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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한탄강 물윗길에서 만난 아버지

토요일 아침 9시 40분,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고등학교 동창생 9명이 의기투합해 한탄강 물윗길 걷기에 나섰다. ‘철원 한탄강 물윗길’은 직탕폭포에서 순담계곡까지 8.5km 협곡을 물 위에서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됐다는 주상절리와 마주했다. 5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현무암 주상

  • 김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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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하얀 동아줄

하늘이 흐렸다.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오니 굵은 눈보라가 사선을 그렸다. 운전에 신경 쓰느라 고적한 설경을 놓치는 게 아쉬웠다.병원을 벗어나자 눈발이 더 세졌다. 운전석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눈이 갓난아기 손바닥만 했다. 와이퍼로 밀어내도 눈송이는 또다시 유리창에 철퍼덕 붙었다. 겨울의 낭만을 느끼기보다

  • 김은진(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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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지금, 여기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

지금, 나는 격동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인공지능의 시대를 지나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나는 자주 발걸음을 늦춘다. 변화는 언제나 속도를 요구하지만, 삶은 속도로만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체감하고 있다.요즘 사람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말한다. 삶은 어렵다고. 이 말은 더 이상 특정 세대의 푸념이 아니다.

  • 류순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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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곶감 한입

내 생활의 터전인 전북 완주군은 곶감이 유명하다. 곶감은 이곳의 겨울철 특산물로 차갑고 신선한 산간의 바람과 자연환경이 곶감을 달콤하고 쫀득하게 만들어내어 인기가 많다.얼마 전에 완주군 용진읍에 위치한 지인의 카페에 방문했을 때 올해 만들었다며 ‘고종시’ 곶감을 먹어보라 받은 적이 있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에 터지는 은은한 단맛과 씨가 없어 씹기

  • 황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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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빨간 모자

겨울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 지나면서 내 삶의 계절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겨울이 한창이다. 추운 겨울에서 혹독한 계절로 지나고 있다. 소한에서 대한으로 지나면서 느끼는 감각은 해마다 다르다. 오십 대 다르고 육십 대 다르다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촉감이 외양간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소 입김에서 뿜어 나오는 하얀 김이 그려지듯 몸도 움츠려

  • 김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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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서른아홉 번의 이사 끝에 만나는 봄

지난 성탄절 아침 9시,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지만 공기는 영하 8도의 칼바람을 품고 있었다. 두꺼운 방한복과 털모자,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눈만 내놓고 풍덕천 산책에 나섰다.2년 전, 85세의 나이에 위암 수술로 80%의 위를 떼어 내고 83kg이었던 몸무게가 63kg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자 삶을 되새기는 의

  • 황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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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평형수를 생각하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 배가 흔들린다.저녁을 먹다 말고 TV 화면 속에 눈길이 머문다. 속수무책 요동치는 배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평형수’가 떠오른다. 배의 균형과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바닥짐, 평형수. 물건을 실으면 그만큼 덜어 내고 내릴 땐 다시 채워 무게중심을 잡는다. 거친 파도를 만나 역경에 처할수록 평형수의 역할은 지대하다.나의 평형수, 그것

  • 조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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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꿈꾸는 쇠똥구리, 신전에서

“신들 곁에 온 여러분, 하늘의 영주인 위대한 신 호루스의 신전에서 예배를 올리는 여러분, 그분은 하늘을 여행하시지만,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신다. 그분은 만사가 공정할 때 여러분에게 만족하신다.함부로 비의에 입문하지 말라. 불순한 상태로 신전에 들어서지 말라. 이 성소에서 거짓을 말하지 말라. 재물을 탐하지 말라.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지 말라.

  • 류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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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고모와 삼 남매

나에게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명의 기운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가슴속 깊이 간직한 그리움이다. 산수(傘壽)를 코앞에 두고 가슴속에 오래 묻어 두었던 고모, 큰아버지, 선친, 삼 남매에 대한 그리움 한 줄기 꺼내 본다. “언제나 철들래?”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모는 그렇게 말했다. 말썽꾸러기 조카 때문에 마음 상한 남동생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 허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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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봉정사 아침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봉정사 아침은 숲으로 우거져 여전히 싱그럽다. 바윗골을 타고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명옥대를 오르니 퇴계 선생 시가 생각난다. ‘낙수대’가 밋밋하다며 ‘명옥대(鳴玉臺)’로 명명했다는데 과연 물소리가 명징하다. 사방에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 서정시를 쓰는 짙은 여름이다.퇴계 선생이 숙부인 송재 이우의 주선으로 이수령

  • 강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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