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중인 벚꽃어명이라도 내린 듯숨죽여 고요한 거리사월의 팽팽한 대립상처의 정글을 지나하얀 외침 속을 걷는다입김에도 데일 듯여린 꽃망울들잎을 열지 못한 채 떨고 있다그들의 세상에도무슨 일이 있었을까밤은 차라리 어둠이 아니라 하네곧 닥쳐올세찬 비바람
- 김연주(수민)
묵언중인 벚꽃어명이라도 내린 듯숨죽여 고요한 거리사월의 팽팽한 대립상처의 정글을 지나하얀 외침 속을 걷는다입김에도 데일 듯여린 꽃망울들잎을 열지 못한 채 떨고 있다그들의 세상에도무슨 일이 있었을까밤은 차라리 어둠이 아니라 하네곧 닥쳐올세찬 비바람
너도 반백 나도 반백염색으로 가려도 반백한 바퀴 돈 세월도 반백소름끼치게도 공평한세월의 흐름은, 그래서더 야속하게 다가온다이길 수 없는 세월의 물발순응하며 아름답고 포근히편안하게 떠내려 가야한다세월 저편의 사라진 모습들오늘을 살아가는 군상은누군가의 추억이 될 것이다기억하고픈 모습으로 살아야더 애틋하고 아련할 것이다세월을 기쁘게 다듬어보자
빛에는 그림자가 없다빛이 그림자를 만드는가왕대숲 음지에 눈 뜬 맥문동 씨 한 알보라색 꽃대에 검게 익은 열매가 빛을 낸다 송곳니 없이 뻗은 촘촘한 침입봄장마에 숨 틔운 죽순 눈이 찔린다천근성 대나무 뿌리가 울타리 넘는마늘 밭 시름 덜어 좋다는그늘 진 가슴이 웃는다빛을 싫어하나 빛을 먹어야 사는 그림자 사랑 맥문동 씨 한 알인연 따라 온 빛
세상 캔버스에하늘이 큰 붓 들고 그림을 그리시네물감은 흰색 하나산도 들도 나무도단색의 물감으로꾸밈없이 단순하게그리고 있네거침없는 붓질저 장엄한 진경산수화에 가슴 깊은 경탄 말고 무엇을 더하랴
보이지 않으나함께하신다는믿음바른길 지키며험지를 견디어 내는힘언제나 함께하는당신의 자상한사랑보이지 않게이끌어 주시는삶의 이정표
오랜만에 들른 고향집 창고녹슨 농기구들 틈에안퐁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비단 홀치기 틀* 만났다어머니 우리 어머니각다분했던 삶이거기에 다 앉아 있다수많은 점이 찍힌 비단에한 올 한 올 엮는고된 노역(勞役)의 작업여학교 교직 생활 삼십이 년마음이 느슨해질 때마다단단히 홀치고 다그친나의 교육철학 원본이었다달가닥달가닥어머니의 비단 홀치기 작업 소리깊은 울
이슬은 새벽의 눈알처럼맑고 깊어울음이 터지기 직전이다박꽃이 오는 길마다 이슬은 자라차라리 경건하다가뭇하게 영근저 물방울들을 박꽃은 어쩌지 못하고 잠시잠깐 들여다볼 뿐이다그런 박꽃의 농도아득하게 깊어 멀리까지 번져나가는 저건, 슬픔이 끼었기 때문이다마침내 오해처럼 해가돌아오고이슬은 새벽을 데리고 북두칠성까지는 가야 하는데지상의 모서
양파에 양배추 돈육에 춘장 넣고다글다글 볶다 보면 자장의 완성이라 잘 삶아진 면발 위에 한 국자 올리면 향긋하게 후각 미각 모든 걸 자극하네이쪽 저쪽 이념보단 먹고 사는 게 우선인데 의원 뱃지 목매어 눈치쌈만 하고 있고자장처럼 모두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멀게만 다가오는 시장길에 서성인다.
살아온 무게 떼어내는날 선 시간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폐를 잘랐다마취에서 깨어나면서가슴이 잘려 나간 듯 꼼짝 할 수 없었다.많이 아파요 많이 아파요 한 몸이 되어 버린 상처절규하듯 살아 돌아와 몸부림쳤다.울음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링거액잊은 듯 깨끗이 나아서 살아서 행복하라.새벽처럼 밝아오는 삶병원 시계는 정확히 돌아가고 하루,
산수유 마른가지에노란 꽃망울이 빼꼼봄 인가, 서재 정리라도 해야겠다한번 더 보겠다고 꽂아 둔 책들 세월을 감당하기 버거워빛 바랜 표정들로 수런거린다 모서리 한켠에서 보란 듯 떨어지는 화보집 한 권 눈길이 가 펼쳐든다첫 장을 여니, 화가가 반갑게 손을 내민다시선이 붓끝에 머물자선과 색감오묘한 표정과 짙은 감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