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선아,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 이미 너를 사랑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어.나는 알고, 너는 모르던 순간에 말이야.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네가 전화 통화를 하며 차를 뺄지 말지 주저하던 모습들을 보며 나는 이미 너를 귀엽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야.치사하다고 생각하지는 마. 삶에는 문득문득 깨닫고야마는 순간이 있잖아. 그게 진실이 되었든, 혹은 그럴싸한 변명이 되었
- 이고은
병선아,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 이미 너를 사랑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어.나는 알고, 너는 모르던 순간에 말이야.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네가 전화 통화를 하며 차를 뺄지 말지 주저하던 모습들을 보며 나는 이미 너를 귀엽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야.치사하다고 생각하지는 마. 삶에는 문득문득 깨닫고야마는 순간이 있잖아. 그게 진실이 되었든, 혹은 그럴싸한 변명이 되었
다다, 쉬르, 아방가르드, 데포르메 다 좋다 이거야. 다만 인간이 묻어나야 한다. 그대의 시는 하루를 수확하는 기쁨과 소망이다. 시가 널리 세상을 보듬고 어루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갈데없이 불우선생이다. 하지만 저 유복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비하면 내 가슴속은 빛나는 르네상스다. 잘 자란 인문학도에 비하면 CEO 퇴물은 갈데 없는 맹수요, 본데없는
서역의 신기루를 품고 있는 타클라마칸 온종일 헤쳐가도 저물어야 멈췄던 길 북극성 반짝거릴 때전설들이 돋아나시간 삼켜 뱉은 문명 긴긴 잠을 깨우고 모래바람 뒤집어쓴 격렬한 생각처럼 상단의 낙타 무리가화면으로 돌아온다
1.담넌사두억악어배 우글대는 비좁은 수로에는 상인과 행인 사이 힘겨루기하고 있다 눈치껏 빠져나오다 악어에게 물린 허리2. 왓아룬 사원얼마나 덕 쌓으면 천상의 탑 여기 있나 부처님 뵈러 가며 쑤타이 갈아입고 두 손을 모으는 아침 무지개가 떴었다3. 두 바퀴 문화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는 살아 있고 요리조리 헤엄치듯 쏙
펑펑, 타다닥 탁탁 밤새 쌓은 불야성 쏘아 올린 불꽃들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허공에 돋아난 별꽃 구름 뒤로 숨어들고 만리포 아침 바다 휘청거리는 파도 음정을 놓친 물결 수평선을 지우고 무성한 노랫가락은 모래톱에 스며들고
운명의 한 허리를 이상(理想)에묶어놓고 밤바람 차가운데 빈 낚시로 낚은 세월 말없는 강물 따라서 가지런히 흘러가네들창에 눈발 치니 별빛은 잠적하고 친지들 먼 길 떠나 공간만 늘어나니 어디에 마음 붙여서 남은 인생 의지할꼬 정서(情緖)는 불안한데 고독은 재 넘으니가난의 고비였던 백일홍 피는 계절 그 시절
솔방울 타고 날아 천 길 멀리 자리 잡고 마흔 날 산통으로 새 생명을 싹 틔워서 옥토를 가슴에 담아 초록 바늘 돋운다 햇살을 등에 업고 솟대처럼 곧추서서 벌 나비 뿌리치고 천둥벼락 마주하며 손가락 활짝 펴들고 푸른 빛을 뿜는다 검버섯 돋아나고 내 몸처럼 주름져도 새소리 이어 가고 솔밭 그늘 쉬어
젊음을 다 팔아서 풋사랑 사려다가 할퀴던 마음 번져 서슬의 노을 핏물 개화는 나긋한 혁명 상냥한 밤 선하다 휘파람 별을 켜니 어둠이 퍽 싱싱해 길하게 네가 피어 삶은 늘 어여쁘다 축원굿 올리는 꽃잎 무당이 쓴 연애편지
바람이 누워 있는 허허한 들판 위로 길잃은구름한점 가지 끝 걸려 있고 차갑게멈추어버린 그리움이 애달프네달빛이 흔들리는 까아만 밤하늘에 추억을 걸어 놓고 말없이 바라보니 오늘도가슴 아르르 저며 오는 아픔이여 저 멀리 손짓하는새벽닭 울음소리 아쉬움 남겨두
떠가는 구름 위에 벅찬 꿈 얹어 놓고 날마다 숙제하듯 힘차게 버티지만 흐르는 세월의 속도 발맞추기 어렵다연못의 파문(波紋)처럼 주름살 늘어나고 터럭은 서리 맞아 흰빛이 더하구나 회갑(回甲)의 눈금 지나니 칠순 문턱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