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신작로를 반 시간 남짓 타박타박 걸어가면 아버지가 일하시는 언덕배기 위 갈가뫼기 밭이 나타났다. 어머니가 싸 주신 아버지의 점심이 담긴 베보자기는 제법 무거웠다. 저만치 소나무 아래서 햇볕을 쬐던 꿩 한 마리가 내 발자국 소리에 푸드득 날아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불렀다.소나무 그늘에 앉아 베보자기를 풀었다. 아버
- 정순이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신작로를 반 시간 남짓 타박타박 걸어가면 아버지가 일하시는 언덕배기 위 갈가뫼기 밭이 나타났다. 어머니가 싸 주신 아버지의 점심이 담긴 베보자기는 제법 무거웠다. 저만치 소나무 아래서 햇볕을 쬐던 꿩 한 마리가 내 발자국 소리에 푸드득 날아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불렀다.소나무 그늘에 앉아 베보자기를 풀었다. 아버
동창생 호원이는 국민학교 때 나와 같은 반으로 짝꿍을 했던 친구이다.귀향을 하고 친구들과 소통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은 늘 늘었다 줄었다 한다.등산하는 날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친구도 같이 산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몇십 년의 세월이 어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온 이야기와 어릴 적 이야기 몇
바다낚시는 방파제나 선착장, 갯바위, 바지, 선상에서 이루어지는데 출조(出釣)를 못하는 핑계, 고기 못 잡는 핑계가 많기도 하다.밑걸림이 심하다. 바닥이 모래톱이라서 안 되고 갯벌이라서 안 된다. 파도가 일렁인다. 바람 때문에 낚시하기 힘들다. 물때가 맞지 않다. 조류가 약하다. 아니, 조류가 너무 세다. 수심이 얕다. 날씨가 흐리다. 너무 춥다. 어휴,
이제 내일부터는 올해 추석 명절 연휴가 시작된다. 지난 일요일에 기제사일이라 서울 아내의 집에 머물다 오늘 아침 새벽 4시에 차를 달려 내 둥지인 청양군의 부엉골로 내려왔다. 아내는 비가 내리는 날씨에 밤운전이 위험하다고 걱정을 한 바가지 쏟아놓는다. 하긴 오랜만에 우중 야간운전이라 조금은 조심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서울을 벗어나니 어디가 비가 왔냐는 듯
명색이 집주인이지,나는 어질러진 쓰레기나 정리하고 주차장에 널려진 담배꽁초를 줍는 청소부다.집 주변을 치우는 것이 내 몫이 되었다.한때는 다달이 칠만 원씩 주고 청소업체에 맡기기도 했다.그들은 한 달에 네 번,월요일만 와서 청소하니 결국 매일 드나들며 어차피 내 손이 가야 했다.그래서 내가 하기로 한 거다.계단은 별로 오르내리질 않아 어쩌다 치우면 되고 엘
지구의 반대편에서 온 그의 얼굴엔 비장함과 새로운 결의에 찬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내륙 국가의 어느 부족 왕족 신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어서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심정을 이야기한다. 하루하루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희망의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다부진 마음에 어느새 그를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누구든
나를 나무 시인, 나무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얄팍한 지식으로 함부로 나무에 대해 해석하고 재단하는 것만 같아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지상의 모든 나무에게 정말이지 미안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무’에 대해‘나무와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그 생각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 있다. 이유는
박진희 시인은 1954년 6월 25일 광주시 광산군 하남면 진곡리 245번지(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학전양반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현재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거주하고 있다.초등학교 때,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동화는 물론이고「자고 가는 저 구름아」로부터「아라비안 나이트」등을 읽었다. 유년기 시절에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한 그는
타케우치 유코가 죽던 날 재희는 처가에 다녀왔다. 차로 두 시간 남짓 거리의 처가에는 쉰 그루 정도의 사과나무가 있었다. 고정적으로 사람을 쓰기는 애매했고 일흔이 넘은 장인이 혼자 관리하기에는 힘에 부쳐, 해마다 추석 전에 처형네와 날짜를 맞춰 수확을 함께했다. 제대 로 된 일꾼에는 턱없이 모자랐어도 정례적인 처가 방문의 좋은 구실이었다.
*시어머니가 숫자를 적은 네모반듯한 여러 장의 종이를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시댁 거실이다. 그때, 검은 래브라도 한 마리가 눈구멍만 뻐끔 뚫린 두건을 쓰고 시어머니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개는 흘금 시어머니를 올려다 보더니 손에서 숫자 1을 빼앗아 물고 빠르게 달아났다. 그 뒤를 남은 숫자 2, 3, 4, 5, 6, 7, 8, 9, 0을 일제히 쫓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