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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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다! 분명 아침에 경쾌하고도 정확하게 울려 준 알람을 듣고 잠이 깼다. 그런데 목숨처럼 아끼는 이 물건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눈은 안방을 지나 거실과 식탁을 훑고, 손은 재빠르게 호주머니와 가방 속을 뒤진다. 없다! 순간 앞이 까마득해진다. 허둥대다 약속시간만 늦겠다. 마을버스 오는 시간에 딱 맞춰 나가야 시간도 절약하고 한겨울 칼바람도 피하련만, 알려주는 앱이 없으니 가늠을 할 수 없다.
그냥 집을 나선다. 하루 일정을 비롯해 중요한 메모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멘붕이 왔나, 머리가 맹하다. 이런! 매일 태워주던 마을버스가 왔다. ‘버스비가 얼마였더라?’ 서둘러 지갑을 여니 오늘따라 그 흔한 천원짜리 한 장 들어 있지 않다. 아침부터 망신이다. 부끄러워 머리를 떨군다. 할 일이 없다. 눈 둘 곳도 없다. 수전증 환자마냥 허전한 손가락이 허공에서 경련하며 까닥인다.
간신히 버스에 몸을 싣고 조용히 마음을 다독인다. 그 사이 몇 차례는 주고받았을 카톡이 소식을 주지 않는다. 궁금하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고, 혼자만 바보가 된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요즘은 어딜 가나 스마트폰 세상이다. 반짝이는 자체발광 폰만 있으면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있어도 혼자인 세상.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스마트폰 사용은 온 국민의 스마트화 를 이루었다. 오다가다 찍어 보내는 꽃과 풍경 사진은 취미를 넘어 작가의 수준에 이르게 하고, 좋은 글과 멋진 그림 감상은 간단한 문화생활로 지적 안목을 키워주기도 한다. 또한 지구 밖의 낯선 소식도 손가락으로 실시간 접할 수 있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상마저도 생면부지의 사람과 자연스레 교감한다.
이렇게 광범위한 생활을 만들어 주고 무얼 물어도 친절히 대답해 주는 스마트한 친구와 가까이 더 가까이 지내다 보니 때론, 그의 무한 횡포를 고스란히 당하기도 한다. 출처도 모르는 글과 사진의 인용은 거의 테러 수준이며, 개념 없는 무차별 베끼기에 너도나도 공감한다고, ‘좋아요, 멋져요’를 남발한다. 쓰지도 않은 카드 결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유령 친구. 개인의 사생활 노출은 물론, 원치 않는 공간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떠돌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도 있다. 식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해도 각자 스마트폰과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건너편에 마주 앉은 지인에게도 문자로 말을 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눈은 함께하나 손과 머리는 분주히 딴 생각 속을 헤맨다. 강의실에선 선생님이 열심히 강의를 해도, 학생들은 어젯밤에 놓친 드라마 숏츠와 주인공의 옷차림, 사랑 얘기에 빠져, 책상 밑의 엄지들이 분주하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필요악’이라고 특별대우를 하기에 이른다. ‘폰장’이라는 핸드폰 관리자를 세우는가 하면, 선생님이 친히 나서서 핸드폰을 강제 압수한다. 학교 올 때 맡기고, 집에 갈 때 찾아가는 것이다. 그 덕분에 학생들은 수업시간 동안 핸드폰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다보니 얼마 전엔 놀라운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어느 고교의 선생님이 학생들의 핸드폰을 모두 모아 보관하던 중 분실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핸드폰이라는 게, 부모는 공짜폰에 유행 지난 재고를 사용한다고 해도, 자녀들은 따끈따끈한 신형 고가 폰을 손에 쥐고 다니는 세상이다 보니, 분실한 핸드폰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훔쳐간 도둑은 행방이 묘연한데 변상은 해야 하고, 급기야 애꿎은 선생님의 중고차가 팔려 나갔다는 이야기다. 선생님의 낡은 발이 스마트한 세상을 힘겹게 살아나갈 이야기가 기사로 나온 것이다.
어디 핸드폰뿐이랴, 언제부턴가 생활 전반을 스마트함이 점령해 버렸다.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노년층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이 많다. 식당엘 가도 밥 한 그릇 시켜 먹을 수가 없으며, 카페에서 차 한잔 주문하려 해도 힘겨울 때가 많다. 키오스크인지 뭔지 종업원은 볼 수가 없고 깜깜한 자판이 손님을 응대하니, 어찌어찌 눈치껏 그림이나 사진으로 적당히 메뉴를 골랐다 해도 값을 치르지 못해 반복 또 반복, 그러다 처량히 뒤돌아 나오는 일도 허다하다. 현금 몇 푼 찾으려 해도 한 길 건너 있던 은행 간판을 볼 수가 없으니 멀리까지 원정을 가야 한다. 몸이 아파 의사를 만나려도 병원 예약이 어렵고, 어디 급하게 갈 일이 있어서 택시 한 번 잡고자 해도 쌩 하니 지나가 버리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스마트한 세상 살이가 좀 고된 게 아니다. 글을 몰라 까막눈이 아니고 핸드폰으로 일처리를 못하고, 키오스크 자판을 못 다루니, 구차하고 처량한 까막눈 신세가 되어 간다. 첨단 세상에서 급기야 미아가 되어 버릴까 몹시 두렵다.
허나 어차피 세상은 변했고, 우리는 그 속에 던져져 있다. 스마트한 세상 너무 힘들다고, 등지지 말고, 그럴수록 이웃끼리 친구끼리 자주 만나 정보를 주고받아야 한다. 다정한 숨소리를 곁들여 따뜻하고 친절한 말로 안부를 묻고, 혼자만 알던 비법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만났으니 두 손을 꼭 붙잡고 힘과 용기를 주자. 혹, 시답지 않은 말을 하더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미소 띤 얼굴로 “그래, 그렇구나!” 호응을 해주자.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웠느냐?” 위로를 나누자. 나이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스마트한 세상, 사실, 스마트하지 못했다고 슬프거나 불행하지는 않다. 불편을 개선할 충분한 힘이 있다.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 힘겨워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길을 나선다. 동네마다 마을마다 스마트한 세상, 슬기롭게 살아갈 방법을 가르치는 스마트폰 교실이 있다. 스마트폰을 열어 구청 홈페이지를 검색하고, 주민센터 앱을 열어 수강신청을 한다. 스마트폰과 적당히 타협하며, 내게 아주 잘 맞는 스마트한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간다.
늙음은 죄가 아니고, 척척 소리나게 스마트하지 못해도 스마트한 세상은 바로 내가 살아갈 나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