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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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왼손에 책을 펴고 앉아 계시는 대왕을 올려보며 민족의 얼을 담은 한글을 창제하심에 감읍해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나만의 생각일까? 펜을 잡고 살아가는 모든 문인과 만백성의 생각이 같을 것이라 믿는다. 오늘날 IT 기술로 세계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것과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우리의 문화와 예술이 발전한 것은 오로지 자랑스러운 한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배우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23개국이고 799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심지어 국어로 선택한 나라도 있고 가르치고 배우는 학생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언어학자들이 모여 문자를 평가한 결과 한글이 세계 1위라고 했으니 한글의 우수성은 인정받았기에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우리나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 순탄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1444년 2월 20일 윤대(輪對)의 방식을 빌어 부제학 최만리, 직제학 신석조, 직전 김문, 응교 정창손 등은 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반포에 반대하는 상소 일명 ‘갑장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또한 1504년 연산군은 자신을 비난하는 한글 투서가 발견되자 한글 금지령을 내리고 한글로 쓴 책들을 모조리 불태우기도 했다. 1930년대 일제 시대 일본은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한글학회는 폐지되었으며 회원 40여 명이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남선 외 학자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한글대사전을 발간하는 대업적을 이룩했다. 그러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우리 문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글자로 우리 곁에 있다.
한글이 우수한 까닭을 노은주가 분류한 내용은 첫째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다. 전 세계 글자 가운데 임금이 백성을 위해 직접 만든 글자는 한글밖에 없다. 둘째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확실하게 알린 글자다. 다른 나라 글자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셋째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다. 넷째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다섯째 감정과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노란색을 표현할 때 노릇노릇하다, 노르스럼하다, 노리끼리하다 등 여러 가지 변용이 가능하다. 여섯째 한글은 과학적인 글자다. 24개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면 무한에 가까운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일곱째 철학이 담긴 글자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세상의 중요한 요소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여덟째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글자다. 자신만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홉째 미래사회에 딱 맞는 글자다. 하나의 모음이 하나의 소리를 내는 덕분에 입력하는 즉시 바로 기록화할 수 있다. 열 번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자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제정해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노력한 단체나 개인에게 시상하고 있다. 열한 번째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자 자랑스러운 보물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해설서로 가지고 있다. 열두 번째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지켜낸 글자이다. 한때는 한문을 공부하고 익힌 양반들이 한글을 여성이나 천민이 쓰는 문자라며 ‘암글’ 또는 ‘언문’으로 낮추어 부르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국립박물관을 관전하고 나오며 본 국립한글박물관이 곁에 보여 동료에게 가자는 말을 남기고 앞장서 입장했다. 급해 1, 2층만 관람하고 보니 고귀한 자료가 잘 정리 정돈되어 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아름답게 관리하는 지혜에 감사함을 느끼고 자랑스러운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나오며 보니, 이 우람한 건물은 불과 10여 년 전에 신축해 개관했다는 것이다. 몹시 아쉬운 점은 건물을 신축할 때 이 땅의 금강송과 청기와로 국보 1호처럼 우람하고 예술성 높게 지었으면 이를 보는 세상 만민이 우러러볼 것이며 한글과 국격은 더없이 드높아졌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도 서울 중심로인 종로 거리를 걷다 보면 외국어 간판은 제외하고 한글로 써 게시된 간판 중 가로나 세로로 썼건 간에 띄어쓰기가 되지 않고 가끔 맞춤법에 맞지 않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뿐인가 유명한 개인이나 단체에서 개최하는 서예 대전에 한글 부분이나 한글 서예대전의 작품은 글자가 대개 백 자 내지 삼백 자가 보통인데 세로로 쓰여 있고 띄어쓰기는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해석할 수 있다. 더욱 맞춤법의 오자가 있음에도 대상이나 우수상이라 표시하고 푸짐한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것을 한글을 배운 외국인이 보고 무어라 생각할지 머리가 어지럽다.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인정받는 한글의 종주국에서 일어난 현상을 보고 후진국의 우둔한 국민이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수치스러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자랑스럽게 만든 도록(圖錄)을 봐도 같은 현상이니 오 통재라 어찌할꼬.
답답해 시정하는 방법의 일환을 제시해 본다. 앞으로는 한글 서예대전은 국가에서 주관하고 이 행사는 한글박물관에서 개최하며 초·중·고·대학·일반인으로 구분하고 매회 100명씩 접수해 1년에 2회씩 개최하고 현장에서 쓴 작품을 한글 사용 3대 원칙에 맞으면 모두 시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급한 것은 국가에서 한글 서예 교본을 만들어 보급하고 각급 학교에서 서예를 가르침은 새로운 교재에 의해 지도하고 배우도록 강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 시중에 판매하는 서예 교본은 새 교재가 완성되면 회수해 폐기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서예 인원수가 100만 명이라는데 그중 30%가 한글을 쓰면 30만이나 되니 배우는 수강생과 가르치는 선비·학자들에게 추궁할 수 없으니 권고 사항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이 건의하거나 말하면 불만 불평으로 치부해 버리니 모든 문인 단체는 합심해 정부 해당 부서에 건의해 실행하는 대업을 이룩하도록 제안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