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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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야, 놀았으면 정리해야지.”
바닥에 흩어져 있는 레고를 보며 엄마가 말했어요.
“엄마가 해주면 안 돼요?”
“얘 좀 봐. 자기가 놀았으면서. 어서 치워라. 안 그러면….”
“도깨비 동굴 앱을 열 거죠?”
세모가 말했어요. 엄마가 늘 하는 말이거든요. 스마트폰에서 도깨비 동굴 앱을 열면 “흠흠, 말 안 듣는 아이는 도깨비 동굴로 데려간다.”라는 말이 나와요. 화면에 보이는 도깨비는 얼마나 험상궂은지 보기만 해도 몸이 오싹해요.
하지만 세모는 끄덕 안 해요. 엄마가 몇 번 앱을 열어 보여줬지만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거든요. ‘예’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요. 엄마도 먹을 때는 좋아도 설거지하는 건 귀찮다고 말한 적이 있으니, 세모 마음을 모를 리 없지요. 잔소리하다가도 못 이기는 척 정리해 주었거든요.
“1학년이 되었는데 엄마가 계속해 줘야 하니? 어서 치워라.”
그날따라 엄마의 목소리가 단호했어요. 세모는 잠시 멈칫했지만, 여전히 꾸무럭거렸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엄마가 도깨비 동굴 앱을 눌렀어요. 그리고 세모가 보라고 스마트폰을 바닥에 놓았어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세모는 혀를 날름 내밀었어요.
그때 거실에서 아빠가 엄마를 불렀어요.
“얼른 치워라. 도깨비에게 정말로 잡아가라고 하기 전에.”
엄마는 그렇게 어르고 거실로 나갔어요. 무시무시한 도깨비 동굴을 보여주는 게 끝나면 곧 우락부락한 도깨비가 나타나서 흠흠, 할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앱 안내가 달랐어요.
“흠, 말 안 듣는 아이를 도깨비 동굴에 데려왔어.”
“으악, 뭐야?”
세모는 뒷걸음을 쳤어요. 동굴 앞에 웬 도깨비가 눈을 띠룩이며 세모를 보고 있는 거예요.
“놀랐지? 내, 내가 깨비 찬스를 썼어. 난 깨비야.”
잔뜩 겁을 먹은 도깨비가 말했어요.
“깨비 찬스?”
“응. 우리에겐 ‘예’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찬스가 있어. 딱 한 번 쓸 수 있는 거지만.”
“그걸 왜 나한테 썼니? 집에 갈래. 집에 갈 거야.”
세모는 발을 동동 굴렀어요. 그동안 방을 어지르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썼던 일이 떠올랐어요.
“나도 처음 써봐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은 몰라.”
“뭐라고?”
“도깨비방망이를 잃어버렸단 말이야. 도와달라고 하려고 찬스를 쓴 거야. 방망이 좀 찾아줘. 나도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
깨비가 울상을 지었어요.
“너도 나가고 싶니?”
“응, 도깨비 앱에서는 아이들이 우릴 무서워하잖아.”
“맞아. 엄마한테 안 무섭다고 했지만 나도 무서웠어.”
세모는 앞에 있는 깨비는 무섭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숲에서는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 숲에 온 아이들과 즐겁게 놀던 때가 좋았어.”
깨비는 그때 일이 떠오르는지 아련한 눈빛이었어요.
동굴에는 도깨비들이 여럿 있었는데, 앱에서 겁주는 일만 하니 재미없다고 숲으로 돌아갔대요. 깨비도 나가려는데, 도깨비방망이를 어디에 놓았는지 알 수 없었대요.
“그렇다고 날 부르면 어떡해? 잘 보관해야지.”
엄마가 하던 말이었어요.
“쓸 일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았지.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거야. 망태 할아버지 일을 할 도깨비가 필요하다는 대장 도깨비 말에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거든.”
망태 할아버지 이야기는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전에는 아이들이 울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했대요. 요즘은 앱에서 도깨비 동굴로 데려다 놓나 봐요.
“몰라, 나 돌아갈 거야!”
세모는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거렸어요.
“혼자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찬스를 쓰는 것밖에 없었어.”
깨비는 큰 눈을 띠룩이더니 힘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요.
뒤따라 발을 들여놓던 세모는 코를 막았어요.
“아휴, 냄새!”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숨을 쉴 수 없었어요. 동굴 안은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었어요. 깨비는 용케도 짝발 뛰기로 빈 곳을 찾아갔어요.
“어질러 놓고 치우지 않으면 어떡해?”
“귀찮아서 그만….”
깨비가 머리를 긁적였어요. 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어서 치우자.”
세모는 엄마가 정리하던 대로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이리저리 뒹구는 도깨비 가방은 한곳으로 정리하고 흩어져 있는 도깨비 간식도 모았어요.
“아휴,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면 좀 좋아.”
세모는 역시나 엄마가 하던 말을 하면서 자신이 한 일이 생각나서 쑥스러웠어요. 엄마 마음이 느껴져 콧등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깨끗해지니 좋아, 좋아! 도깨비방망이는 어디 있을까? 빨리 숲에 가고 싶어. 난 아이들 겁주는 일은 안 할 거야.”
깨비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다가 손톱을 질겅질겅 씹었어요.
“가만있지 말고 너도 찾아봐.”
“찾으면 널 위한 일 하나는 해줄게.”
깨비는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할 뿐이었어요.
세모는 나뭇잎 옷을 들쳤어요. 먼지가 풀썩이는 그 밑에 뭔가가 보였어요. 무엇인지 보려고 몸을 굽히는데, 깨비가 곁으로 왔어요.
“찾았어, 도깨비방망이! 이젠 돌아갈 수 있어.”
“정말?”
“물론이지. 얼른 나가자.”
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높이 들었다 내렸어요. 그러자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깨, 깨비야!”
그때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우리 세모 바닥 정리했구나. 잘했는걸.”
“어, 엄마! 아, 아니에요.”
“왜 그리 놀라니? 아들, 칭찬한다고.”
엄마가 세모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어요. 레고가 통에 가지런히 담겨있는 게 보였어요. 깨비가 말한 한 가지를 했나 봐요.
스마트폰에서 앱이 깜빡이며 안내가 나왔어요.
“흠흠, 담당 도깨비가 숲으로 가서 잠시 닫습니다.”
“앞으로도 정리 잘 하도록 해. 도깨비가 없다고 마음놓고 도깨비 부를 일 만들지 말고.”
엄마가 스마트폰을 들고 나갔어요. 세모는 아무렇게 걸쳐놓은 옷을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었어요.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어요.
“당신, 세모에게 도깨비 앱이니 뭐니 그런 걸로 겁주지 마. 저기 봐. 공포를 주는 앱들이 아동 정서 학대라고 전문가들이 말하잖아요.”
엄마가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뗐어요.
“세모야, 미안해.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 아예 삭제해야겠다.”
엄마는 스마트폰에서 도깨비 동굴 앱을 찾았어요.
“도깨비 동굴처럼 하진 않을 거예요.”
세모가 어깨를 으쓱했어요.
“도깨비 동글?”
엄마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어요.
“우리 아들이 정리 잘하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아빠가 다정한 눈길로 세모를 보았어요. 세모는 숲에서 즐겁게 지낼 깨비를 생각하며 싱긋 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