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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힘과 방향

한국문인협회 로고 원준연

수필가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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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외국어를 배우는데, ‘웃으며 들어갔다 울며 나오는 언어가 일본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일본어는 우리와 어순이 같고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깊이 파고들수록 일본어도 역시 외국어라서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문학의 장르에서 배우기 쉬운 장르가 ‘수필(隨筆)’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아마도 수필의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여,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던가, ‘무형식의 신변잡기 글’ 정도로 잘못 인식된 탓이다. 그러나 수필은 그렇게 쉽사리 써지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수필 고유의 미덕과 강점을 살려서 감동의 글을 쓰려면, 쓸수록 어려운 것이 수필이다. 오죽하면, ‘웃으며 들어갔다 울며 나오는 문학 장르가 수필’이라는 말이 회자되었을까. 어쩌면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가 요구되는 문학 장르가 수필은 아닐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수필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가 문학 지망생이나 독자들을 수필로 끌어들이는 데는 한몫을 하였을 것 같다.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수필의 저변 확대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필 창작을 산통에 비유하는 것처럼 언어나 형식의 쇄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타성에 젖어 안이하게 작성을 한다면, 독자가 감동을 받거나 공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퇴직 후의 여기쯤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분골쇄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기울여져야 어느 문학 장르보다도 주목을 받는 수필 문학이 될 것이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문화의 급속한 확산으로 책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요즘에는 다소 난해한 시나 분량상 조금 지루한 소설보다는 수필이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시나 소설의 묘미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2022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필집이 문학 전체의 약 18%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수필이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수필 문학이 지닌 장점을 잘 살리면 오히려 인공지능 시대를 수필의 시대로 만들 수 있는 호기는 아닐까. 여기에 우리나라의 쾌거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불러온 문학에의 기대와 희망은 문학계 전체로 이어져서 나비효과처럼 더욱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학생이나 성인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역시 디지털 환경의 영향과 독서 부족, 그리고 어휘력 약화가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문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시나 긴 이야기책인 소설보다는 아무래도 분량 면에서 길지 않고 진솔한 삶의 깊이와 위트, 유머가 곁들여진 한 편의 수필은 학생이나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학이다. 경험을 공유하며 때로는 미소를 짓고 때로는 눈물을 머금으며 함께 느끼는 울림은 독자들을 더욱 끌어당기고 수필의 진수를 느끼게 할 것이다. 자연히 수필집을 가까이하고 사전을 들추는 재미를 느끼게 되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해력의 쇠퇴와 어휘력의 약화도 점차로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느 문학 장르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퇴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퇴고의 과정에서 문장력이 더욱 향상됨을 느끼는 것은 누구라도 경험하는 과정일 것 같다.
다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산문 형식의 글이라 하여 완성도가 높지 않은 수필을 난발하면 독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작가 스스로가 만족하는 작품이 아닌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수필은 신변잡기의 가벼운 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AI, 문해력 저하의 시대에, 이를 극복하며 시대를 끌어나갈 수 있고 독자에게 친숙한 수필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수필이 지닌 힘이고 수필 문학이 나가야 할 방향이다.

 

어느 문학상의 심사평에서 읽은 문학평론가 이규식 교수는, ‘힘이 있는 문학, 힘을 주는 수필은 우선 현실 의식에 투철함을 전제로, 현실적 관심사를 중심으로 언어 표현에 대한 자상하면서도 치열한 배려를 동반해야 한다. 작가 의식에는 그가 당면한 현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합리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고, 현실의 불합리, 부조리에 맞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궁리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까지도 한 편의 수필을 통하여 모색해야 할 것이다. 수필의 힘과 가능성은 그만큼 웅숭깊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도 공감을 표하는 바이다.
수필 문학의 중요한 역할은 마음의 정화에서 오는 정신적 안정감과 말단 세포로부터 전해지는 활력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처한 현실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궁구하는 데까지 외연의 폭을 넓혀야 한다. 한 편의 수필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바로 세울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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