 못하고 ‘청춘’의 의미나 특성 등을 전달하는 효과도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세가 부드럽고 온건한 스타일인 우유체의 글로서는 설득력이나 호소력도 약할 뿐 아니라 독자들의 공감이나 호응도 별로 얻지 못했을 것이다.

(4)우유체(優柔體)
우유체란 강건체와 반대되는 개념의 문체를 말한다. 즉, 강건체처럼 씩씩하고 호방한 기운이 넘치는 문체 대신 문장의 기세가 부드럽고 온화하며, 조용하고도 차분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서정성이 짙게 풍기는 수가 많으며, 동적(動的)인 느낌보다는 정적(靜的)인 느낌을 더욱 강하게 풍긴다. 아울러 과격한 표현이나 거칠고 딱딱한 단어, 강력한 자기주장이나 역설, 의지와 신념의 강조, 뜨거운 열정이나 결의, 강렬한 저항의식이나 반대의견, 박력, 강력한 설득이나 요구 등을 나타내는 문장이나 문체가 아주 적거나 애써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群俗)을 떠나 고고(孤高)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仙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甲男乙女)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양하(李敭河)의 「신록 예찬(新綠禮讚)」이다. 이러한 우유체의 문장은 조용하고도 부드럽게, 또는 온화하면서도 잔잔하게 독자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힘이 있다. 독자들은 이러한 문체로 쓰인 글에 대해 친밀감과 편안함을 느끼며 읽는 수가 많으며 이러한 스타일의 글은 잔잔하고 은근한 설득력과 호소력을 지닌다.

5)화려체(華麗體)
화려체는 건조체와 반대되는 개념의 문체로서 말 그대로 문체가 화려한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건조체가 수수하거나 좀 초라한 옷차림이라면 화려체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체의 글을 살펴보면 직유나 은유 등과 같은 비유가 많고 여러 가지 수식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비유가 많고 여러 가지 수식어가 많이 붙다 보니 자연히 문장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화려체의 글 중에는 미문(美文)이 많다. 아름답고 화려한 글을 위해 가꾸다 보니 자연적으로 미문이 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문학성·예술성을 지닌 표현이나 묘사가 많다.
하지만 단지 문장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비유가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수식어가 많은, 문장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에만 역점을 둔다면 자칫 내용이 소홀하거나 부실해질 수 있고, 진실성이나 깊이는 부족하여 겉만 번지르르한 글이 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사설이나 논설, 평론, 결의문이나 호소문 등과 같이 문장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내용의 정확성과 올바르고 명쾌한 논조 등이 크게 요구되는 글에서 화려체의 문체를 쓴다면 내용이나 의미를 보다 명쾌하게 전달하기 어렵고, 독자들이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정확한 전달이나 명쾌한 논조가 많이 요구되는 글에서 불필요한 수식어나 꼭 필요하지도 않은 비유, 미사여구는 오히려 군더더기만 될 뿐이다.
특히 간결한 문체와 소박한 표현 등은 수필의 특성이기도 한데, 문장이나 문체가 너무 화려하거나 길면 이러한 수필로서의 특성이 상실될 수도 있다.
화려체의 문장은 특히 시인이 쓴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시적인 표현력과 시적인 감성, 풍부한 상념과 다양한 묘사력 등 시인의 특성이 시가 아닌 다른 글에도 짙게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월 따사로운 햇살의 덩굴이 온 천지에 내려퍼지듯 둥근 심장을 닮은 호박잎들이 땅을 뒤덮기 시작한다. 개굴창가 울타리, 잡초 무성한 밭둑, 돌비얕, 채전밭 가장가지,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까탈부리지 않고 호박덩굴은 손길을 낮게 재 뻗어 울창한 삶을 성큼 장만하고 꽃을 피운다. 봇물 터지듯 노오란 함성으로 피어난 호박꽃 초롱. 이 세상 어떤 노란 빛깔이 이보다 노랄 수 있을까.
어린 날 고향집 채전밭 울타리에 눈멀 듯 만발한 호박꽃은 내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골방 시렁 위에 겨우내 버려진 채 뒹굴던 늙어빠진 호박 하나가 이렇듯 노란 초롱불의 눈부신 세상을 이룰 수 있다니. 놀랍게도 퀘퀘한 골방의 늙은 호박은 화사한 꽃천지의 시간을 그 작은 씨앗 속에 비밀하게 갈무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 화단마다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이 오월엔 문득, 허접쓰레기 쌓인 고터 어디에라도 개밥바라기처럼 피어 있을 호박꽃을 보고 싶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자리 씨앗 하나로 버려져도 묵묵히 저 혼자 덩굴을 뻗쳐 마침내 온 세상 노란 초롱 밝히듯 은은히 피어난 호박꽃 같은 사람 문득 만나고 싶다.

이 글은 시인 유하가 쓴 「마침내 노란 초롱 밝히듯」이란 것인데, 한눈에도 화려체의 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따사로운 햇살’ ‘봇물 터지듯 노오란 함성’ ‘눈 멀 듯 만발한 호박꽃’ ‘노란 초롱불의 눈부신 세상’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이 오월’ ‘마침내 온 세상 노란 초롱 밝히듯 은은히 피어난 호박꽃 같은 사람’ 등과 같은 문장이나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식어나 비유가 많고, 단어 자체가 화사한 것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문장은 대체로 긴 편이다.
즉, 이 글은 화려체의 특성을 고루 지니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미문으로 쓰인 화려체의 글이다. 그러면서도 단지 겉모습만 화려하게 꾸미고 알맹이는 별로 없다거나, 진실성이나 문학성·예술성이 결여된, 그런 따위의 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화려한 미문 속에 진실한 내용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문학성과 예술성 또한 뛰어난 글이다. 특히 작은 사물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적합하고 절묘한 표현으로 놀라운 언어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6)건조체(乾燥體)
건조체는 화려체와 상반되는 개념으로서 비유나 수식이 별로 없고, 아름다운 표현이나 미사여구(美辭麗句)는 거의 쓰지 않는 문체를 말한다. 또 문학적·예술적 표현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직접적인 의사전달에 더욱 치중하고 내용상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문체이다. 또 실리적·실용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지나친 수식어나 불필요한 묘사 따위는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건조체로 쓰인 글은 좀 삭막하고 무미건조하여 딱딱한 느낌이 드는 수가 많다.
뿐만 아니라 비유나 수식, 불필요한 묘사나 미사여구 등을 배제하고 요점과 내용 중심으로 꼭 필요하고 적합한 말만 최소한으로 쓰는 것이 건조체 문장의 특징인 만큼 문장이 대개 짧은 편이다.
그래서 이러한 건조체의 문장은 학문적인 글이나 논리적인 글, 실용적인 성격이 강한 글에 많이 쓰인다. 이를테면 칼럼류의 수필을 비롯하여 학술 논문이나 논설문, 실용적인 서간문, 연구 보고서나 조사 결과 보고문, 학술 기행문,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 등은 대개 건조체 문장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칼럼 류의 수필이 많이 발표되고 있는 추세로, 이것은 그만큼 건조체 형식의 수필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만큼 건조체의 문장은 문학적 향취나 예술적 향기는 적으나 그 내용이 알차고 무게가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문장의 흐름이 논리정연하고 모순성이 없으며, 전체적인 구성이 치밀하면서도 잘 짜여있고, 조직적이며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건조체의 문장은 수필이나 소설 등과 같은 문학 작품의 문체로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문학 작품에서는 비유나 수식, 또는 묘사를 통해 문학적 향취나 예술적 향기를 더욱 높일 수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배제되면 자칫 무미건조한 글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조체로 쓰인 글이 반드시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건조체로 쓰인 문학성이나 예술성을 지닌 글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희승(李熙昇)의 「딸깍발이」라는 수필을 보면 비록 건조체로 쓰인 글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문학성과 예술성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깍발이’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쳐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런 샌님들은 그다지 출입하는 일이 없다. 사랑이 있든지 없든지 방 하나를 따로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폐포파립(袍破笠)이나마 의관을 정제(整齊)하고, 대개는 꿇어앉아서 사서오경을 비롯한 수많은 유교 전적(典籍)을 얼음에 박힐 듯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리외는 것이 날마다 그의 과업이다. 이런 친구들은 집안 살림살이와는 아랑곳없다. 가다가 굴뚝에 연기를 내는 것도, 안으로서 그 부인이 전당을 잡히든지 빚을 내든지, 이웃에서 꾸어 오든지 하여 겨우 연명이나 하는 것이다. 그러노라니 쇠털같이 허구한 날, 청렴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로서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어찌 감히 이해를 따지고 가릴 것이랴, 오직 예의, 염치가 있을 뿐이다. 인(仁)과 의(義) 속에 살다가 인과 의를 위하여 죽는 것이 떳떳하다.

이 글을 살펴보면 쓸데없는 군더더기의 말이나 불필요한 비유나 은유, 또는 애써 꾸민 미사여구나 아름다운 표현 등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오직 꼭 필요한 말만 가려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얼핏 딱딱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이 심오하고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함축성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아울러 글 전체의 짜임새가 탄탄하고 논리적이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설득력도 강하다.
더욱이 건조체의 문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딸깍발이’ 즉 ‘남산골 샌님’의 그 고지식하고 무미건조한 모습을 오히려 잘 나타내주는 효과마저 나타내고 있다. 만일 이 글이 화려체의 문장으로 쓰였다면 ‘남산골 샌님’의 이미지가 한결 약화되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목적에 따라 간결체와 만연체, 강건체와 우유체, 화려체와 건조체 등 자신만의 결을 잘 살린다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완성도 높은 글이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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