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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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광복 80년이자 민족 시인 윤동주 순절 80년이다. 윤동주 시인 80주기를 맞아 연세대 윤동주 기념관에서 추모식과 전시회, 학술 포럼을 개최했다. 일본의 경우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2월 16일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였으며, 릿쿄(立敎) 대학에서는 교정에 기념비를 세워 10월 11일 제막식을 가졌다. 동시에 윤동주 시인이 릿쿄 대학에 재학했던 것을 기억하고 ‘서거 80년 윤동주의 세계’ 기획전을 도쿄 이케부쿠로 캠퍼스 전시관에서 진행했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문학평론가 김우종 선생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우종 선생은 1994년 10월 후쿠오카로 가서 니시오카 겐지 교수를 만나 이듬해 2월 윤동주 시인 50주기를 맞아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일과 50주기 위령제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도시샤 대학에 시비가 세워지고 위령제도 잘 마친 사실이 일본의 윤동주 시비 건립위원회 편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와 연구』(1997, 삼오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편, 김우종 선생의 정성에 감동한 니시오카 겐지 교수는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을 결성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윤동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미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는 대한민국과 중국 간에 서로 국교가 없던 시절, 용정현 용정진 교외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묘를 한국인보다 앞서 발견했다. 그때가 1985년 5월 14일이다. 닷새 후인 5월 19일 연변 대학의 여러 선생님, 연변 민속박물관장, 연변 박물관장 등 9명과 함께 윤동주 시인 묘 앞에서 한국인을 대신해서 제사를 지내주었다. 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글을 맨 처음 발표한 지면은 『조선학보』(1986. 10)이다. 제목은 「윤동주의 사적 조사 보고」이며 이 글은 1987년 5월 『문학사상』(윤인석 역)과 『한국문학』(김우종 역)에도 발표되었다.
나는 지난 2017년 2월 16일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자 순절 72주년을 맞아 서울시인협회(회장 민윤기) 회원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그날 저녁 윤동주 시인이 도쿄 유학 시절 15일간 숙박했던 한국 YMCA 호텔 9층 강당에서 한국과 일본의 ‘윤동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가졌다.
추모 행사에서 아사히신문 기자로서 일본에 최초로 위안부 실태를 보도한 후 신문사에서 조기 퇴직당하고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 2016)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우에무라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는 윤동주를 치안유지법으로 구속하고 옥사하게 했다”며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많은 윤동주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사실을 일본인으로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에무라 교수는 “다시는 윤동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라고 강연을 이어갔다.
재일 작가 유재순 씨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윤동주의 시가 실려 소개되도록 주도한 일본 여류 시인 이바라끼 노리코 선생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소상하게 소개했다. 유재순 씨는 “일본 당대의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바라끼 노리코 선생이 기울인 윤동주 시인에 대한 공적도 윤동주 시인과 함께 영원히 기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나도 이날 ‘윤동주는 왜 한국 시인들의 롤모델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윤동주 시를 애송했던 덕분에 『供草』(문학세계사, 1988) 연작시 중 「녹을 닦으며」를 쓸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으로 내 나이 43세 때 당시 아픈 시대의 현실 속에서의 ‘부끄러움’과 ‘삶의 성찰’이라는 점에서 윤동주의 작품들과 많이 닮아 있음을 고백했다.
비록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첫날 윤동주 시인이 6개월 동안 재학했던 도쿄의 릿쿄 대학 정문에서 윤동주 연구로 명성이 높은 야나기하라 야스코 여사의 안내로 윤동주 시인이 고향에 부칠 편지를 샀던 매점, 도서관, 식당, 교내 채플 그리고 1104호 동양 철학사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특히 1104호 강의실을 기웃거리고 있던 나는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에 등장하는 늙은 철학 교수의 강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늙은 철학 교수는 바로 우노 테츠토(宇野哲人) 교수였다. 릿쿄 대학에서 나와 인솔자인 민윤기 시인의 안내로 다카다노바바 지역 첫 번째 하숙집과 두 번째 하숙집 터를 둘러본 후 우리 일행은 한국 YMCA 호텔에서 ‘윤동주 시인이 그리운 밤’ 강연회와 시 낭송의 밤을 가졌다.
둘째 날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교토 도시샤 대학에 도착하여 전날 추모제를 지낸 윤동주 시인 팬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가득 놓인 윤동주 시비 앞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특히 1995년 윤동주 시비 건립을 주도했던 도시샤 대학 한국인 동창회장 박희균 선생님은 시비 건립 경위와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윤동주 시비 앞에서의 추모식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정지용 시비 앞에서도 추모식을 가졌다.
셋째 날, ‘일본의 윤동주’와 아름다운 작별을 하기 위해 윤동주가 생애 마지막으로 학우들과 사진을 찍었던 우지강의 아마가세 구름다리로 가 민윤기 시인이 새벽장에 가서 사 온 국화를 강물에 투화했다. 그리고 윤동주처럼 아마가세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을 낭독했고, 이어 이근배 시인이 선창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한 구절씩 또박또박 따라 읊었다.
8년 전의 이 소중한 윤동주 시인과의 만남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나는, 2025년 광복 80주년이자 민족 시인 윤동주 순절 80주기를 맞아 과연 얼마나 윤동주 시인과 같은 치열한 시 정신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지 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