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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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서 나무가 타닥거리며 타오른다. 나무 타는 냄새가 온 마당을 점령한다. 아궁이에 얹힌 커다란 솥에서는 벌써부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솥뚜껑도 딸그락 소리를 내며 들썩인 지 오래다. 물이 끓어 넘치며 피시식 열 삭히는 소리를 낸다.
나는 몇 시간 전부터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다. 사골이 제맛을 낼 때까지 진득하게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 몇 번이고 고아야 고루 나눠 먹을 수 있으니 긴 시간 불 앞에 앉아 있는 것이 큰 보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조용히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아버지의 형상이 일렁인다. 이 아궁이에도 아궁이 옆 장작더미에도 아버지의 손길이 가득하다. 우리 네 남매가 때를 가리지 않고 모여 음식을 굽고 끓이며 나누어 먹던 시간을 아버지는 참으로 흐뭇해하셨다. 이 아궁이에서 백숙을 끓이거나 사골을 고을 때마다 아버지의 표정이 얼마나 상기되셨던가. 문을 열고 가만히 내다보시다가 쓸데없이 농담을 하시거나 자주 나오셔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조용히 정리해 주곤 하셨다.
마당 한 구석에는 살구꽃이 수줍게 피어 봄을 재촉하고 있다. 다 아버지가 심어 놓으신 것들이다. 평생 실속 없는 것들은 취급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였다. 마당에도 꽃보다 채소를, 정원수보다 유실수를 심으셨던 분이셨다. 그래도 살구꽃 피는 것은 좋아하셨다. 꽃 아래 서 계신 노년의 아버지를 보며 잠시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전쟁통에 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어린 소년의 모습을 본 것도 같았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아버지는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고아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하셨다. 일곱 살 나이에 헤어진 아버지를 찾느라 세 살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수십 킬로가 되는 길을 걸어갔다고 하셨다. 고아나 다름없는 어린 두 형제가 걸식하며 걸어갔던 그 이야기를 아버지는 감정에 복받쳐 수차례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그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그 시대를 직접 겪지 못한 세대이고 아버지의 안온한 그늘에서 뽀듯하게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는 흥이 참 많으신 분이셨다. 청년기에는 미군부대에 다니셨기에 양키 문화를 제법 알았고 하모니카를 불며 탭댄스를 추셨던 댄디보이였다. 술에 취하신 날이면 아버지의 화음 섞인 하모니카 연주와 현란한 탭댄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얼굴도 서구적 미남형에 속해서 내가 보기엔 신성일보다 못해 보이지 않았다. 이후 무지막지한 농사일로 얼굴이 그을리고 늙어가셨지만, 말년의 아버지를 본 내 친구들이 얼굴에서 ‘잘생김’을 찾아내곤 했으니 그로써 일부 증명이 된 셈이다.
일요일이면 늦도록 주말의 명화를 보시며 특히 서부극 영화에 심취하셨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남녀 차별이 없으셨기에 어머니가 안 계실 때는 아버지께서 손수 밥을 하시고 우리들 도시락도 싸주셨다. 영화를 보시다가 비빔국수를 직접 만들어 함께 야식을 먹기도 했다.
아버지는 몸 안에 숨은 암세포와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지 이 주일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일주일간 아버지를 간호했을 때 건강에 차도를 보이셨기에 늑막염을 진정시키고 항암 치료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잠시 일 때문에 병원을 비우던 날 아버지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나는 “아빠 금방 다녀올게요” 하고 말했고 아버지는 “밤에 잠도 못 잤는데 운전 조심해라” 하며 헤어졌는데,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우리 형제들은 시골집에 앉아 한잔하며 떠들썩하게 아버지를 회상했다. 아버지의 커다란 미제 숟가락, 방귀 소리, 낡은 바지 같은 이야기를 하며, 깔깔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웃었다. 마치 울음은 마음속에 잠시 감추어 두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열두서너 살 어린아이가 된다. 잠든 나를 안아서 이불 위에 누이시던 아버지, 약골인 나를 점퍼 속에 넣어 업고 눈보라를 헤치며 등교시켜 주시던 다정한 아버지. 잘 삐지던 나를 “꼴보야”라고 놀리며 귀여워해 주시던 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늘 계시던 시골집에서 자리를 옮겨 이제 내 마음속에 살고 계신다.
다 고아진 사골 국물을 떠내고 두 번을 더 우려냈다. 점심때부터 시작한 불 때기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우리 사남매는 음식상에 모여 앉아 또다시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소환하며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그 상 자리에 함께 앉아 여전히 우리들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