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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기옥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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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 지 꽤 된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다. 더러 아직도 퇴직한 남편에, 결혼한 자식들까지 가까이 끼고 사는 친구들을 보면 좋아 보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친구들도 나를 보고 같은 말을 한다. 좋아 보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고. 오버 더 팬스(over the fence, 담장 너머) 현상이다.
농경사회는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대였다. 자식이 성년이 되어 가정을 이루면 논밭을 조금 떼어 독립을 시켰다. 지금은 산업사회이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이제는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재빨리 독립하라고 권한다. 조금 이르게, 자식이 미처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서운할 시점일수록 좋다고도 말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자식들이 모두 일찌감치 집을 떠나 주었다. 내가 미처 독립을 선언하기도 전에 자식들이 먼저 제 갈 길을 찾아가 버린 것이다. 퇴직할 무렵에는 나 혼자만 남겨져 있었다. 나 쪽에서 오히려 준비 부족으로 허둥거렸다.
컴퓨터부터 문제였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퇴직하니 막막강산이었다. 새로 산 컴퓨터에 적응도 되지 않았다.
군에 가 있는 아들에게 몇 번 전화했더니 귀찮았던 모양이었다. 가까이에 사는 후배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집으로 온 후배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용돈도 조금 쥐어 주었다. 고맙기도 했거니와 자식처럼 살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들이 얘기를 듣더니 대뜸 당부한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내세요. 자꾸 부르면 안 돼요.”
“딱 한 번으로?”
“그럼요. 엄마 같으면 특목고 나와서 의대까지 들어간 아들을 선배 엄마가 불러대면 좋으시겠어요?”
충격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독립이 덜 된 모양이었다. 태생적으로 혼자 살기에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컴퓨터뿐이 아니었다. 기계치에, 길치에, 수 개념까지 없어서 혼자 살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자식들 눈에도 엄마가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친구와 둘이서 동유럽을 다녀왔을 때였다. 사진을 보던 딸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엄마는 왜 해외여행을 여자끼리만 가느냐고 물었다. 길눈도 어둡고 발목도 잘 삐는 사람이 사고라도 나면 어쩌느냐고, 남자 선생님들과 단체로 가면 좋을 텐데, 그 연세에 아직도 내외할 일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딸이 옳았다. 북유럽 여행 때는 여자 4명에 남자 2명을 동행해서 갔더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저녁 시간 호텔에서 와인 한 잔 후 바깥바람을 쏘일 수도 있었고, 새벽에 일어나서 부담 없이 주변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여자끼리 갔을 때는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다. 딸이 나에게 삶의 팁을 제공한 셈이었다. 스스로 쌓은 담장에 갇히지 말고 그 너머를 깨금발 해 보라는 팁이었다. 다른 세계와의 교류였다.
그저께는 부엌 청소를 하다가 ‘안상수 벌꿀’을 발견했다. 비싼 거라 아껴 두었다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병뚜껑이 좀체 열리지 않았다. 뒤집어도 보고 따뜻한 물에도 담가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난감했다.
명절날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관리사무실!
나는 꿀과 과일 한 봉지를 들고 관리실을 찾았다.
“뚜껑이 안 열려요.”
“어디 봅시다.”
거짓말처럼 단번에 뚜껑이 열렸다. 담장 너머에는 어디든지 전문가가 있는 법이었다. 나는 경비원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여행도 많이 다녔을지 모르나 그의 전문 영역에 닿을 수는 없었다. 오전 내내 씨름하던 병뚜껑을 1분 이내에 해결하지 않았는가. 내가 감사를 표하며 과일 봉지를 건네자 그는 한사코 사양하며 되려 고마워했다.
집으로 오던 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웃음이 빵 터졌다. TV에서 본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난 것이다.
한 여자가 생선가게에서 고등어 두 마리를 샀다. 인심 좋은 가게 주인이 고등어 한 마리를 덤으로 주었다. 여자는 가족들과 고등어찌개를 먹으니 너무 맛있고 고마웠다.
다음 날 생선가게를 들른 여자는 집에 있는 헌 신문을 한 뭉치 가져다주었다. 가게 주인은 요긴하게 잘 쓰겠다고 하면서 팔다 남은 갈치 한 마리를 건넸다.
갈치를 받은 여자는 부담스러웠다. 못 쓰는 신문 뭉치를 들고 갔을 뿐인데 생선까지 받고 보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냉장고에서 밀감 한 봉지를 꺼내 가게로 들고 갔다. 두 여자가 함께 밀감을 까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양가의 아들과 딸이 혼인을 못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게 주인이 여자의 손을 잡았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두 집 자식을 합치면 어떻겠수?”
꿀병 뚜껑을 해결하니 산이라도 들어올린 것 같다. 명절에나 올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담장 너머로 처리하니 스스로 대견하다. 돌아보면 담장 너머에는 내가 도울 일도, 도움을 받을 일도 많을 것이다. 오죽하면 멀리 있는 자식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 생겼을까.
나는 여태껏 나의 담장을 쌓는 일에만 전념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나와 남을 구분하는 바로메타로 이해하고, 나의 영역을 지키는 방법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담장은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했다. 무언가가 있기에 담장이 생긴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선 그 무엇이다.
나는 꿀을 한 숟갈 떠서 입 안에 넣고 잠깐 그 달콤함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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