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밥상에 앉는다세월의 더께 퇴색한 꽃으로 피어난다우리는 마치 예수의 제자들처럼 둘러앉아3대가밥을먹었다앉은뱅이밥상에 앉으면잠시 아버지 손, 못 박힌 예수의 손이 되고이젠 하늘에 걸린 어머니 행주치마일찍 시집간 누이의 검은 얼굴에 클로즈업 된다 우리는 마른버짐이 하얗게 핀 얼굴을 하고이 밥상에 매달렸다.저 밥상 한 켠에 피어나는 눈물꽃불잉걸
- 김기동(예인)
아주 오래된 밥상에 앉는다세월의 더께 퇴색한 꽃으로 피어난다우리는 마치 예수의 제자들처럼 둘러앉아3대가밥을먹었다앉은뱅이밥상에 앉으면잠시 아버지 손, 못 박힌 예수의 손이 되고이젠 하늘에 걸린 어머니 행주치마일찍 시집간 누이의 검은 얼굴에 클로즈업 된다 우리는 마른버짐이 하얗게 핀 얼굴을 하고이 밥상에 매달렸다.저 밥상 한 켠에 피어나는 눈물꽃불잉걸
나는 보라색이 좋다붉음도 아닌 파랑도 아닌존귀와 신성을 겸한조화(調和)의보라색이 좋다파랑색과 붉은색은 천상의 궁합둘을 합쳐 도화지에 쏟으니내가 좋아하는보라색 제비꽃이 그려졌다빨간 태극의 문향들이 오늘도은빛 머리들의 손을 끌고광화문에 모이고수정처럼 고운 여린 손목들이눈 비 내리는오색의 밤하늘을 출렁거려도보랏빛 제비꽃은 언제 피어날는지가파른 협곡바람 부는 언덕
내비게이션 하나 없이 울산 길을 나서니 어둠 속 길목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우리 4남매의 이정표였던 그분어둠 속에서조차 길을 읽던 눈빛이 희미한 별처럼 마음을 흔든다지도 한 장 없이 앞서 걸으셨던 아버지 그 발자국마다 남겨진 숨결이지금도 넘어지려는 우리를 일으킨다손끝에 맺힌 땀방울은 이정표가 되고 세월 속에 잊힌
사랑하다 죽지 않으면 별이 될 수 없으리별이 되어서도 죽도록 사랑할 수 없으리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떠나네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진리 안에 있는 까닭에 진리의 새벽을 인도해주는 별을 따라 걷는다별이 뜨는 강가에서 그대 오기를 기다리며사랑 주고 돌아오는 등대 불빛을 만난다천 번은 휘어져야 열리는 뱃길을 기다리며더 멀리 비추지 못해 우는 별
연못가에 서서햇빛에 그을린 은빛 물결 바라보다구름 한 점 섬이 되었다소낙비 내릴 때흠뻑 옷깃을 적셔도무탈한 표정에 헛웃음을 켠다비 그친 후호수 한가운데 머물던 섬도 사라지고실눈을 뜨고 있는햇살이 눈부시다세상사누구 흐르다 했나인생사누가 힘들다 했나돌고 돌아가면 제자리인 인생길그 끝은 흙무덤인 것을.
새벽에 일어나 창 밖을 보네 하늘의 별들이 밤 지켰네 꿈 생각 아슴히 동트는 시간 괜한 서러움 총총 사라져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동산 하늘 노을 붉네
팔자와 운명은이미 숙명적으로 정해진 길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팔자는 「무녀도」*가 연상되는샤머니즘적인 토속 냄새가 나고운명이란 진보된 이성적 언어로 비극적인 「햄릿」* 냄새가 난다팔자는 동양적인 언어로카멜레온의 변신이 들어 있고운명은 서구적인 언어로부동의 각인이 박히다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팔자 교향곡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
종이를 접어저고리를 만든다공을, 꽃을, 보석을 만든다많은 것을 만든다아!이 흐뭇함종이를 만지며노여움을 접는다근심을 접는다나를, 너를, 세상을 접는다 모든 것을 접는다아!이 평온함.
고향의 문협에서 원고청탁이 왔다 고마움이 둥둥 하늘을 난다겨울 해 같은 고향의 추억이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파닥거린다뜨거운 가슴 열어고향의 노래 어줍게 읊어본다화답으로 온쌀한포대에 고향 이름 또렷이 빛난다시가 쌀이 된기적 같은 날,석양도 잠시 멈추어 얼굴 붉힌다
스르륵!세월에 잠긴 흔적들 사이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로시시각각 갱신되는소리의 유혹들삐리릭!디지털 시대 마이다스의 손이 피리 불며 빗장 여는 소리덜커덩!바람든 가시내가슴 뛰는 소리철커덩!교도소 대문에쇠창살 채워지는 소리오늘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시원(始原)의 숲속으로 떠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