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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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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한국문인협회 고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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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수필 창작과 이론11

 

 

1.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가
어떤 수필이 과연 좋은 수필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수필은 어디까지나 문학이기 때문에 객관적·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그것을 읽는 사람의 개인적인 판단이나 주관,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각자의 환경이나 이제까지 살아온 삶, 교육 정도, 남녀 간의 성적(性的)인 차이, 나이, 직업, 시대나 사회상, 그 글을 쓴 사람과의 관계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똑같은 수필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아주 훌륭한 수필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좋은 수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수필이란 대체로 누가 보더라도 좋은 법이며, 좋지 않은 수필은 누가 보더라도 대체로 좋지 않게 느껴지는 수가 많다.
또 명확한 기준을 세우거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도 좋은 수필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성이나 특징, 또는 훌륭한 면이나 독특한 면이 있게 마련이다.

 

①주제가 선명하고, 그 주제와 내용이 잘 맞는다
주제가 선명하지 못하거나 주제가 불분명한 수필은 결코 좋은 수필이 될 수 없다. 또한 그 주제와 내용이 잘 맞지 않고 어긋나 있는 수필도 역시 좋은 수필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주제부터가 선명하고, 그 주제와 내용이 잘 맞아떨어지는 수필이라야만 좋은 수필로서의 한 가지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②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더러 어려운 말이나 어려운 내용으로 쓰인 글이 좋은 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특히 수필에 있어서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수필에서의 문장이나 단어는 가급적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선택해서 쓰는 것이 원칙이요,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그래야만 수필의 특성, 수필의 멋과 묘미를 한껏 살릴 수 있으며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설령 철학적인 내용이나 전문적인 견해 등을 쓸 때에도 가급적 쉽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나 문장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 만일 자신의 학식이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 애써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쓴다면 더욱 큰 잘못이다.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는 평범하고 쉬운 단어나 문장을 썼다고 해서 곧 그 글 자체가 평범하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평범하고 쉬운 단어나 문장을 썼더라도 그 속에 진실이 담겨 있고, 내용이 훌륭하고 독창적이며, 문학적 향취와 감동적 요소가 충분하면 그 글은 얼마든지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좋은 수필일수록 쓸 때는 어렵게 쓰이지만, 막상 그것이 발표될 때 보면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잘 가다듬어져 있기 마련이다.

 

③문장이 대체로 간결하면서 짧다
물론 문장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수필이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좋은 수필들 중에는 문장이 긴 수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좋은 수필들 중에는 문장이 긴 수필보다는 문장이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짧은 수필이 훨씬 더 많다. 이것은 불필요한 표현이나 묘사, 군더더기의 말 따위를 과감히 없애 버리고 꼭 필요한 단어나 묘사 등만 적절히 선택해서 썼기 때문이다.
특히 수필 문장은 가급적 압축하고 절제하여 짧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수필의 특성이나 표현 방식 등과 잘 부합된다. 또 문장이 길어지다 보면 내용이 산만하고 복잡해지며 이해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단순히 문장이 짧기만 하다고 해서 곧 좋은 수필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문장이 짧기만 하고 그 속에 압축된 표현이 나타나 있지 않으면 이해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④수필로서의 멋과 위트가 넘치며 재미도 있다
좋은 수필에서는 수필로서의 멋과 위트가 넘쳐흐르는 법이다. 흡사 꽃에서 아름다운 꽃내음이 넘쳐흐르는 것과 같다.
또한 꽃에서 향기가 없으면 꽃으로서의 가치와 멋이 상실되듯이, 수필에서 멋과 위트, 그리고 재미가 없으면 수필로서의 가치와 멋이 상실되고 만다. 수필을 읽는 즐거움, 수필로서의 재미가 있어야 한다. 멋과 위트가 넘치며 재미있는 내용과 멋진 표현이 담겨 있는 수필이 비로소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⑤강렬한 인상을 풍기거나 잔잔한 충격이나 감동을 안겨준다
좋은 수필에서는 대개 어떤 강렬한 인상이 풍겨져 나온다. 또한 그것이 독자들의 가슴속에 잔잔한 충격이나 깊은 감동, 또는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⑥솔직함과 진실성이 넘친다
어떤 꾸밈이나 가식, 또는 거짓이나 허위가 담겨 있는 글은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며도 가식과 허위가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식이나 허위가 담긴 글을 쓴다는 것은 수필가로서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솔직함과 진실성이 넘치는 글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솔직함과 진실성은 수필문학의 특성이자 매력이다.

 

⑦착상이나 표현이 기발하거나 뛰어나다
좋은 수필에서는 으레 기발한 착상이나 멋지고 독창적인 표현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평범한 착상이나 안이한 사고, 흔하거나 진부한 표현 따위로는 좋은 수필이 될 수 없으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없다.
독자들은 자신이 읽는 글에서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착상이나 멋진 표현, 새롭고 독특한 그 무엇이 담겨 있기를 원한다. 독자는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착상이나 멋진 표현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면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안겨 주는 수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⑧자만이나 자기 과시가 배제되어 있다
선한 마음으로 쓰이지 않은 글이나 어떠한 목적의식이 담겨 있는 글일수록 자만이나 자기 과시가 실려 있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고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이다.
이러한 자만이나 자기 과시, 목적의식이 담겨 있는 글은 결코 좋은 수필이 될 수 없다. 반면에 좋은 수필일수록 이러한 것들을 냉정히 배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2.수필 감상의 방법과 태도
어떤 수필 작품을 통해 그 수필을 쓴 작가의 심정이나 의도를 깊이 음미하고 작가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사고 영역을 넓히고 올바르고 훌륭한 가치관이나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이는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다. 이것이 수필을 읽고 감상하는 목적, 의미라 하겠다. 즉, 우리는 타인이 쓴 수필 작품을 올바로 읽고 감상함으로써 그 수필을 쓴 작가의 심경이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삶과 정신세계를 보다 가치 있고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이 쓴 수필에 대한 올바른 감상과 정확한 이해는 그 작품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가치 평가의 기본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로소 훌륭한 수필 작품의 참맛과 가치를 깊이 맛보고 깨달을 수 있으며, 아울러 ‘문학적 희열’과 삶의 기쁨이나 보람 같은 것들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쓴 수필 작품을 보다 올바르게 감상하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올바른 수필 감상법과 감상 태도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보다 올바르게 감상하고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음악이나 미술에 대한 올바른 안목과 판단 방법이나 판단 기준이 필요하듯이 수필 작품을 올바로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이러한 것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판단 방법이나 판단 기준, 또는 올바른 안목이나 뛰어난 분별력 등이 필요하겠으나,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우선 많은 수필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다
어떤 물건이 보다 좋고 나쁜지, 또는 그 물건 나름대로의 특성이나 다른 물건들과의 차이점 등을 가장 손쉽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여러 가지 물건들을 서로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각 물건이 지닌 장단점이나 특성, 차이점 등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고, 비교 안목이나 올바른 판단 기준도 생긴다.
또한 어떤 말이 훌륭한지 알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말들을 타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백 마리의 말을 타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좋은 말을 가려낼 수 있다’는 옛말도 전해 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이고, 또 어떻게 수필을 읽고 감상하는 것이 좋은 태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많은 수필 작품들을 서로 읽어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히 자신들이 읽은 수필 작품들을 서로 비교해 보게 되고, 그런 가운데 어떤 수필이 좋고 나쁘며 또 어떻게 수필을 읽고 감상하는 것이 좋은 태도인지를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그야말로 ‘경험이 곧 스승이요’ ‘체험이 약’이 되는 것이다. 직접 체험한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진리만큼 값지고 정확한 것도 드물다.

 

②수필 작품을 읽으며 끊임없이 사색하고 나름대로 판단과 재정리를 해 보아야 한다
한 편의 수필 작품을 읽더라도 그것을 건성으로 대충대충 읽거나 읽고 난 후에도 그 수필에 관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건 결코 수필을 읽는 좋은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더러 ‘수필은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수필을 대충 한 번 훑어보는 경우가 많다.
수필의 특성상 누구나 부담감 없이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수필을 건성으로 읽어도 된다거나 읽은 후 나름대로의 사색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찬찬히 읽으며 많은 사색이 요구되는 것이 수필이다. 수필을 흔히 ‘사색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③선입관이나 편견, 또는 아집이나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선입관이나 편견을 갖고 대하면 아무래도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잘못 보게 된다. 아집이나 자만심, 또는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나 열등감 등을 갖고 대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릇되거나 고정된 관념으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고 객관성과 냉정한 판단력이 상실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수필 작품을 읽으며, 또는 읽기도 전에 그 수필에 대한 나쁜 선입관이나 편견 따위를 갖고 대한다면 그 수필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정확한 평가는 할 수 없기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수필이라도 이처럼 나쁜 선입관이나 편견 따위를 미리부터 갖고 대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훌륭한 수필로 보일 리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 작품을 읽고 평가할 때에는 이러한 그릇된 사고방식, 고정되고 고루한 관념 따위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보다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문학 작품을 대하는 기본 태도이며, 수필 감상의 기본적 자세이다.
비록 어떤 수필을 쓴 사람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다거나 그 사람의 인간성이 나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그 사람이 쓴 수필에까지 연장시켜 보아서는 안 된다. 수필을 쓴 사람과의 관계나 그 사람의 인간성 따위와 그 수필의 가치와 문학성 등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것이며,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그리 떨쳐 버리기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과감히 떨쳐 버리고 수필 작품을 대해야만 비로소 그 수필의 진면목과 참다운 가치, 장·단점 등을 정확히 살필 수 있다. 일반 독자들은 대개 수필을 쓴 수필가와 개인적인 친분이나 미움 같은 사적인 관계가 별로 없겠으나, 그 수필을 쓴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유명도,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 등에 따라 자칫 편견이나 선입관 등을 갖기 쉬우므로 이 점을 보다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④성숙한 의식과 올바른 가치관,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수필이 좋고 나쁜지, 또 그 수필이 지닌 장·단점과 특성 등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읽는 독자 스스로가 성숙한 의식과 올바른 가치관,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판단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평소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의식 수준과 인격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독서와 토론, 사색 등을 통해 스스로의 자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밖에도 수필 감상의 올바른 방법과 태도 등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기본이 되는 것은 수필을 올바르게 감상하고 이해하려는 열의와 관심이라 하겠다. 아울러 수필을 쓴 작가의 심리 세계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자세 또한 중요한 일이다.
특히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수필을 쓰기에 앞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다른 사람들이 쓴 수필 작품 등을 많이 읽고 감상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3.‘수필의 성격’을 통한 수필의 감상과 그 의미
어떤 수필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고 정확하고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읽고 있거나 읽으려는 수필이 어떤 성격의 수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모든 수필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나 성격이 있는데, 그 특성이나 성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나면 그 수필을 이해하고 올바로 감상하는 데에 한결 도움이 된다.
흔히 수필은 그 내용이나 특성, 문체나 형식, 수법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격으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소재를 가지고 쓴 수필이라 하더라도 그 수필을 쓴 사람의 주관적 견해나 판단,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태도나 관점 등에 따라 수필의 성격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어느 걸인에 대한 수필을 쓰더라도 어떤 사람은 걸인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사색적이며 감성적인 태도로 쓸 수 있는 데 비해,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나 빈부 격차의 모순된 현실 등으로 보고 비판적 견해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태도로 수필을 쓸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수필을 읽는 독자들도 역시 자신의 견해나 사고방식, 가치관, 삶의 방식이나 자라온 환경, 교육 정도나 생활 수준 등에 따라 각기 다른 견해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즉, 어떤 독자는 수필에 나타난 걸인의 모습과 그에 따른 작가의 태도나 견해를 보고 적극 찬성하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독자는 그것에 적극 반대하며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수필을 쓴 작가와 독자의 견해나 태도가 일치하며 호흡이 잘 맞게 되면 그 수필을 읽은 독자는 그 수필이야말로 아주 훌륭한 수필이라고 여길 것이다. 반면에 수필을 쓴 작가와 독자의 견해나 태도가 일치하지 않거나 상반하게 되면 그 수필을 읽은 독자는 그 수필을 좋지 않게 여기며 비판적 견해를 나타낼 것이다.
따라서 똑같은 수필이라고 해도 그것을 읽은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평가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로 수필을 쓰는 작가는 갈등이나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관적인 평가는 독자들이 나름대로 하는 것이며, 여기에까지 작가가 직접 간여할 수는 없다. 다만 작가는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문학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수필을 쓰면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수필 작품을 읽고 감상하며 평가할 때 맹목적인 자기 견해나 편견 따위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 수필이 지닌 특성이나 성격, 또 작가의 심경 등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의미와 가치를 찾고, 나름대로 평가와 판단을 하여야 한다.
특히 수필의 성격 파악은 그 수필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의 첩경이 되는데, 수필의 성격에 관한 학설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3종류 설
①문학적 수필, ②문학론적 수필, ③지시적 수필

 

2 5종류 설
①자기반성 형식의 수필, ②인생 및 인간의 성품과 속성에 관한 수필, ③일상사의 관찰에 관한 수필, ④자연에 대한 수필, ⑤인간사(人間事)에 관한 수필

 

3) 또 다른 5종류 설
①개인적인 경험과 자기 분석과 성찰에 관한 수필, ②인생의 반성에 관한 수필, ③친근미가 있는 일상사의 반성에 관한 수필, ④자연에 관한 수필, ⑤작가의 감상이나 의견에 관해서 쓴 수필

 

4)8종류 설
①사색적 수필, ②비판적 수필, ③스케치 수필, ④담화 수필, ⑤개인 수필, ⑥연단(演壇) 수필, ⑦성격 수필, ⑧사설(社說) 수필

 

5)10종류 설
①관찰 수필, ②신변 수필, ③성격 수필, ④묘사 수필, ⑤비평 수필, ⑥과학 수필, ⑦사색적 수필, ⑧담화 수필, ⑨서간(書簡) 수필, ⑩사설(社說) 수필

 

여기에서 나오는 첫 번째의 ‘3종류 설’은 일본의 학자 히사마쓰 센이 제시한 설이다. 그리고 두 가지의 ‘5종류 설’ 중에서 첫 번째의 ‘5종류 설’은 일본의 도가와의 설이다. 또 ‘5종류 설’ 중에서 두 번째의 ‘5종류 설’은 베르코크 교수가, ‘8종류 설’은 우리나라의 백철(白鐵) 박사가 주장한 설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10종류 설’은 미국의 백과사전에서 분류하고 있다.
물론 모든 수필은 이들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때로는 두 가지 이상의 것에 모두 포함될 수도 있고 그 분류나 분류를 위한 판단이 어렵고 모호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류, 그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분류를 통한 수필의 성격 파악과 이를 통해 수필 작품을 보다 올바로 읽고 감상하며 수필의 멋과 묘미, 문학적 가치와 예술성을 깊이 깨닫고 나아가서는 자아 발견과 정신적 성숙 및 각성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이다.

 

4.수필 감상에 있어서 유머와 위트(해학과 풍자)
유머와 위트, 또는 해학과 풍자는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기쁘게 해주며, 각박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경직된 감정을 순화시켜 인간관계를 보다 부드럽고 친밀하게 해준다. 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웃음 속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 수필에 있어서의 유머와 위트이다.
이런 유머와 위트, 해학과 풍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시대나 지역, 인종, 나라, 가치관, 지역적 특성이나 환경, 풍습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되고 변천되어 왔다.
특히 유교 문화나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던 동양권에서보다는 보다 개방적이고 사교적인 모임이 많은 서양권에서 일찍부터 유머와 위트, 또는 해학과 풍자가 다채롭게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동양권에서도 유머와 위트는 은밀하면서도 때로는 노골적으로 꾸준히 이어 내려왔다.
이를테면 중국은 오랫동안 유교 문화와 불교 문화가 번성해 온 나라이면서도 일찍부터 ‘우인담(愚人譚)’, ‘골계담(滑稽譚)’, ‘풍류담(風流譚)’, ‘풍자담(諷刺譚)’, ‘만담(漫談)’ 등과 같은 다양한 명칭으로 해학과 풍자가 성행해 왔다. 우리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유교 문화와 암울했던 역사와 현실적인 생활고의 영향 때문인지 한(恨)과 눈물, 억압과 분노로 실생활에 있어서 해학과 풍자는 풍성하지는 못했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특히 수필문학은 유머나 위트, 또는 해학과 풍자와는 더욱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수필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소재로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상적인 삶 속에서 발견되는 해학과 풍자를 적절하고도 절묘하게 삽입함으로써 일상적인 평범한 삶의 모습을 비범하게 만들어 문학적 가치와 예술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수필의 멋과 묘미를 살리며 수필을 읽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안겨 줄 수 있다.
수필에서의 유머나 위트, 또는 해학과 풍자는 흡사 ‘약방의 감초’나 ‘음식에서의 소금’과도 같이 풍미와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수필로서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일찍부터 수필문학이 발전되고, 베이컨을 비롯해서 램, 체스터톤, 가디너 등 훌륭한 수필가들을 많이 배출한 영국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이들의 뛰어난 수필 작품 속에는 대부분 멋지고 기발한 유머나 위트, 또는 해학과 풍자가 많이 실려 있다. 이를테면 가디너의 「모자 철학」 같은 수필작품은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체득되어진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글이다.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수필작품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피천득의 「금반지」나 「술」, 이희승의 「딸깍발이」, 「오척단구」 등과 같은 수필작품이 이에 속한다.
그 중 하나인 피천득의 「술」의 일부를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 철철 넘치는 맥주잔을 바라다보면 한숨에 들이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차라리 종교적 절제라면 나는 그 죄를 쉽사리 범하였을 것이요, 한때 미국에 있던 거와 같은 금주법(禁酒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벌금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술을 못 먹는 것은 나의 체질 때문이다.
나는 학생 시절에 어떤 카페에서 포도주를 사 본 일이 있다. 주문을 하고는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값을 치르고 나오려니까 여급이 쫓아오면서 왜 술을 안 마시고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 술빛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 그 여급은 아연한 듯이 나를 쳐다만 보았다. 그 후 그가 어떤 나의 친구에게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내 이야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
나는 술과 인생을 한껏 마셔보지도 못하고 그 빛이나 바라다보고 기껏 남이 취한 것을 구경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여자를 호사 한 번 시켜 보지도 못하였다. 길 가는 여자의 황홀한 화장과 찬란한 옷을 구경할 뿐이다. 애써 벌어서 잠시나마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들의 남자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밤새껏 춤도 못 추어 보았다. 연애에 취해 보지도 못하고 사십여 년을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써 놓은 책들을 읽느라고 나의 일생의 대부분을 허비하였다. 남이 써 놓은 책을 남에게 해석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남의 셋방살이를 하면서 고대광실을 소개하는 복덕방 영감 모양으로 스물다섯에 죽은 키츠의 「엔디미온」 이야기를 하며, 그 키츠의 죽음을 조상하는 셀리의 「아도니스」 같은 시를 강의하며 술을 못 마시고 산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으로서의 애환과 고충, 여러 가지 에피소드 등을 진솔하고도 실감나게 그려 놓은 수필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비유를 곁들인 유머와 위트, 잔잔한 해학과 풍자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특히 “나는 여자를 호사 한 번 시켜 보지 못하였다. 길 가는 여자의 황홀한 화장과 찬란한 옷을 구경할 뿐이다. 애써 벌어 잠시나마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들의 남자들에게 감사한다.”는 것과 같은 글귀는 곰곰이 되새겨 볼수록 미소를 더욱 자아내는, 유머러스한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저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렇듯 수필에서의 해학과 풍자는 수필의 멋과 운치, 문학적 가치와 향훈을 더욱 높일 뿐만 아니라 그 수필을 읽는 사람에게 수필을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때로 큰 감동을 안겨 준다. 나아가서는 사람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어둡고 슬프며 차가운 것들을 조금씩이나마 거두어 가기도 하는 것이다.
수필을 감상할 때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수필이 가져다주는 신선하고도 경쾌한 수필의 맛을 느끼며, 유머와 위트가 수필의 주제나 내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도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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