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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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설레면서 긴장된다. 익숙한 풍경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도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더 그렇다. 애초에 가려던 단체 여행이 무산되고, 우리 모임 회장님이 아시는 다른 여행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낯선 이들과의 동행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국내 여행이라는 점에 안도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90명이나 되는 사람들 속에 우리 일행은 겨우 세 명뿐이었다. 거대한 흐름에 떠밀리듯, 그렇게 1박 2일 여정이 시작됐다.
울산에서 출발한 차가 통도사 휴게소에서 우리를 태웠다. 우리 지역이 울산과 부산 사이에 자리한 덕분에 교통편이 편리하다. 더구나 휴게소 근처에 무료 주차장까지 있다 보니 삶이 윤택해지는 기분이다. 얼마나 갔을까. 잠시 쉬었다 간다는 인솔자 말에 모두 휴게소에 내렸다. 주말의 휴게소 화장실은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가 혼잡을 더하는 듯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화장실의 청결 유지 시스템이었다. 사용자가 불편하다고 느끼면 문에 붙은 정상 사용 알림판을 고장 수리 요청 쪽으로 뒤집어 두면 관리자가 즉시 청소하는 방식이다. 그 덕분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내부는 놀랍도록 깨끗했다. 이런 작은 아이디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향한 배려이자,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최고의 서비스인 것 같았다.
휴게소에서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들고 버스에 오르던 뒷자리에 앉았던 손님의 가방이 내 얼굴을 치고 갔다. 먼저 와서 앉아 있던 나는 무방비 상태로 부딪친 거라 놀라기도 하고 얼굴이라 기분이 살짝 상했다. 가방 주인은 등에 멘 가방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뒤따르던 그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은 앞으로 메고, 손으로 잡아요, 가방이 옆 사람 얼굴을 쳤으니, 사과도 하세요”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가방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럴 수 있다면서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사과를 멈추지 않았다. 문득 ‘진정한 사과는 상대가 용서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라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멋쩍기도 해서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는 그제야 안도하며 사과를 멈췄다.
첫 여행지인 구례 천은사는 천은 저수지를 품은 채 천년 고찰의 기품을 뽐내며 세상 모든 번뇌를 잊게 할 만큼 고요했다. 연중 언제든 1박 2일 절 체험도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새내기 사진 작가로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최 선생은 연신 서 보라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다 느닷없이 “동백이 옆에 서 봐요”라는 주문을 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동백꽃은 보이지 않는데 계속 동백이 옆에 서라고 재촉했다. 그때 함께 간 일행이 옆에 서자 웃으면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사진 배경 어딘가에 동백꽃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사진을 찍은 후 옆자리에 앉은 박 선생님이 나지막이 물었다.
“최 선생이 나보고 왜 동백이라 하는 줄 아세요?”
나는 깜짝 놀라며 “혹시 동백이가 선생님 별명이세요?”라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시면서 박 선생님은 동백이란 별명이 붙게 된 사연을 들려주셨다. 20여 년 전에 노인 목욕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늙어가면서 지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을 보며 연민을 느꼈다고 했다. 동백꽃은 질 때 송이째 툭 떨어지기 때문에 떨어진 꽃도 예쁘다면서 자기도 동백꽃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말을 늘 해 왔단다. 그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동백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송이째 툭 떨어져서 떨어진 것도 아름다운 동백꽃처럼 살고 싶다’는 그 소박한 바람이,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질문이 되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그분의 이야기는 여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들을 수 없었을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녹차밭을 구경하고 곡성에서 1박한 우리는 다음 날 일찍 완도로 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해무로 배편이 모두 결항이다. 청산도를 가기 위해 왔는데 정작 청산도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할 형편이었다. 짙은 해무는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완도항 인근 상가에 내린 우리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건어물 가게를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 인솔자는 청산도를 대체할 다른 여행지를 찾기 위해 분주히 전화를 돌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버스에 타라는 말과 청산도 배를 타기 위해 여객터미널로 간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버스로 이동 중에 거짓말처럼 해무가 서서히 걷히는 게 보였다. “자연의 힘이란 저런 거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청산도에 왔다가 가면 안 풀리는 일도 청산, 고민도 청산, 모든 게 청산되는 곳이 청산도”라면서 아예 눌러사는 사람까지 생겨서 줄었던 인구가 다시 늘어난다면서 사투리를 섞어가며 하는 해설사님의 구수한 입담을 들으니, 청산도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바다와 유채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영화에 나오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터져 나오는 아쉬운 탄성과 함께, 우리는 다시 만날 청산도의 푸르름을 마음속에 담고 귀가 버스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의 풍경 대신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반짝이는 바다도, 흐드러진 유채꽃도 아닌, 바로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사과하던 가방 주인, 유쾌하게 사진을 찍어주던 최 선생님, 그리고 마음속에 동백꽃 한 송이를 피워준 박 선생님까지. 여행이란 결국 단순히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얻어 돌아오는 과정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