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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강낭콩

한국문인협회 로고 천윤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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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지지대를 타고 쑥쑥 올라가는 덩굴
주인장 발걸음을 먹고 꼬투리가 열리고
한 뱃속 형제들끼리 경쟁하며
몸집을 부풀리는 동안에
태백산 기운을 머금은 듯 늠름한
콩꼬투리에 새겨지는 호피무늬
선명하게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더 단단하게 매달리는 콩꼬투리
얼마나 영글었나 속을 들여다보려 해도
배 갈라보기 전에는 알지 못하고
아니 갈라본다 하여도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어찌 알 수 있겠어
호랑이가 강낭콩이 된 건지
강낭콩이 호랑이가 된 건지
한참을 생각하며 숲속을 걸어갔다
발걸음 멈추고 다시 생각해 봐도 도무지 떠오르는 답이 없어 
그냥 뒤돌아 오는데
콩꼬투리 속에서 호피무늬가 어슬렁 걸어 나온다

애초에 끙끙 속 태워, 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작은 세상의 비밀이라 해도
어찌 다 알 수가 있던가?
사나운 속내를 감추며 단단해진 몸에
호피무늬를 새겨 넣는 과정을 거쳐
파실파실한 식감으로 태어나
애호가들의 입맛을 일순간 사로잡는 힘이 있는 
호랑이강낭콩*의 이치를 상세히 알 수 없다 하여도 
세상은 항상 앞으로 가는 일을 멈추지 않아
어쭙잖게 여문 생각들은 다 비워내
파실파실한 정 하나 내 안에 품으면 좋으리


*껍질에 호피무늬가 있는 강낭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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