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5.1 671호 닭서리

세상에는 재밌는 일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빠지면 서럽다 할 것 중 하나가 서리다. 서리란 떼를 지어서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몰래 훔쳐먹는 장난을 말한다. 콩, 고구마, 참외 등이 주된 목표물이었다. 콩은 불에 구워 먹었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입 언저리와 얼굴도 온통 까매졌다. 고구마나 참외는 풀밭이나 바지에 문질러 흙을 닦아낸 다음 이빨로

  • 김낙완
북마크
39
2025.1 671호 어머니와의 추억 - 사랑한다는 말도 연습이 필요

그녀는 시골 부잣집 10남매 중 넷째딸로 태어났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남편의 얼굴도 모른 채 중매로 산골 마을로 시집을 갔다. 당시 남편은 스물다섯. 그때가 1947년으로 6·25를 3년 앞둔 시점이었다. 시댁은 시부모 두 분과 시누이 둘, 시동생 둘과 조카들까지 있는 대가족이었다. 결혼 다음 날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세탁기가

  • 박종섭
북마크
38
2025.1 671호 만두가족

음식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싸우던 가족들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단체 웃음이라는 작품을 빚어내니까. 먹은 후엔 힘내서 또 싸울지라도. 그 음식이 우리 친정에서는 김치만두다.부모님은 당신들과 종신토록 함께할 큰오빠가 십 대에 가출하자 여섯 오빠 중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됐던 다섯째 오빠에게 의지하셨다. 따라서 그의 위치는 그가

  • 박순옥
북마크
28
2025.1 671호 전화로 나누는 행복

긴 여운의 풍경 소리에 암자 경내 분위기는 한층 경건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산사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갑진년(甲辰年) 첫날 아침. 강원도 홍천군 첩첩산중, 사방이 산마루에 둘러막혀 파아란 하늘만 빼꼼이 쳐다보일 뿐, 매서운 칼바람도 숨죽인 듯 적막감이 감돈다. 눈보라가 몰고 온 강추위에 기온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졌고, 며칠간 쏟

  • 김운경
북마크
36
2025.1 671호 도배를 하며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묵묵히 말없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한다는 것. 마음에 상처를 가두어 숙성, 발효 과정을 거쳐 그 앙금을 쌓아놓는 일. 그리하여 어두운 터널을 자박자박 걸어 어둠을 헤쳐 나올 한 줄기 빛을 찾아내는 일이다.빛 바랜 어둠이 내려오는 듯한 눅눅한 벽지가 눈에 거슬린다. 오늘은 기어이 도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배

  • 이미애
북마크
32
2025.1 671호 세번의 박수

시문학을 공부해오던 문우들과 도쿄로 3박 4일 문학기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설렘이 가득했던지 우리 일행은 네 시간 전에 공항에서 만났다. 단체 관광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동행인 간의 배려와 유능하고 친절한 가이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가이드와 동반하는 여행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했지만, 안내판을 들고 마중

  • 조남대
북마크
46
2025.1 671호 도라지꽃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신작로를 반 시간 남짓 타박타박 걸어가면 아버지가 일하시는 언덕배기 위 갈가뫼기 밭이 나타났다. 어머니가 싸 주신 아버지의 점심이 담긴 베보자기는 제법 무거웠다. 저만치 소나무 아래서 햇볕을 쬐던 꿩 한 마리가 내 발자국 소리에 푸드득 날아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고 아버지를 불렀다.소나무 그늘에 앉아 베보자기를 풀었다. 아버

  • 정순이
북마크
32
2025.1 671호 동창생 호원이(두 번째 이야기)

동창생 호원이는 국민학교 때 나와 같은 반으로 짝꿍을 했던 친구이다.귀향을 하고 친구들과 소통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등산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은 늘 늘었다 줄었다 한다.등산하는 날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던 친구도 같이 산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몇십 년의 세월이 어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온 이야기와 어릴 적 이야기 몇

  • 이영순
북마크
32
2025.1 671호 별 쓸모도 없는

바다낚시는 방파제나 선착장, 갯바위, 바지, 선상에서 이루어지는데 출조(出釣)를 못하는 핑계, 고기 못 잡는 핑계가 많기도 하다.밑걸림이 심하다. 바닥이 모래톱이라서 안 되고 갯벌이라서 안 된다. 파도가 일렁인다. 바람 때문에 낚시하기 힘들다. 물때가 맞지 않다. 조류가 약하다. 아니, 조류가 너무 세다. 수심이 얕다. 날씨가 흐리다. 너무 춥다. 어휴,

  • 이희순
북마크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