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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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질이, 이 녀석을 알게 된 건 지난해 늦은 봄이었다. 볕이 좋은 어느 날, 아이들과 고양이 소리에 베란다 문을 여니 옆집 실외기 앞, 해바라기를 하는 녀석을 만났다. 인기척을 느꼈음인지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보며 야옹, 존재를 알린다. 나는 얼른 문을 닫아 버렸다. 녀석이 무서워서…. 잠시 후 궁금증 반, 호기심 반, 다시 문을 여니 기다렸다는 듯 큰 눈을 굴리며 야옹야옹거린다. 그리고는 앉아서 말 그대로 고양이 세수를 한다.
“야 임마, 세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 그게 뭐야, 꼬질꼬질하게.”
실없는 내 말을 알아듣는 듯 야옹야옹거리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이후로 나는 베란다 문을 열면 녀석을 만나곤 했다. 길고양이라 하기엔 희고 깨끗한 녀석, 앞동과 우리 동에서는 이미 유명한 존재였다. 화단엔 그 녀석을 위한 폭신한 이부자리, 물그릇이며 참치캔까지. 동네 꼬마들의 애완묘가 다 되었다. 이것을 치우려는 경비 아저씨와 동네 꼬마 녀석들의 묘한 줄다리기가 진행 중이던 어느 날, 관리소 옆 공터에 떡하니 자리 잡은 고양이 집을 보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고양이 집 대문 앞엔 대략 이러한 빛바랜 편지가 테이프로 단단히 붙어 있었다.
‘돌봐 주세요. 착한 녀석입니다. 제가 이사를 가게 되어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탁합니다.’
데려갈 수 없는 사정이 이사라고…. 씁쓸한 마음에 화단 쪽을 보니 녀석은 여전히 옆집 실외기 뒤에서 꼬리만 내놓은 채 미동도 없다. 왜 집엔 가지 않고 여기를 맴돌까.
“야, 너네 집으로 가. 가서 자.”
실없이 한마디 하는 나를 보며 또다시 야옹야옹, 다가온다.
“오지 말고!”
무서워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듯, 움찔하더니 실외기 앞에 발라당 누워 버린다. 두 꼬마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고양이 밥이라고 다가서니, 사람에게 익숙한 듯 아이들 발밑에서 재롱을 부린다.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해진 듯한 녀석은 볕 좋은 옆집 실외기 앞에 낙엽이 깔릴 즈음에도, 고양이들의 숙소가 된 지 오래인 지하실에는 전혀 가지 않는 듯 보였다. 그곳엔 녀석의 친구들도 많을 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의 밥상은 경비 아저씨 덕분에 부지런히 치워지고 녀석의 행동은 굼떠지고 아이들의 관심도 잦아들 즈음, 녀석의 행색은 점점 꼬질꼬질해져 갔다. 내가 괜히 이름을 꼬질이라고 지어 줬나? 자연스레 꼬질꼬질해진 녀석의 집 또한 철거와 재건축이 반복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꼬질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간 걸까? 반쯤 찢어진 꼬질이 집 대문엔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들락거릴 뿐, 꼬질이는 보이지 않는다. 오가는 꼬마들도 한 번씩 기웃거리며 꼬질이를 궁금해한다.
쌀쌀해진 초겨울, 두 발 동물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네 발 짐승을 궁금해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주인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탁한다는 내용의 낡은 편지가 무심한 바람에 나부낀다. 꼬질이의 집도 꼬질이처럼 꼬질꼬질해져 간다.
‘돌봐 주세요.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