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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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등이 흔들리며 새롭게 분주해지는 섬/ 조금 전 등불이 켜진 골목길에서/ 이방의 꽃잎을 주웠다/ 조리개를 오므리자 천연덕스러워진 나와 마주친다// (중략)// 고단한 흔적을 끌어안은 바다는 잔잔해지고(자작시 「홍도」 일부)
어두운 바다를 응시하는 한 점의 불빛이 있다. 그것은 길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표식이다. 나는 그 불빛을 등대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나름의 등대를 품고 살아간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다. 삶이라는 항해는 순풍보다 역풍이 더 잦고,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지점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다. 등대는 아직 끝이 아니라고, 너는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세상은 물과 같아서 자주 넘치거나 증발한다. 감정도 기억도 사람도 그렇다. 흐르는 것들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 안에 하나쯤은 고정된 등대의 빛이 필요하다. 그것은 꺾이지 않는 신념일 수도 있다. 바람에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불빛, 스러지지 않기 위해 자기 안의 기둥을 세우는 일. 어쩌면 살아낸다는 말과 가장 가까운 말일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등대가 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길 잃은 이들을 조용히 비추는 빛. 그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되고 싶었다. 하루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어김없이 등대의 불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저녁. 홀로 서 있는 등대는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이며, 묵묵히 손끝을 놀려 밥을 짓던 어머니이기도 하다.
“늦었구나, 배고프지?”
불빛으로 인도하는 어머니. 거친 항해를 마친 자식에게 저녁밥 한 숟갈의 의미는 경건한 어머니의 기도다.
어머니의 밥상은 따뜻한 국과 반찬들, 그리고 무심히 놓아둔 물 한 잔이다. 그 밥상에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음을 집을 떠나와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음식은 우주를 담은 듯 작은 소반 위에서 조합을 이룬다. 어릴 적 서해의 짭조름한 물맛을 따라 살았다. 생선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밥상에 자주 올렸던 반찬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은 모두 맛있게 잡수셨다. 농촌에서 자란 남편은 나와는 식성이 달랐다. 주로 오랜 숙성을 거친 장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다. 시어머님의 손맛을 어찌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나온 시간은 모든 걸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불을 켜 둔 심야식당을 차린 지 오래다. 어머니가 떠난 후, 어머니가 가르쳐 준 레시피를 응용해 본다. 절충의 미학이다. 세상은 점점 편리하고 정교하다. 정해진 온도와 시간 속에서 만들어 낸 배달 음식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남편은 손과 눈으로 대충 만들어 낸 나의 즉석 메뉴에 길들여 있다.
그의 항해가 끝나는 시간, 바닷가에 배를 대는 그를 위해 열어 둔 집.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연중무휴 밥집이다. 파도에 많이 부대낀 날에는 깃을 접지 못한 갈매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함께 날아와 떼창을 하기도 한다. 모두 휴식이 필요한 시간일 때, 그는 새벽이면 다시 바다로 나가는 성실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니 심야식당은 문을 닫을 수가 없다.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온 날은 통조림 캔을 따서 얼큰하게 그들의 입맛을 돋우고 한 잔의 소주로 회한을 풀게 한다. 그러고는 잔칫집처럼 국수를 삶아 벌겋게 버무린 매콤달콤한 국수 한 그릇을 안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등대. 불빛을 유지하기 위한 고독한 싸움, 거센 바람과 빗물에 녹슨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며 제 빛을 세상에 내어주는 일은 상상보다 외로운 일이다. 바다는 단 한 번도 같은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파도의 결이 다르고 별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겨울, 낯선 섬을 찾은 적이 있다. 밤이 되자 짙은 안개가 바다를 덮어오기 시작했다. 바다는 절망처럼 검푸르고, 바다 가운데서 산란을 시작한 바람은 마음을 들썩였다. 실은 나를 다독이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더욱 심란했다. 멀리 어둠 속에서 낡은 등대가 깜빡였다. 그 빛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시선을 고정하자 거칠었던 마음의 물결이 잔잔해지고 편안해졌다.
가끔 그날의 풍경을 꺼내 본다. 삶이란 종종 길을 잃는 일이고, 길을 찾기 위해 마음에 등대를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초상처럼 등대를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붉은 녹이 슬고, 유리창엔 소금꽃이 피고, 그 안의 나선형 계단은 오래전 발자국에 닳아 있다. 그래도 그 빛은 멈추지 않고 멀리 가 닿기를 바란다. 나도 등대처럼 살아간다면 좋겠다. 세상의 바람에 잠시 흔들려도 되돌아올 누군가에게 길 하나 열어 주며, 끝내 놓지 못한 마음의 불빛 하나 꺼뜨리지 않기를.
등대의 빛은 다다를 수 없는 곳까지 뻗어간다. 그것은 일종의 기도이자 다짐이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체념. 때로 삶이란 등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항해하는.
불을 밝히는 밤, 나도 내 안의 불빛을 확인해 본다. 아직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딘가 되돌아가야 할 항구가 있다는 것을.
등대는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