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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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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칠 때마다 섬은 납작 엎드렸다
태풍이 불 때 소중한 자식들을 품고
미끄러운 바닷속 바위를 꽉 잡았다
그녀의 품엔 꽃과 나무와 나비와 새들이 숨어 있었다 
햇살이 비칠 때 그녀는
그들을 숲과 바닷가와 오솔길에서 놀게 했다 
폭우가 칠 때면 행여 꽃봉오리 다칠까
나비 날개 젖을까 밤을 새웠다

어느 날 육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섬의 머리채에 튼튼한 쇠기둥을 박고 
케이블카를 올렸다
산책로를 만든다고 숲을 파헤치고
섬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길을 냈다
휴양지를 만든다고 백사장을 뒤집었다 
제일 먼저 둥지 잃은 물새가 울었다
꽃밭이 파헤쳐지자 나비가 떠났다
산호초가 병들자 물고기도 떠났다
마지막으로 산새들이 울며 작별을 고했다

사람들은 섬을 수탈하고 폐허를 만들었다
섬은 죽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직 동굴 깊숙이 숨겨둔 박쥐와
절벽 높이 도망간 산양과
사람들이 온 후 나무 둥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어린 부엉이가 걱정되어 질긴 목숨을 단단히 붙잡았다

사람들이 말했다 이제 너는 쓸모없다고
풍성한 숲도 눈부신 백사장도 야생 양귀비 꽃밭도 
사라진 지금 살아서 무엇 하냐고
그들은 모른다
아직 서쪽 작은 갯벌에 꼬마 게가 숨어 살고
부러진 나무 잎새 뒤에 부전나비가 자라고 있는 것을 
숲에서 엄마를 부르며 우는 아기 동박새 울음을
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벌거숭이 숲이 울창해지고 백사장에 모래가 차기를 
울며 떠났던 새들이 돌아와 둥지를 틀고
지느러미가 회복된 고래가 물장구를 칠 날을 
파도가 칠 때마다 헐벗은 가슴을 치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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