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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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나마가 엄마 얼룩말의 어깨에 바짝 기댔다.
“엄마 건강해야 해요.”
“그래야지. 곧 나아질 거야.”
엄마는 수개월 전부터 몸이 쇠약해져 갔다. 동물원 사육사는 엄마가 좋아하는 당근과 사과와 고구마를 듬뿍 주었지만 한 입 먹고 혀로 밀어냈다. 옆에서 엄마의 행동을 지켜보던 나마가 눈물을 흘렸다.
“음식을 더 먹어야 회복되어요.”
엄마가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엄마는 고향인 세렝게티 국립공원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와 아빠의 고향은 남아프리카 초원지대야. 그곳은 비가 내리는 계절과 비가 오지 않는 계절로 반반씩 나뉘어 있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풀이 곳곳에 많아서 먹을 것이 충분한데, 비가 내리지 않는 계절은 풀을 찾아 멀리까지 다녀야 했어.”
“이곳에서 멀어요?”
“지구의 반 바퀴는 배로 가야 해.”
“넓은 곳이겠어요?”
“상상이 안 될 만큼 넓은 곳이지. 세렝게티는 아프리카 동부 지역 탄자니아라는 나라에 있어. 그곳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어. 우리 얼룩말뿐만 아니라 코끼리, 기린, 사슴, 가젤, 영양 등이 사이좋게 어울려 살았어. 수백 마리가 함께 초원을 달릴 수 있지.”
“왜 고향을 떠난 거예요?”
“사람들이 우리를 잡아다가 큰 배에 싣고 와서 이곳에 데려왔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예요?”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그건 아냐. 어린아이들이 얼룩말을 너무 좋아해.”
“그렇긴 그래요.”
“너도 세 살이야. 이제부터 혼자 살아가야 해.”
엄마가 풀을 전혀 먹지 못하자 동물 의사가 급하게 엄마를 데리고 나갔다. 엄마는 여러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마는 외톨이가 되었다. 왼쪽 울타리 넘어 새끼 기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린은 엄마 기린과 아빠 기린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기린아, 너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사니 좋겠다.”
기린이 나마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너의 엄마가 보이지 않던데?”
“동물 의사가 엄마를 어디론가 데려간 후 돌아오지 않았어.”
나마가 눈물을 흘리자 새끼 기린도 울먹였다. 나마의 울음소리가 동물원 안에 널리 퍼져갔다. 오른쪽에 사는 코끼리가 긴 코로 풀을 돌돌 말아 울타리를 넘어 내밀었다.
“이거 먹어. 너무 슬퍼하지 마. 내일은 어린이들이 우리를 보러 몰려올 거야.”
다음날 오전부터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동물원에 몰려왔다. 초등학교 4학년인 세야는 아빠와 엄마를 졸라서 얼룩말이 있는 곳으로 왔다.
“난 얼룩말이 좋아요.”
“다른 동물도 많이 있는데?”
“말의 얼룩 색이 너무 예뻐요. 순하고요.”
엄마가 비닐봉지에서 당근을 꺼내 세야에게 내밀었다.
“얼룩말에게 당근도 주렴.”
세야가 얼룩말에게 다가왔다.
“이거 먹어. 너는 가족이 없니?”
“엄마와 둘이 살았는데, 며칠 전 별나라로 떠났어.”
“어머! 너 혼자 살 수 있어?”
얼룩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젠 청년이야. 혼자 살 수 있어.”
“내가 자주 와서 친구가 돼 줄게.”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동물원의 밤은 조용했다. 나마는 혼자가 되었다. 잠시 하늘에 바라보았다. 별 하나가 유난히 밝았다.
“엄마가 사는 별일 거야. 엄마! 보고 싶어요.”
며칠 후, 얼룩말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나타났다는 긴급뉴스가 보도되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자동차가 달리는 데도 얼룩말이 이곳 저곳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히도 자동차들이 모두 멈추어 섰다. 텔레비전 뉴스에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룩말이 도로에 나타났습니다. 아마 동물원에서 탈출한 것 같습니다. 동물구호대가 빨리 와야겠습니다.”
엊그제 동물원에 다녀온 세야 아빠가 뉴스를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다.
“동물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세야가 게임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얼룩말이 탈출했다고요?”
부엌에서 요리하던 엄마가 다가왔다.
“혹시 어제 우리가 만난 얼룩말이 아닐까?”
세야가 텔레비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얼룩말을 자세히 보았다.
“그래요. 내가 당근을 준 얼룩말이 틀림없어요.”
엄마가 안타까워했다.
“자동차에 치이면 어떻게 해.”
세야가 코를 훌쩍거렸다.
“엄마가 죽었대요. 너무 불쌍해요.”
얼룩말이 도로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누군가가 주택가 골목에서 어슬렁거리는 얼룩말 사진을 동영상으로 찍어 방송사에 알렸다. 119 동물구호대가 차에서 내려 얼룩말이 있는 주택가로 몰려갔다. 뒤따라온 얼룩말 사육사가 동물구호대에 부탁했다.
“얼룩말이 놀라지 않게 해주세요.”
사육사가 얼룩말에게 다가갔다.
“나마야! 왜 탈출했어. 내가 싫었던 거니?”
얼룩말이 뒤돌아 사육사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좋은데, 동물원 우리가 너무 좁고 답답해요.”
사육사가 나마를 달랬다.
“휴일마다 이곳에 오는 어린이들이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얼룩말 나마가 골목길을 빠져나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근처에서 놀던 어린이가 소리 질렀다.
“무서워요.”
동물구호대가 마취 총을 얼룩말에게 겨눴다.
탕 탕. 얼룩말이 쓰러졌다. 사육사는 측 늘어진 얼룩말을 차에 태워 동물원 치료실로 데리고 갔다. 얼룩말은 긴 잠을 잤다.
「나마는 수백 마리의 얼룩말과 어울려 풀을 뜯고 있었다. 그곳엔 풀을 뜯어 먹고 사는 기린, 노루, 코끼리가 보였다.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풀을 뜯었다.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은 기린이 먹었다. 노루는 땅에 자란 풀을 뜯었다. 코끼리는 가시나무 잎도 삼켰다. 몇 마리의 사자가 근처에 다가와도 어른들 틈에 숨어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마른 갈대로 만든 깔 짚에 누운 나마를 사육사가 깨웠다.
“나마야, 눈 좀 떠봐.”
나마가 눈을 간신히 떴다. 넓은 초원은 사라지고 며칠 전 뛰쳐나갔던 울타리 안이었다. 나마는 실망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며칠 후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긴급 대담이 진행되었다.
나마를 키우던 사육사가 말했다.
“얼룩말 나마는 현재 내실에서 지내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엄마를 잃고 외로워했습니다. 다음 달에 암놈을 들여올 예정입니다.”
수의사가 말을 이었다.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관람객을 멀리해야 합니다.”
야생동물 보호 운동가가 나섰다.
“장기적으로는 동물원을 폐쇄해야 합니다. 얼룩말도 고향이 그리웠을 겁니다. 야생동물들을 원래 살던 초원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어린이집 원장은 동물원을 두둔했다.
“어린이들이 동물을 너무 좋아합니다. 동물원은 있어야 합니다. 아기들이 말을 배울 때 어떻게 시작합니까. 엄마를 통해 그림동화에 나오는 동물의 이름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다음엔 동물원에 가서 살아있는 동물을 만나는 거죠.”
동물 심리학 교수가 말을 이었다.
“동물원이 필요하다면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가족과 함께 지내게 해야 합니다.”
얼룩말이 동물원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세야는 동물원을 다시 찾았다. 얼룩말 우리에 얼룩말 식구가 늘어났다.
“옆에 누구니?”
“새로운 애가 왔어. 아직은 서먹서먹한데 곧 친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