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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왕

한국문인협회 로고 노영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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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어떻다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뿐인데, 친구들은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나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면 되니까. 나는 혼자서도 잘 노니까.
선생님은 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인사 하나는 잘한다며 ‘인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내 꿈은 유튜버가 되는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유튜버가 되겠다고 하면 언제적 유튜버? 하며 놀린다.
그래도 처음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를 7이나 찍었다. 계단 위에서 공을 굴리고는 재빨리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공을 주워 다시 계단 위로 올라오기. 이것을 계속 반복하기. ‘그러다 다리 부러진당. 뽀그작!’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다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두 번째는 이구아나 목욕시키기. 요건 조회수 21까지 찍었는데, 그만 이틀 만에 이구아나가 죽어버렸다.
세 번째는 산양이 어떻게 절벽을 타는지 체험해보기. 돌로 쌓은 울타리 벽을 걸어보았다. 비틀대며 몇 발자국을 걸었는데 곧바로 중심을 잃고 철퍼덕 떨어졌다. 미친놈이라는 댓글이 달렸지만 그래도 조회수가 30을 넘게 찍었다. 오예!
그 뒤로 강아지 구름이와 놀기, 개미집 파헤쳐 보기, 은행알 폭탄 피해서 걷기, 길고양이에게 말 걸기 영상 등을 찍어서 올리기는 했지만 조회수가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뭔가 특별한 영상이 필요했다. 문득 휴대폰을 하늘로 집어던지면서 찍으면 영상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상 확인. 흔들리는 하늘이 찍혀 있었다. 제대로만 찍히면 작품이 나올 것도 같은데. 다시 도전. 도전의 결과는, 휴대폰이 부서졌다. 어떡하지. 아빠가 알면 엄청나게 혼낼 텐데.

 

때때로 가출을 꿈꾸었다. 한 번쯤 집에서 쉬고 싶은데 학원에 가라고 할 때나 아빠가 무섭게 야단칠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오늘 가출을 하는 거다. 무작정 발길을 옮겼다. 찾아갈 친구 집도 없고…. 처음으로 친구가 없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내 나이를 믿지 않는다. 6학년인 나를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으로 본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보고 어리다고, 애기 같다고 한다. 내가 애기 같다고? 가출을 꿈꾸는 애기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런데 배도 고프고 아무리 생각해도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는 가끔 종아리를 걷으라고 하고는 사랑의 매를 때린다.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맞지 않는 것을 맞는 것이라고 뻑뻑 우길 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의 매라는 건 틀린 말인 것 같다. 사랑하는데 왜 때리는가?
학교 공개수업 때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말해 보라고 했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아빠는 내가 잘못하면 사랑의 매를 때려요.”
그때 이후로 아빠는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사랑의 매를 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어깨를 툭툭 쳐 주었고,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다.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엄마는 언제나 사랑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나에게 가출할 기회가 주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출이 아닌 단기 출가.
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도 손을 가만두지 못한다.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만진다. 심리 상담을 받아 보고 난 뒤 아빠 엄마는 일주일 동안 절에 가서 마음공부를 해 보자고 했다.
“따지고 보면 가출도 집을 나가는 것이고 출가도 집을 나가는 것이잖아!”
“어림도 없는 소리, 가출이랑 출가랑 어떻게 같아요?”
“절에 가 있는 동안은 학원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해도 되는데?” 
펄쩍 뛰던 나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절에 도착하니 스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강아지 목탁이, 염주와 놀고 있는데 아빠 엄마와 얘기를 나누던 스님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내일부터 마음공부를 해 봅시다.”
아빠 엄마가 떠나고 난 뒤 절마당을 돌아다니며 휴대폰으로 스님 모습도 찍고 목탁이와 염주가 뛰어노는 모습도 찍었다. ‘일주일간의 가출, 아니 출가’라는 제목으로 오랜만에 영상도 올렸다.
스님이 이제 잘 시간이니 휴대폰을 맡기라고 했다. 내일부터는 자기 전에 딱 30분간만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럴 수가. 완전히 속았다. 늘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없으니 뭔가를 잃어버린 듯 텅 빈 것 같았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아빠 엄마 얼굴도 떠오르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잠은 점점 더 달아났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스님이 기도할 시간이라며 깨웠다.
새벽 5시, 스님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께 세 번 절하고 나서 불경책을 따라 읽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가 한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니 마치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았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아침공양 시간. 이렇게 일찍 아침밥을 먹은 건 처음이다. 좀 있으니 또 기도 시간, 기도가 끝나고 12시에 점심공양. 저녁 5시 저녁공양. 그리고 저녁기도.
드디어 아빠 엄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시간이 남아돈다. 항상 시간이 부족했는데. 집에서의 시간과 절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 같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소리. 긴긴 밤 잠은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배도 고프고…. 다시 새벽, 새벽 기도 그리고….
“붓글씨, 배워보고 싶은가?”
스님이 먹 가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다.
팔이 아프도록 먹을 갈고 나서야 먹물이 만들어졌다. 이제 붓 잡는 법. 붓 한 번 잡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스님을 따라 옆으로 획을 그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삐뚤빼뚤하게 선이 그어졌다. 옆으로 획 하나 긋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붓글씨를 쓰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잠시도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버릇도 많이 사라졌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거라.”
스님을 따라 ‘마음’이란 글자를 써 보았다.

 

밤사이 첫눈이 내렸다.
눈이 내린 새벽은 포근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와 쌓인 눈 위에 ‘마음’이란 글자를 써 보았다. 생각의 가운데…. 나의 생각, 친구들의 생각,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 친구들이 왜 나와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절을 찾았다.
목탁이와 염주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쫓아나갔다. 나도 달려 나가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맞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내가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 인사! 인사를 받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튜브에 올리는 거다.
아빠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인사 받을 때의 표정, 첫 번째 영상은 아빠 엄마.
“우리 성민이, 그새 훌쩍 자랐구나!”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빠 엄마가 동시에 물었다.
“우리 성민이 누구 아들?”
또 시작이다. 내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오늘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빠 엄마 아들!”
나는 아직도 유튜버를 꿈꾼다. 인사왕인 내가 인싸왕이 되는 꿈. 그리고 이제는 친구들의 마음과도 인사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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