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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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은 아파트 앞이 종점인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다. 버스에 남은 승객은 서너 명이 전부다. 시내로 나가려는 승객이 줄 서 있는 버스는 급히 또 떠날 모양이다. 한낮이었다. 그는 잠시 서서 힘껏 어깨를 뒤로 젖히고는 따가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훤한 대낮에 집으로 들어가는 자신이 한심했다.
몇 해 전,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문혁은 회사일로 늘 바빴고 퇴근 후에도 항상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축배를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고 난 후 ‘이젠 다시 뛸 때’라는 구호가 나오면서 더 일하기를 부추기는 요즈음, 그는 벌건 대낮에 집으로 기어들어가게 되었다. 청개구리를 흉내 내자는 것도 아닌데 자신은 세상의 흐름과 거꾸로 살아가고 있는 신세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허했다.
길이가 짧은 그림자가 그를 쫓아왔다. 자꾸만 자신의 몸통을 밟고 걷게 되는 것이 싫어서 크게 한 발짝 껑충 뛰었다. 어느새 그림자가 발등에 올라와 있었다.
‘젠장, 죽을 맛이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찍 좀 다니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적마다 “사나이는 말야, 집에 일찍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땐 끝장난 것이라구!” 농담을 했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벌써 자신이 일찍 집에 들어서게 될 줄이야.
어제 아침 일찍 본사에 있는 젊은 사장이 창고에 들렀다. 무자료를 제때에 처리하지 않아 골치가 아프다며 재고를 보러 온 것이다. 자재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젊은 사장이 강조했다. 고지식한 문혁은 자료 없는 물건을 처리하는 일에 서툴렀다. 결국 약삭빠르게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면 집에 가서 애나 보라구! 자료 없이 들어온 물건을 먼저 출고해야 되는 걸 모르나?”
젊은 사장이 판매 직원과 창고 직원을 싸잡아 몰아댔다. 물론 전적으로 문혁의 책임만이 아니다. 위에서 업무처리 직원이 오더를 내리면 적당히 끼워서 처리하는 일이다. 그렇게 삼박자가 맞아 돌아가야 가능한 일이었다.
‘건방진 놈….’
문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식 같은 놈이, 감히 제 아버지뻘인데 윽박지르듯 내려다보며 말하는 것이 비위가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창업 사장이 이뤄 놓은 사업을 마치 제가 다 해놓은 것처럼 설쳐대는 꼴이 못마땅했다.
그는 병원에 누워 있는 창업 사장을 보러 갔다. 처음 쓰러졌을 때보다 나아지는 것으로 봐서 곧 다시 회사 업무에 복귀할 것 같았다.
“사장님, 빨리 일어나서 회사로 나오셔야지요.”
“푹 쉬라는군. 열심히 일했으니 이젠 쉴 때가 되었다면서.”
“아직 쉬실 때가 아닙니다.”
“아들이 효도를 앞세워 쉬라는데 별 수가 없네.”
문혁은 창업 사장과 함께 뒷전으로 밀리고 있었다. 창고 관리소장은 젊은 공원들과 운전사들을 부려 창틀 재료인 알루미늄을 사이즈 별로 분리해 놓고 입출고를 관리하는 자리이다. 창업 사장이 과로로 쓰러지고 아들이 사장에 취임한 것이 3년이 되었다. 젊은 사장이 경영을 맡고부터 회사 매출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창업 사장이 탄탄한 신용을 바탕으로 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문혁은 입사 후 줄곧 창고 재고관리만 해왔다. 창업 당시만 해도 창고와 매장이 함께 있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창업멤버인 문혁은 사장과 함께 열심히 뛰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다. 사장은 정직하게 사업을 한 사람이었다.
구멍가게 수준에서 시작해서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탄탄한 중소기업 회사로 발전하기까지 사장과 함께 일한 문혁의 공은 컸다. 알루미늄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는 회사의 핵심 부서였다. 창업주와 일할 때 입사한 사람은 몇 명이 아니게 줄어들었다. 구시대적 경영을 하던 때는 필요했지만 이젠 새로운 경영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젊은 사장 때 입사한 직원 중심으로 회사가 돌아가고 있었다. 회사가 커가는 과정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창업 사장과 함께 자신도 물러나게 될 것 같은 위기의식이 커져 갔다. 창업 사장이 있으면 창업멤버에 대한 의리, 공로 등등 사장의 빽으로 회사에 남을 수 있겠지만 이젠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는 본사에 있는 젊은 사장을 만나러 갔다. 시내 한복판에 통유리로 된 본사 건물은 그가 들어서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용기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
“큰 사장님이 본사로 불러주신다고 했는데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꼭 본사로 가고 싶어서 는 아니었다. 그가 용기를 내어 말했을 때 젊은 사장은 입꼬리를 비틀다 말고 그를 쳐다보았다.
“컴퓨터를 배워 두세요.”
젊은 사장은 선문답을 내놓고 약속이 있다고 자리를 떴다.
‘이젠 부르고 싶어도 업무에 어두워서 어렵다 이거지!’
그렇다고 따질 형편도 아니었다. 젊은 사장은 창업멤버에 대한 예우 때문에 지금껏 보고만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싸잡아 나무라면서 스스로 거취를 결단하라고 했던 것이다.
“뭐, 머리가 안 돌아가면 애나 보라구!”
제 아들놈 나무라듯 하는 젊은 사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업 사장을 봐서라도 그에게 심한 말은 못할 일이었다.
“에이 더러워서.”
그는 담배를 계단 손잡이에 비벼 껐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무릎이 시큰거렸다.
아파트 현관 초인종을 눌렀다.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문을 열고 곧 바로 돌아서서 뒤통수를 보였다.
“수재와 수민은 들어왔나?” 아내의 뒤통수에다 대고 물었다.
“젊은 애들이 한낮에 들어오겠수.”
할 일 없는 늙은이만 일찍 들어온다는 투였다. 흰머리가 뒤엉킨 아내의 파마머리를 바라보았다. 서늘한 기운이 그의 가슴을 가로질렀다. 아내의 뒷모습이 집에서조차 자신의 존재가 거부되고 있는 듯했다. ‘이놈의 마누라가! 평생 벌어먹였는데 집에서라도 반겨주면 어디가 덧나나?’
아내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지난 토요일 회식 사건만 해도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일행이 회사 근처 은성옥에서 저녁을 먹고 삼거리에 있는 황금마차에 갔을 때였다.
“오빠, 어서 오세요.”
노란색 한복을 입은 아가씨가 지게차 김 기사 어깨에 매달리며 하는 소리였다. 콧소리 아가씨는 그를 건너뛰고 김 기사를 맞아들였다. 오빠라는 콧소리가 귀에 익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여러 사람 관심의 대상이었던 아가씨였다. 도톰한 입술에 웃을 때 양쪽으로 보조개가 패이는 여자였다. 젊은 축들이 미스 보조개와 잠자리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궁금해 했다.
“입과 아래는 같다는데 사실인지 확인해 볼까?”
“좋지.”
눈을 흘기며 웃어넘기던 미스 보조개는 어느새 김기사와 친해진 모양이다. 문혁은 상석이라고 위쪽으로 밀렸다.
문혁과 김기사 사이에 보조개가 앉았다. 김기사는 직원들 사이에서 ‘싸나이’로 불릴 만큼 술과 노래, 음담패설에 능한 사람이었다. 모임에서 김기사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 분위기 메이커라고 했다.
뱃살이 두꺼워지고 어깨가 축 처진 그는 젊은 김기사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적당한 노동으로 불거진 근육은 그가 보기에도 건강해 보였다. 처음부터 김기사와 수작을 부리느라 보조개는 아예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보조개의 등만 바라보며 술잔을 들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신참인 박 씨가 따라 준 술잔을 살짝 목만 축이고 내려놓았다. 산적구이를 집어 들다가 보니 신참 몇몇을 빼고는 그럭저럭 여자들과 짝이 맞았다.
짝이 지어진 이들은 제 계집이라도 된 듯 먹여주는 안주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여자들이 권하는 술을 마시며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고 너스레를 떨어댔다. 성급하게 젖가슴을 더듬으며 수작을 벌리고 있었다. 아가씨들은 까르르 웃으며 간지럽다고 예쁜 눈을 흘기지만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분위기가 익어 갈수록 문혁은 불편해졌다. 저들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전에는 일행 중 예쁘지 않은 여자와 파트너가 되면 일시적이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은 말벗할 계집 하나 차지하지 못하고 덩그러니 앉아있게 된 처지였다. 그는 주머니 없는 옷을 입어 손 둘 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 어색했다.
자신이 빨리 자리를 떠야 짝도 맞고 분위기도 무르익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일어날 구실을 찾기에 골몰했다.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일어날 구실이 필요했다. 나이 먹은 사람이 밀려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따돌림을 받아 불쾌해하는 속 좁은 사내로 보이는 것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술이나 한 잔하고 일어나야지’라는 생각으로 잔을 들고 여자의 허벅지를 건드렸을 때 여자는 그의 손을 털어냈다. 팽개쳐진 손을 수습하려다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든 채 벌떡 일어났다.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네.”
“소장님, 애인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불그레한 얼굴을 들고 김기사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려는데 맞은 편 굴렁쇠 아가씨가 귀걸이를 찰랑거리며 조크를 던졌다.
“집에 있는 늙은 애인 말인가요?”
까르르 웃는 소리가 신발을 신는데 문혁의 귓속을 뚫었다. ‘왜 늙은 애인이냐. 너희들보다 젊고 예쁜 애인이다’하고 응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 한 것은 스스로 그들의 말을 인정한 셈이 아니던가. 돌아서 나오는 문혁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내가 일찍 좀 다니라고 투정할 때가 엊그제 같았다. 토요일 오후 모처럼 이른 시간에 들어가면 아내는 웃으며 반겼고 아이들도 양쪽 팔에 묵직하게 안겨 왔는데. 이젠 문혁 쪽에서 아이들 보기가 힘들어졌다고 투정을 하게 되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주방 쪽에서 들려왔다.
“점심은 드셨어요?”
밥까지 챙겨달라고 하면 귀찮아 할 것 같은 투였다.
“됐어. 저녁이나 일찍 먹지.”
볼멘소리를 하자 아내는 시장을 다녀오겠다며 나섰다. 목이 패인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 차림이었다. 손지갑만 달랑 들고 나가는 아내의 두리뭉실한 몸매가 눈에 거슬렸다. 저런 매무새로 밖으로 나가는 아내에게 한마디 하려고 문 쪽을 쳐다봤지만 아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섰다. 아침에 벗어 놓은 회색 운동복이 옷걸이에 코를 꿰고 있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을 입고 안방 화장대 거울 앞을 스치던 문혁은 거울을 힐끗 보았다. 거울 속에는 목 뒤에 커다란 혹 하나가 운동복에 매달려 있었다. 무릎과 엉덩이가 S자로 구부러진 바지는 익숙했다. 운동복 바지에 다리를 끼우면서 거실로 나왔다.
문혁은 텔레비전 위에 걸려 있는 액자를 바라보았다.
‘승리는 자존심의 표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말은 문혁의 심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수명이 다했다고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떼어 낼까.’
시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거실 소파에 앉으려다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이 어수선하다. 집안 정돈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소파로 갔다. 습관처럼 탁자 옆에 있는 바둑판을 내놓고 바둑알을 몇 점 놓아 보았다.
“수재가 늦는다는 전화 왔었소?”
주방 쪽에선 아무 대꾸가 없다.
“수재가 들어오면 한 수 가르쳐야지.”
문혁은 지난번 바둑 대국 때 수재가 으쓱대던 것이 생각났다. 두 번 이겨놓고 애비 앞에서 상수라고 우쭐댄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그때 말하던 그 아이 만나나?”
“모르겠어요. 그런 얘기를 해야 말이죠.”
지금 사귀고 있는 여학생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장군의 딸이라고 했다. 문혁은 아들의 연애가 더 깊어지기 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난 거들먹거리는 사돈은 싫어!”
“요즈음 자식 이기는 부모 있어요? 인심만 잃지.”
아내는 지금 결혼할 것도 아닌데 지금부터 아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수재가 누구자식인가. 애비를 닮았다면 절대로 비겁한 삶을 택하진 않겠지. 그렇게 마음을 위로하고 딸 수민의 방을 기웃거렸다.
수민 방 거울에는 예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핑크색 싱글침대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어울리지 않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민이 싫다는 걸 억지로 걸어 놓았다. 아직도 떼어내지 않은 것을 보니 문혁의 권위가 그곳에 건재해 있었다.
‘남자의 용기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데 있지만, 여자의 용기는 그것을 견디고 참아내는 데에 있다.’
“아빠, 아들과 딸을 편 갈라 놓기로 했어요?” 수민이 아빠에게 대들었다.
“엄만 나에게 참으라고만 하고 아버진 오빠에겐 이기라고 가르치고, 이런 집이 어딨어요.”
문혁은 수민의 항의에 웃음이 나왔다. 수민은 학교 다닐 때부터 착실했고 성적도 뛰어났다. 앞으로도 매사에 잘 해 나갈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수재가 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수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될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고, 힘이 없어 참아야 할 때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였다. 강한 승부욕이 수재를 능력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리라 하고 확신했다.
“저녁 드세요.” 아내가 불렀다.
“수민은 왜 여태 안 와.”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면 늦게까지 공부해야 된다네요.”
“뭐라구! 엄마 삶이 어때서?”
“아버지가 말하는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하는데 무한경쟁시대에 일찍 집에 와서 어떻게 경쟁에서 이기느냐는 거예요.”
“어떻게 교육을 했길래.”
“그 꼰대 소리 그만해요. 그렇지 않아도 여자가 이기려고 하면 분쟁만 생길 뿐이라고 했어요. 슬기롭게 지는 법을 습득하는 게 이롭다고 했는데도 소용없어요.”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아내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수재였다. 문혁이 들어올 때와 사뭇 달랐다.
“저녁은?”
아내는 수재를 쳐다보았다.
“먹었어요.”
잠시 후 말갛게 씻은 수재가 화장실을 나서며 말했다.
“아버지 혼자 두고 계셨어요?”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 수재는 슬그머니 바둑판 앞에 앉았다. 어쩌다 일찍 들어온 날은 아버지와 바둑 상대를 하는 것으로 효도를 한다는 몸짓이었다.
문혁은 아들과 씨름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침마다 이불을 정리하려는 데 다섯 살짜리 수재가 말했다.
“아빠 레슬링 시합해요.”
그 말을 들은 문혁은 이불을 뒤집어 놓고 아들과 레슬링 할 준비를 했다. 몇 번 해본 터라 아들이 싸움을 걸어왔다.
“너, 아빨 이길 자신 있어?”
“텔레비전에서 커다란 미국 선수를 쪼그만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는 걸 봤어. 나도 아빨 이길 수 있어.”
둘은 이불 위에서 레슬링 판을 벌였다. 수재는 동그란 얼굴이 빨개지 면서 엎치락뒤치락거렸다. 문혁이 일부러 몇 번 쓰러져 주었더니 수재 는 신이 났다. 그런 수재의 얼굴을 바라보며 문혁은 이불 위에 나동그라진 채 즐거워했다.
방문 밖에서 아내가, 밥상 들어갈 텐데 방 좀 치우라고 몇 번이나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문혁과 수재는 삼세번이라며 일대일 동점에서 한 판을 이기는 쪽이 승리라면서 마지막 결투를 했다. 방구들이 울리는 진동과 웃음소리가 방문 밖까지 크게 들렸다. 참다못한 아내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혁이 막 수재를 메다꽂는 순간이었다.
“당신도 참 딱해요. 어른이 다섯 살짜리를 이겨요?”
“저 녀석이 끝내지 않으려고 하니 어쩔 수 없어.”
부랴부랴 이불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갔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햇살 속에서 먼지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남자는 투지가 있어야 한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어. 일제 때 일본놈들도 아버님을 무시하지 못했지. 나라가 그들에게 넘어갔어도 개개인까지 비굴해서야 쓰겠냐고 하셨어.”
문혁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주문처럼 외워댔다.
“부모가 져 주고 오냐오냐하다가 사회에 나가서 강적을 만나면 어쩌려구. 이기는 연습이 필요하거든.”
“아무튼 기를 키우려다가 오히려 기를 꺾어버리지나 말아요.”
“한 수 배워보렴.”
“제가 가르쳐 드려야 하는데요.”
수재가 방글거리며 제 아버지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처음 몇 점은 정석으로 두기 시작했다. 차츰 바둑판에는 흑과 백이 어우러지면서 각자의 세를 구축하고 있었다.
백집 사이에서 흑이 살아가려면 흑을 이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백의 세력만 넓혀주는 셈이 되니 수재는 고민 중이었다.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가셨나? 프로 바둑엔 이래서 시간제한이 있는 거야. 무작정 시간을 끌어서는 곤란하단 말씀야.”
수재는 마냥 시간을 끌 수 없었다. 하나, 둘, 셋, 시간을 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침착하자. 쫓기면서 급한 김에 한 점을 의도하지 않은 곳에 놓아버릴 수 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첫 판은 문혁이 아홉 집을 이겼다. 문혁이 이긴 것은 수재가 어이없는 실책을 한 탓이었다.
바둑알을 챙기며 문혁은 수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쉬워서 표정이 역력했다.
승부의 세계가 펼쳐지는 바둑의 묘미는 시작할 때마다 새로워지는 것에 있다. 패하고 나서도 다시 시작하면 또 새로운 판세를 이룰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로 시작한 바둑은 쉽사리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세상이 오늘 끝나는 것도 아닌데, 잠도 안 자고….”
아내가 눈을 비비면서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바둑판을 기웃거렸다.
“네가 이기고 있니?”
아내는 언제나 아들 편을 들었다. 문혁은 빙글거리며 아내에게 윙크를 했다. 승세를 잡은 모양이었다.
수재는 바둑판에 코를 박고 장고에 들어갔다. 오래 생각한 끝에 한 점을 두더니 허리를 폈다. 문혁은 이어서 생각해 둔 곳에 한 점을 두었다.
“잘못 두시는 것 아녜요?”
“살아남을 자신 있으면 되는 거야. 도전은 배짱을 키우게 해준다구. 세를 넓히려면 모험도 해야 하는 법. 젊은 힘은 어디다 두고 안일한 바둑을 두는 거냐? 좀스럽게.”
문혁은 잠시 딴 생각에 빠졌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좀스럽다고 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재가 강타를 먹인 것이다.
“어 어, 그렇게 치고 들어온다고?”
역습을 당한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연속극이 끝나자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일어났다.
“어휴 담배 연기.”
아내의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만했다. 문혁은 기침병이 담배 때문이라는 잔소리를 또 들어야 했다.
아내는 담배타령 후속으로 몸 생각도 하라는 말을 이어갈 것이 분명했다.
“당신 녹음기는 성능이 우수하다”고 농담을 했지만, 아내는 정색을 하고 나올 모양이었다.
“공연히 걱정 말고 들어가 주무시지.”
문혁은 바둑판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바둑알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투덜대며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작년 초만 해도 한 수 물러 달라고 떼를 부리는 수재에게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지면 지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야. 물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야. 인생을 물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이번만은 물러 주마. 꼭 이번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혁은 몇 번이고 물러 주고 싶었다. 이번뿐이라고 강조하고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한 수 물러 주었다. 한 수만 물리면 그다음은 수재가 집을 지킬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였다.
처음 바둑을 시작했을 때 흑돌을 다 따내 백돌만 남아 바둑판이 하얗게 되자 울면서 이젠 안 두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달래 주느라 시작한 물리기가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문혁은 더욱 엄격하게 대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이젠 서로 승패를 가지고 으르렁거렸다. 바둑판에 바둑알이 닿을까 말까 하면, 한 번 두면 끝이라고 옥신각신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어느새 부쩍 자라 맞수가 되어 버린 아들이 대견했다. 서로 최선을 다하며 대적할 수 있는 바둑 친구가 된 셈이다.
만만치 않은 승부 근성을 지닌 수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고, 아들을 이기려고 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재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 싱글거렸다.
저녁식사 후 다시 시작된 대국은 새벽으로 넘어가면서 바둑알 놓는 소리가 유난히 커지고 있었다. 다른 집 창가는 불이 꺼져 있었다. 가끔 수험생이 있는 집만 불빛이 새어나왔다.
거실에 매달려 있는 전등은 다른 집 불빛까지 감당하느라 지쳐 보였다.
“전등도 쉬고 싶은가 봐요.”
아내는 화장실을 갔다 오면서 내일을 위해서 쉬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문혁은 못 들은 척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언제나 수재 편이었던 아내는 바둑판을 살핀 후 농담을 했다.
“이제 늙은 호랑이가 되었네. 이빨, 발톱 다 빠진 호랑이!”
“무슨 소리야. 아직은 건재해.”
문혁은 어깨를 펴며 가슴을 두드려 보였다.
“가서 잠이나 자.”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승세는 수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문혁이 아들을 이긴다는 것은 단순히 바둑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수재는 바둑에서 지고 나면 자기 방에서 복기를 하고 패인을 연구했다. 문혁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만 두었다.
좀 더 연구해야 수재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뿐이었다. 자존심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보루인 자존심을 지키려면 연습, 또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마.”
문혁은 급히 화장실 문을 열었다. 한 손으로 화장실 벽을 잡고 서서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자신의 오줌 줄기를 내려다보았다.
“쏴 하는 소리가 요란해 잠을 깼어요.”
요강 밑을 뚫을 듯 쏟아내는 소리를 두고 아내가 하던 말이었다. 그때는 별걸 다 트집이라고 웃어넘겼었다.
바지를 추스른 후, 두 팔을 벌려 운동을 해보았다. 문혁이 목 운동을 하려는 순간, 아내의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조금 열린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문혁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정지 화면처럼 서 있었다.
“얘야. 빨리 져드려라. 그래야 잘 것 아니니? 넌 아버질 이겨서 상을 받으려고 그러니? 아버지 모르게 져 드려라.”
“네, 그럴게요.”
이런 빌어먹을 여편네가 다 있어.
아내의 말이 들려오자 화가 났다. 아내를 욕하자니 엿들은 게 계면쩍고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따져봐야 자존심만 상할 것이니까.
지금껏 문혁이 이긴 것도 수재의 양보 때문이라고 아내가 생각한단 말인가. 늙은 호랑이 어쩌구 한 것은 진작부터 열세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문혁은 아내가 내일도 있다는 말을 강조하던 의미가 이제 짐작이 갔다.
오늘 저녁 문혁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해 볼 작정을 했다. 그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화장실을 나왔다.
“내일 다시 하자.”
문혁은 이 밤에 아내에게 건재함을 증명해 보고 싶었다. 아내의 허리로 팔을 넣어 안아보았다.
생각만 앞서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내는 슬며시 문혁을 밀어내고 돌아누웠다. 젊었을 때는 그의 품으로 안겨오는 바람에 요가 깔리지 않은 맨바닥으로 말려나곤 했었다.
똑같은 밀림을 당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어느새 아내의 엉덩이 뒤로 밀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년도 되기 전에 인생이 끝이 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슨 말을 하면 꼼짝 못 하던 아내가 꺼들꺼들해졌고 모처럼 아내의 눈웃음에도 문혁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의 무표정이 마음 편했고 탓할 마음도 없었다.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슬그머니 화장실로 들어섰다.
거울 속에는 낯선 머슴 같은 한 사내가 거기 있었다. 흰머리가 이맛전으로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염색을 하자던 아내의 권유를 거절했다.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무슨 염색이냐”고 나무랬다.
내키지 않았지만 생각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제 저녁 두다 말고 밀어놓은 바둑판이 거실 한쪽에 그대로 있었다. 어느 누구도 세 판을 내리 이기지 못한 상태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일요 바둑 시간이 진행 중이었다. 바둑 실력이 상당 수준이라는 개그맨이 해설을 하고 있었다. 조훈현과 다께미야가 대국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렇게 끊으니 흑이 이쪽으로 들어왔습니다.”
문혁은 바둑알을 든 채 텔레비전의 바둑판을 보고 있었다. 승세를 잡고 있던 문혁은 수재가 끊으면 젖히든지 아니면 다시 끊을 점을 계산해 보았다.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리라 결심했다.
반전무인 반상무석(盤前無人 盤床無石). 바둑을 둘 때는 앞에 사람이 없고, 바둑판에 돌이 없는 것처럼 무념무상의 경지로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혁은 마음을 비우고 상대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할 참이었다. 한 수 잘못 두었을 때 오는 결과는 바로 패인이 된다.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힘과 힘의 대결이고 지략과 지력의 대결이었다. 이때 흑이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어, 하는 순간 머릿속은 텔레비전의 떨림 현상처럼 지지거렸다.
“어, 안 돼! 한 수 물리자.”
체면도 없이 사정을 했다.
“안 됩니다.”
수재의 단호한 말에 문혁은 귀속까지 뻘게졌다. 물리자고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문혁이 물리자고 한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처럼 적극적이지 않았다.
흑이 상변을 이어 왔다. 급소의 침입이었다. 미처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일격이 날아온 셈이었다. 열세에 몰리고 있던 문혁의 대마는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흑에게는 꽃놀이 판이었다. 달리 손 쓸 자리가 없어 백돌을 던지고 말았다.
바둑을 시작하기 전에 그냥하면 싱거우니 내기를 하자던 수재에게 문혁은 삼만 원을 걸었었다.
“데이트 자금까지 주시니 고마워요.”
여유를 부리는 수재에게 거듭 졸랐다.
“한 판만 더 두자.”
“아버지, 다시 두어 봤자 소용없어요.”
“짜식, 한 번 이겨놓고 까불고 있어.”
“지금껏 제가 져 드린 겁니다.”
“뭐라구! 이런 개자식이 있어.”
수재는 폭탄 같은 말을 던지고 약속이 있다며 일어섰다. 문혁은 분을 참지 못하고 수재의 뒤통수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모욕감을 주체할 수 없어 바둑판을 거실 바닥에 엎어버렸다.
누구에게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수재에게 지라고 권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속은 상했지만 그냥 해보는 말일 것이라고 자위했다.
아내는 지기 싫어하는 문혁을 비꼬았다.
“그렇게 지기 싫다면 왜 여태껏 대통령은 못 되었을까?”
"모르는 소리 마! 되기 전까지 얼마나 굽실거려야 하는데. 그게 될 법이나 해? 내가 왜 회사에서 현장에 자청해 근무하는 줄 알아. 그래도 거기선 다 내 밑이란 말야."
문혁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바둑을 두면 사람이 아니라고 큰소리 친 것이 올가미가 되어 문혁은 바둑의 '바'자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처지였다. 맹세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식구들 모르게 바둑책을 꺼내 보았다. 냉전이 풀릴 때를 대비하려는 건 물론 아니었다.
‘자존심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승부사의 기질을 부추기며 수재를 키웠다. 문혁이 원하는 대로 수재가 커 왔지 않은가. 그런데 그 수재에게 패하고 나서 심한 패배감을 시달리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문혁은 조그만 찐빵처럼 통통한 손으로 오목을 두던 수재의 손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단칸 셋방에서도 수재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재에게 이기는 기쁨을 가르쳐 주려고 시작한 바둑이었다. 아이스크림 내기, 떡볶이 내기를 하면서 즐거웠다. 과자나 간식을 사주고 싶을 때마다 지느라 애를 먹었다. 그 작은 어깨는 이제 바위처럼 튼튼해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속이 상했던 일이 물거품처럼 보였다. 창고관리 소장인 문혁은 직접 생산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지금 하는 일도 생산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수재가 어이없이 실점을 놓는 것을 보고 덤벙댄다고 나무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 수재를 이긴 것은 수재의 배려였다. 상수라는 체면만을 지키려는 데 집착하느라 수재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쓸데없는 집착, 초조함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문혁에게는 아직도 자신의 기색을 살피는 아내가 있었다. 엄마를 닮아서 예쁘고 똑똑한 수민도 있다. 그리고 수재를 떠올리자 수재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슴으로 꽉 차 올랐다. 자신보다 십 센티미터나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흰 피부에 귀티가 나는 내 아들이었다.
어디다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외모였다.
저녁이 되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던 문혁은 저만치 앞서가는 긴 그림자를 보았다. 마치 삶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아파트 주변에 은사시나무 잎이 바람에 하얗게 뒤집히고 있었다. 마치 그를 반기는 카드섹션으로 보였다. 집을 향해 급히 걸었다. 헐떡이며 들어서는 수재와 수민에게 말했던 기억이 났다.
“누가 쫓아오냐?”
놓쳐버린 시간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혁은 급한 마음에 두 계단을 넘겨 디디며 단숨에 계단을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