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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백두산 자작나무

중국 선양 퉁화 지안 거쳐백두산 가는 길에흰 옷 입은 자작나무가하늘 우러러 손 모아기도하고 있었다.“앞으로는 남의 나라 돌고 돌아멀고먼길오지말고우리 땅, 함경도 혜산, 가로질러 우리 땅, 우리 산으로 오세요.”흰 옷차림 백두산 자작나무가 빼앗긴 산 고개숨 헐떡거리며 오르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어른들이 돌아 돌아 온 길

  • 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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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웃음소리

금학산을 두르고 있는 이 마을은 시시때때로 내게 눈요깃감을 내어준다. 나는 몸을 돌려 산봉우리 가득 피어오른 산 안개를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타버릴 것 같은 더위가 유난히 길어지고 있었지만 요란하게 달려와 와르르 쏟아붓고 가버린 소나기 덕분에 쓰러질 듯 길가로 엎드리던 노란 금계국들이 제법 싱그러워 보였다.나는 큰길로 곧장 나가지 않고 언덕길로 들어섰

  • 박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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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스마트한 세상

큰일이다! 분명 아침에 경쾌하고도 정확하게 울려 준 알람을 듣고 잠이 깼다. 그런데 목숨처럼 아끼는 이 물건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눈은 안방을 지나 거실과 식탁을 훑고, 손은 재빠르게 호주머니와 가방 속을 뒤진다. 없다! 순간 앞이 까마득해진다. 허둥대다 약속시간만 늦겠다. 마을버스 오는 시간에 딱 맞춰 나가야 시간도 절약

  • 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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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고래 낙하(落下)

고래 낙하(落下), Whale fall.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고래. 죽은 뒤 물에 떠오른 고래는 가장 먼저 각종 바닷새와 상어에게 뜯긴다. 수십 일이 지난 뒤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 먹장어와 해삼, 게, 불가사리 등에게 남은 살이 뜯긴다. 대양의 가장 밑바닥에 닿아 벌레에게 뼛속 지방까지 내어준다.살아서 새끼에게 극진했던 고래는 그렇게 이백 종이 넘는

  • 김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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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레닌그라드의 추억

우연히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만났다.그동안 잊고 지내온 풋풋한 시절의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사진 속에는 지금도 TV에 등장하는 왕년의 댄스가수, 한국호랑이 연구가로 유명한 촬영감독, 그리고 2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정치 유튜버가 나란히 웃고 있었는데 촬영 장소는 레닌그라드의 기차역으로 기억된다.1991년

  • 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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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인생 플레이오프

나는 인생 플레이오프 선수가 되고 싶었다.플레이오프(playoff)는 정식 시즌이 끝난 후 리그 승자를 가리기 위해 치르는 경기다. 진정한 승자를 가리기 위한 경기여서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플레이오프 참여가 결정된 선수나 팀이 명성을 떨치며 명예를 얻는 이유다. 스포츠에서는 정규 시즌 중 상위 승점을 받은 팀을 추려 플레이오프에 임하지만, 인생

  • 송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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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별것 아닌 이야기

어딘지 다부져 보이는 구석이 있어 언뜻 예쁘장한 사내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미나를 좋아했고 미나도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런 아이와 어쩌다가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캐릭터 인형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고교 시절 청개구리 모양의 일본 캐릭터가 인기였는데, 내가 가진 고리 인형은 문구점에서 팔던 모조가 아닌, 백화점에서 산 진품

  • 박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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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공통된 주관성’, 서로를 공격하다

‘정답’. 우리 사회에 과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답’이란 것이 있을까? 만약 정말로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 정답을 향해 함께 나아가며 싸움과 갈등을 뒤로한 채 하나의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다. 만약 정답이 없다면, 우리는 정답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각기 다른 의견과 길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떠한 전제에도 우리가 갈등할 이유는 없는 것

  • 박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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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서나무정이

‘서나무정이’라 하기도 하고 ‘서나무제이’라고도 했다.‘서나무’에 왜 ‘정이’라는 말이 덧붙었는지. 키 큰 서어나무들이 우거져 마치 숲의 머리처럼 보였기에 ‘정(頂)이’가 붙을 수도 있고, 동네 입구 논 사이에 있는 우물이 ‘살구정이’였던 것처럼 여기도 옹달샘이 있어 ‘서나무정이’라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서나무정이는 동네 사람들에게 정겨운 숲 이름이었

  • 노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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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 671호 옹이 이야기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어느 여름날 아빠는 나에게 바람을 쐬어 준다며 4·19탑이 있는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로 차를 태워 갔다. 차를 입구에 세우고 근처에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있는 길을 둘러보고 있었다. 새소리는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는데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가까운 경비실에서 한 아저씨가 나왔다.“어미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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