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은 아파트 앞이 종점인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다. 버스에 남은 승객은 서너 명이 전부다. 시내로 나가려는 승객이 줄 서 있는 버스는 급히 또 떠날 모양이다. 한낮이었다. 그는 잠시 서서 힘껏 어깨를 뒤로 젖히고는 따가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훤한 대낮에 집으로 들어가는 자신이 한심했다.몇 해 전,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했을 때가 있
- 이정은
문혁은 아파트 앞이 종점인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다. 버스에 남은 승객은 서너 명이 전부다. 시내로 나가려는 승객이 줄 서 있는 버스는 급히 또 떠날 모양이다. 한낮이었다. 그는 잠시 서서 힘껏 어깨를 뒤로 젖히고는 따가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훤한 대낮에 집으로 들어가는 자신이 한심했다.몇 해 전,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했을 때가 있
중랑천 산책길을 따라걷다 보면 개천에 흰 두루미한가로이 먹이를 쪼고 있다이름 모를들꽃들이 어우러져바람에 한들거리고산책길 중간중간 다리로강북구에서 노원구로오며가며 한다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큰 행복이다자연을 벗하여달리는 자전거 투어족들중랑천로 거닐며자연에 취해 눈호강한다.
그대 보았는가구름이 하늘을 가리고하얀 꽃눈을 내려주는 것을지붕 끝에 그리움 피고산자락에 바람을 타고영혼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다살포시 내려앉는 그대부서지는 햇살 아래흥얼흥얼 노래 부르다거꾸로 매달린 세월처럼눈물 꽃을 내리며 자라네
태양은 시절의 불변으로 운행하고지구가 추계의 궤도에서 공전할 때대기는 바람으로 산의 능선에 내려온다낙엽 하나 소리없이 낙하할 때산의 나무들의 세계에세상의 고요가 침묵으로 다 모여 있다낙엽 둘 첫 찬서리에 성급하게 붉은 색칠하고 푸른 이파리 위로오직 한 송이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낙엽 셋 야신의 가을 전령으로계절을 맨 먼저 달려와서 소식 전하고이웃 잎
‘있으라’잉태된 말에 천체는혼돈의 산실 속에서도 태동을 시작하고산고를 치른 우주는 기쁨의 빛을 뿌리며마침내‘그대로’되었다말은해와 달과 별들을 하늘 모서리마다 걸어두는 것 바닷길을 내어 고래들을 춤추게 하는 것살아있는 것들로 수런거리게 하는 것하늘의 말을 생각하다내가 뿌린 말의 씨앗 날아다니다슬프고 아픈 간절한 영혼 쪼그려 앉는 그 어딘가보일듯 말듯
산높고골깊은삼봉산 자락눈 녹아내려골 지어 흐르다손잡고 고을을 적셔주네촉촉한 비흠뻑 더 내려넉넉한 우수(雨水) 되면 두물이합친터길동(吉同)*만산(滿山)에홍화(紅花)요. 들 따라 물 따라 백화(白花)니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우정의 도원(桃園)이로다.*永同=二水同.
이사할 때마다 책을 수없이 떠나보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케도 남은 책들다시 읽어보려고 놔두었던 책들까지도 끝내 버리고 왔었지어떻게 사는 게 가치 있는 삶인지아직도 모르지만내면을 소중히 가꾸는 책을 꽂아두고 싶다손길이 가장 가까이 닿는 곳에상념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일기장과내 삶의 길잡이가 된 국어사전이 꽂혀 있다언젠가 홀로 떠나는 날내가
낯설다무뎌진그 일상에점점 더 멀리 더 깊이침잠하다 다시,희미해진 그림자 속에서작은 빛을 헤아려 본다눈동자에 담긴 세계고요한 호수 같기도 하고깊고도 어두운 바다 같기도 하다 세월이 새긴 굵은 선들이 얽히고 희망과 눈물이 머문 자리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손끝으로 써 보는 감성익숙하면서도 낯선오래 전 희미해진 꿈의 조각들
밀려오던 동해의 파도 부서진 물안개해금강 휘감고 백두대간 덮은 새벽안개 뚫으며 불쑥불쑥 솟아오른 장엄한 줄기의 산세헤어진 가족들의 한숨 소리가가로막힌 철조망 가시마다 맺힌 이슬 되어 늦가을 바람에 가지마다 열린 상고대가 쏟아지는 햇살에 온 산이 하얀 오얏꽃처럼눈이 시리도록 피었구나저녁노을 등에 업은 기러기 떼 남으로 날으고&nbs
볼록한 연심(戀心)풍선처럼 부풀어농익은 젖줄쪼아먹이는이 간지러움이야절반 덩실 남아뾰족한 부리 기다리는이 애타는 즐거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