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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의 이름으로

한국문인협회 로고 양동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0월 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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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에 계간지 『시와 수필』에 「소장수 선생님」으로 등단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를 고심하게 되었다. 또한 문인의 내실을 갖추려면 남의 글을 많이 읽고 자신의 문장력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과 현실에서 일어난 소재를 바탕으로 부지런하게 글을 쓰기로 다짐하였다.
등단의 첫 단초를 만들어 준 고교 선배가 문예지의 발행인이어서 수필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기에 감사드린다. 선배가 평소에 흔하게 들려주는 말이 “인생은 짧으며 마지막에는 글 한 줄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처음에는 무심결에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생을 보람되게 영위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것이 평생 직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지난날 내 고향 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남강을 비롯한 천혜적인 요소가 글을 쓸 수 있는 낭만적인 감성을 키우고 있었다.
진주고등학교 동기들 중에는 지역 문화제 행사인 개천예술제 백일장에 참여해서 시 부문에서 장원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 수준은 독자적인 영역에서 수필과 시를 쓰고 있었다.
경상대학교 축산과 재학 중에는 잡비를 절약해서 시집과 소설을 구입하였으며 수업 시간에도 문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전공 수업 시간에 문학 서적을 펼쳐 놓고 독서하는 바람에 교수님께 발각되어 꾸중을 들었으며 학업 성적이 부진한 탓으로 재시험을 본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문학에 중독된 탓으로 학업을 소홀히 한 것임을 밝혀 둔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서 선배(시인)의 도움을 받아 교내 캠퍼스와 커피숍에서 시화전을 개최하였으며 그것이 나의 글을 세상에 알리는 출발이 되었다. 그것은 문학의 바다에 띄워진 크루즈에 승선해서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하는 모험과 도전의 장을 만들었다.
나의 글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습작이었지만 문학에 도전하는 용기가 있었다고 믿는다. 사회에 진출한 이후로는 부산에 정착하고 출향 작가들의 모임인 ‘남강문학협회’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남강문학협회 카페를 통해 본인의 노하우인 씨름 장사들의 일대기,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교직 생활, 건강대학과 한의원에서 재직한 경험을 ‘청주의 세상 사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400여 편 이상의 글을 게재하였다.
나는 15년 동안 중등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젊지도 늙지도 않은 45세에 퇴직하고 헬스클럽을 10년 이상 경영하였다. 그리고 52세 때는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에 KASFA 스클럽을 신설하고 다시 한번 역발산의 기개를 펼치려고 하였지만 IMF의 여파로 2년 만에 깃발을 내리고 말았다. 그 시절의 못다 한 이야기는 역삼동에 소재한 충현교회에서 기도로 꽃을 피웠으며 내적 평화를 갖게 하였다.
서울에서 보낸 2년의 세월은 자아의 성찰과 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의 수필 「그리움은 채소처럼 푸르다」에서 ‘삼전동의 추억’으로 소개하였다.
세월은 총알처럼 날아가고 부산으로 원대 복귀하였다. 사하구 가락타운에서 홀로 사무실을 지키면서 가슴이 답답할 때는 창문을 열고 낙동강의 바람을 쐬면서 수필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물감처럼 번지는 생각을 붙잡기 위해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지만 수필은 낙동강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말처럼 수필가의 이름으로 가족을 소개한다. 그것은 고난의 세월 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첫째 딸은 고등학교 재학 중에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고지대의 어둠 속을 혼자서 귀가하였으나 부모는 생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한 번도 마중을 나간 적이 없었다. 둘째 딸은 시내버스 속에서 조우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수선화처럼 맑고 고운 얼굴로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웃고 있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로워진다. 막내딸은 무용연구소에 등록해서 무용을 전공하였으나 피로가 겹쳐서 도중 하차하였지만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서 인생의 진로를 개척하였다. 소중한 가족의 이야기를 올릴 수 있는 것도 늦깎이 수필가의 이름으로 빚어낸 결과이다.
누구나 불행을 맞이해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기가 있다. 때로는 기나긴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면서 수필이나 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줄 모른 채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이 지나가면 먼동이 트고 밝은 아침이 온다는 사실을 이해하였다.
그동안 글을 쓰고 문학의 영토를 넓히는 데는 아내의 도움과 내조가 절대적이었다. 아내는 “행복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글을 쓴다”라고 변명하는 남편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24시간 말벗이 되어 주었으며 남편을 편들어 주고 격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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