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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눈물

한국문인협회 로고 곽혜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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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볼록.
불룩불룩.
하얗고 둥근 구름 한편에 무언가 손톱만 한 움직임이 들쑥날쑥거리고 있습니다. 위로 봉긋, 다시 아래로 움푹. 그러다 희미하게, 규칙적인 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핫둘, 핫둘!”
가까이 다가가 보니 조그맣고 동그란 한 녀석이 열심히 앞구르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좋은 아침! 근데 좀처럼 이쪽에서 못 보던 분이시네요?” 
근사하게 막 앞구르기를 마친 물방울 하나가, 땀으로 더욱 윤기 있어 보이는 얼굴로 인사했습니다.
“아 근데, 앞구르기는 왜 하고 있냐고요? 몸매 관리요! 늘씬해져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바로바로 꿈이 생겼기 때문이죠!”
잔뜩 상기된 표정이, 이어지는 말을 궁금하게 했습니다.

 

며칠 전 밤이었어요. 그날도 나는 별 하는 일 없이 포근한 구름 속에서 누워, 마냥 늘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뭐가 한순간 차르르 펼쳐지지 뭐예요! 태어나서 처음 본 엄청나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아주 눈이 멀 지경이었죠.
그건 바로 은빛 하늘, 은하수였는데, 푸른 하늘을 온통 빛나는 은빛으로 수놓고 있었어요. 마치 값비싼 보석들이 가득 박힌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무지무지 고급스럽고 환상적이었죠. 그때부터 내 꿈은 바로 이 별무리가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기도했어요.
‘저는 지금 비록 배도 불룩 나오고 여기저기 동그랗고 볼품없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날씬해져서 저 별처럼 세련되고 근사해지게 해주세요.’
근데 뭐,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겠더라고요. 매일매일 반짝이도록 깨끗이 닦고, 이렇게 부지런히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하면 되지 않겠어요? 아, 통통한 별 보셨냐고요오. 모든 별은 아주 뾰족하고 단단해 보이잖아요. 그리고 뭐, 새초롬 윙크 연습 정도 더 필요하겠지요. 저 반짝거림이 왠지 꼭 윙크하는 모습 같거든요.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요? 쉿! 기회를 봐서,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폴짝 그곳으로 점프를 해 볼 생각이에요. 계획 한 번 근사하죠? 와, 그러면 나도 저 그림 같은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 하나로 콕 박히게 될 수 있겠죠? 생각만 해도 황홀해요. 준비는 충분히 했어요. 나에게 적절한 때가 찾아오길 바랄 뿐이에요.

 

‘투두두두둑.’
어?
‘투두두두두두둑.’
어어??
이거 뭐예요? 나 막 등이 밀려요, 지금. 어머 여기 내 주변에 나 같은 물방울들이, 잠시만요… 수십… 수백… 아니 수천 개가 있어요!
와 나 떨어져요! 하늘이 아닌, 땅으로 우수수 떨어져요. 이건 아닌데? 나는 여기 하늘에 있어야 하는데, 조금 있으면 다시 은하수가 펼쳐질 시간이거든요.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요. 이제 뛰기만 하면 되는데요. 기도도 엄청 많이 해 왔는데요.
사고란 순식간에 일어나고 돌이킬 수 없네요. 열심히 살아왔는데, 매일매일 노력했는데, 바닥에서 나를 끌어내려요. 아니 막무가내로 끄집어내리고 있어요. 땅으로, 땅으로 계속 떨어져요. 얼마나 내려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수천 킬로미터쯤 되지 않을까요? 추워요. 제대로 뭐 걸쳐 입지도 못했는데… 흑흑 너무 두려워요.
날씨가 굉장히 어둡고 뿌예서 안 좋아요. 그래서 주변이 잘 안 보여요. 뭔가를 붙잡고 싶은데, 붙잡을 게 없어요.
피이이이융.
그래서 나는 그냥 이대로 추락하고 있어요.
툭툭툭툭.
온몸이 축축해요. 빛나는 별이 되길 바라며 기껏 뽀송하게 관리해 왔는데, 결국 이런 빗방울 신세인가 봐요.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땅에서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막 피하려고 하던데, 나는 그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가 만나는 곳은 화려한 축제 같은 곳이어야 해요. 이런 눅눅한 상황은 아니라구요. 엉엉…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쿵.
방금 아파트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그래도 어쩌면 이 잠시 창에 붙어 있는 찰나가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요. 그래서 온몸으로 마구 두드려 봐요.
탁탁탁탁.
탕탕탕탕.
거기 누구 없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봐주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아….
문이 열리지 않아요. 오히려 작은 소년 하나가 나를 보고 다가오더니 문 틈새를 더 꽉 닫아 잠가요. 그렇게 버려진 물방울들이 눈물이 되어 땅으로 흘러요. 나는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해요. 이렇게 떨어지면 영영 별이 될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계속 떨어져요. 아래로, 아래로. 어디까지 가나요. 도대체 땅의 끝은 어디인가요.
똑.
데구르르르르.
끝인가 봐요. 이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나 봐요. 근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칙칙하고 마른 나뭇가지 위에요. 그중 나는 연둣빛으로 볼록 튀어나온 곳에 내려앉았어요. 그리고는 줄기를 따라 흘러 흙 속 뿌리까지 닿아요.
하아, 그 후로 며칠간 잠만 잔 것 같아요. 일어나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비가 개고, 다시 날씨가 맑아졌어요.
뾰록.
갑자기 겨드랑이가 조금 간지러운 것 같아요. 내가 도착했던 그 자리에서 어느새 움이 돋고 순이 나요. 그러다 붉은 스카프 같이 꽉 묶여 있던 꽃잎들이 좌우로 차르르 펼쳐지더니 꽃이 펴요. 너무너무 예쁘고 황홀해요!
이내 벌들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행복해해요.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을까요.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싱그러운 열매가 맺혀요. 나는 다시 그 붉고 둥근 열매에 한 방울 이슬로 맺혀 있어요. 그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와요.
‘너는 죽어 가던 한 새싹을 살렸구나. 가무내 이 싹은 땅에서 네가 오기만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거든. 수고했다! 이제 너는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어. 너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선뜻 숨이, 위로가 되어 주었잖니.’
잠시만요. 근데 전 그런 적이 없는데요? 이건 제가 선택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 너는 너에게 주어진 시간에 온전히 순종하였단다. 그것만으로 자격은 이미 충분하지.’
‘너는 전에 높은 곳에 있었지만 기꺼이 낮아졌고, 그 길 가운데 고통과 외로움, 서러움도 있었지만, 그 시간 모두를 묵묵히 잘 견뎌 내 주었어.’
‘그래서 네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네가 인내한 모든 시간이 바로 여기까지 오기 위한 과정이었던 거야. 축하해. 그리고 축복해! 너는 이제 하늘의 별이 될 거란다. 하늘에는 너같이 빛나는 친구들을 위한 자리가 아주 아주 많거든.’
별이 된 물방울은 그제서야 생각했습니다. 별은 모양이 아니라 사연이었다고. 수없이 많은 눈물을 꾹꾹 머금어 담은 후에야 비로소 단단한 별이 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리고 뭉뚝한 제 모습이 그토록 싫었던 물방울은 그제서야 별의 날카로움이 바로 상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낙하와 부딪힘의 과정 속에 갈고 닦여 다듬어진 후의 모습이, 바로 자신이 보았던 그 별의 아름다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한 번도 울지 않고 된 별은 없다고. 그렇게 울며 떨어졌던 그곳이, 실은 바로 빛이 시작되는 곳이었다고. 그래서 별은 저 높은 하늘에만이 아니라 가장 낮은 땅에도, 깊은 바다에도, 광활한 사막에도 숨겨져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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