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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갓난 달팽이 ——유리갑(匣) 안에 살며

축축한 이슬 깨문 채앳된 너를 보았을 때부추 이파리 뒤쪽에 납작 붙어두 마리 힘없이 죽은 듯하더니만져보자 더듬이 빼고 꿈틀거렸지 다시 두 눈 붙은 긴 안테나로쭉 뻗고 느릿느릿먹잇감 찾듯 두리번대며한 걸음 한 걸음씩 걷고 있었지 연한 등껍데기 버거운 짐 싣고빨판 같은 발바닥으로 악착같이 붙여 먹잇감 배춧잎 맛보고작은 살림집 마련하니

  • 박진호(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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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삶이 익어 가는 시간

숨가쁘게 달려온 길, 나는 바람에 실린 낙엽처럼 잠시 멈춘다. 황혼의 꽃은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지나간 기억들은 안개가 되어 내 그림자의 굴곡을 덮는다. 인생은 흐르는 물, 붙잡으면 모래처럼 새고 놓아주면 손등에 햇살이 남는다. 지나온 날이 앞날보다 무거워도 마음속엔 아직 파종하지 않은 자리 하나, 봄을 기

  • 박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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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74호 겨울 어느날

바람은 산에서 내려온다방향감각을 상실한 바람이 세상을 닮았는데떨어져 휘날리는 낙엽 잔해가 허공을 날고더러는 담장 아래서 부스스 일어서다 앞으로 날려간다짧은 일생 마무리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 맡긴 낙엽들그 사이로 기지개 켜는 겨울은 북에서 온다얼음으로 덮인 둔트라 동토는 냉기를 날려보내 세상을 얼리는데 우리들 휘어감는 차거운 설한풍 몰고 오는 바람

  • 김동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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