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날 여수로 내려갔다. 자식들로부터 금년 설에는 여수 호텔을 잡아 놓았으니 여수에서 설을 쇠자는 것이다. 자식들한테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침묵을 지키다 결국 며칠 전에야‘그러마’하고 답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여수냐고 그랬더니 큰아들 회사에서 직원 복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이 여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을 여수의 한 호텔에
- 김상곤
그믐날 여수로 내려갔다. 자식들로부터 금년 설에는 여수 호텔을 잡아 놓았으니 여수에서 설을 쇠자는 것이다. 자식들한테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침묵을 지키다 결국 며칠 전에야‘그러마’하고 답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여수냐고 그랬더니 큰아들 회사에서 직원 복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이 여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을 여수의 한 호텔에
사투리 수필이 뭐꼬? 뭐 때매 읽기도 에러븐 사투리로 수필을 쓰는데? 첨에는 이런 이바구 많이 들었제. 『내 쫌 만지도』에 이어서 세 번째 사투리 수필집을 준비해 놓고 본께네 쪼매이 고민이 생기는 기라. 첫 시도 할 때는 이기 작품이 될란가, 아 이모 우심꺼리가 될란가 억수록 고민했제. 막상 발표하고난께네 주변에서 격려로 해주시는데 그 뒤로는 자신감도 붙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유아용 욕조에 더운물을 받는 중이었다. 팔에 안겨 있던 아이가 힘없이 팔을 빠져나가 욕조 에 빠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정신을 차린 뒤 아이를 욕조 속에서 꺼냈지만 아이는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으로 눈빛을 잃고 있었다.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빛처럼 사라지는 환영에 놀라 잠을 쨌다. 그게 언제적 일인
눈발이 흩날리는 어느 날이었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도로 가장자리 자투리땅에 붕어빵집을 발견했다. 추운 계절이라 리어카에 비닐포장을 뒤집어 쓴 빵집이었다. 어느새 발걸음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6,70대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 주인이었다. “사장님, 비린내 안 나는 붕어 사러 왔습니다”하고 너스레를 떨며 들어섰다. “얼마치를 드
우리 집 마당에는 햇수로 40여 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네 그루 서 있다. 창고 건물과 집을 지으면서 심어진 나무라서 춘풍추우 오랜 세월 함께하여 정이 든 나무다. 은행나무가 신비한 것은 굵고 곧게 뻗어 올라가는 세찬 줄기 때문만은 아니요, 이른 봄 버들가지 개나리 등 한참 봄 잔치가 거의 끝날 무렵, 겨우 깊은 겨울잠의 눈을 비비는 은행나무의 초연함이 장하
칠 전 고향 동창회에 다녀온 남동생 현준과 통화할 때였다. 올해는 초등학교 입학생이 아예 없어서 조만간 분교로 바뀔 수 있다는 입소문을 전했다. 개교 백 년이 넘은 면 소재지의 학교인데 전교생이 서른 명도 안 된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폐교 대상 학교 기준은 전교생 예순 명 이하인데 그것에도 한참 모자라서 지역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고 동생은 덧붙였다.
“비켜, 내가 할 거야! ” 교실 벽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에게 우리 반 주먹 대장 호철이가 달려들었습니다. 왜 평소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다가 꼭 이때만 되면 괴롭히려 드는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나는 호철이 손에 다리를 붙들려 화장실로 끌려왔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남들과는 다릅니다. 누구나 가진 다리조차 한 개밖에 없어 남들처럼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굶주린 하이에나는 결코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지. 우리 반 남자애들치고 철주에게 당하지 않은 애들이 없어. 철주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 건, 내가 키가 크고 태권도를 배워서일 거야.“안녕, 난 이철주야.”철주가 능글맞게 인사하며 전학 온 내 짝 민우를 살폈어. 민우의 가냘픈 몸집과 작은 키, 꾀죄죄한 모습을 본 녀석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났어.다음 날 철주는
“고아였으면 좋으련만….” 닳고 닳아 시멘트 가루가 날릴 것 같은 육교 계단 앞에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6차선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길 건너 우체국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 반복되었다. 어머니가 미웠다. 아버지도 지독하게 원망스러웠다. 인연을 끊는 방법을 떠올려 보았다. 허름한 양복 안주머니에 든 봉투를 만져보았다. 내 피와 땀방울과 허기진 배
지난해 가을, 이곳을 지나던 소슬바람이 어딘가에서 후∼ 하 고 꽃씨를 몰아왔어요. 하필이면 그 꽃씨가 떨어진 곳은 쾨쾨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였어요. 평소에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던 꽃씨는, 자신이 바람에 실려 온 이곳이 사람들이 눈 살을 찌푸리며 다니는 길임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그때 마침, 살랑살랑 봄바람이 꽁꽁 언 땅을 훈훈하게 녹이며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