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채 만발한 날 찾아온 딸우리 엄마 등이 왜 이리 작아졌지 눈물을 흘리는데마당은 온통 주황으로 물들었다 입추 말복을 지나 부는 바람휘어진 등에 꽃이 피고 꽃씨가 터지고 내일을 만나려는흔들림 속 속삭임 딸아,네가 큰 거란다
- 김형옥
범부채 만발한 날 찾아온 딸우리 엄마 등이 왜 이리 작아졌지 눈물을 흘리는데마당은 온통 주황으로 물들었다 입추 말복을 지나 부는 바람휘어진 등에 꽃이 피고 꽃씨가 터지고 내일을 만나려는흔들림 속 속삭임 딸아,네가 큰 거란다
매화꽃 곱게 피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그윽한 매향(梅香)을 만끽도 하기 전에 여린 싹을 틔우며 초하(初 夏)는 어느덧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는 인류가 뿌린 재앙일진데 낮달을 끼고 흐르던 구월의 쪽빛 하늘과 주둥이 돌아간 모기와 함께 간 처서는 옛 이야기…정녕 얼마나 더 흘리고 훔쳐야 청아하고 상큼한 그대 오시려
햇살을 물고매달려 있는 나뭇잎들가을을 철들게 하는 계절살갗을 태웠던 폭염의 시간도 지나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열매들이 익어 간다하지만 거리에는 실업의 삶들이 안갯속을 걷는다젊음의 고단함경제불황 코로나까지 겹친 이중고의 아픔 속에서 설 곳 잃은 이땅의 청년들가슴이 아려 온다세상살이 어지럼증 잡힐 듯 잡히지 않는&n
어스름 내리는 하굣길학교에서 집까지는 십오 리큰길 버스에서 내리면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짐자전거 세워두고정류장 앞 가게에서 산흰우유 하나 내 손에 쥐여주고꼴깍거리는 목넘김 소리마저 흐뭇한 아버지의 눈눈비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고교 3년 동안아버지는 끄떡없이그 자리를 지키셨다도심의 밤 10시나도 흰우유 하나 사들고 자율학습 마치고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K는 문득 다들 늙고 추레 해진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 중 누구는 눈을 잃어버렸다고 하고 누구는 귀를 잃어버렸으며 또 누구는 간이며 쓸개까지도 다 잃어버렸다고 씁쓸하게 웃는 대목에 이르러 K는 갑자기 저 자신도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다행히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이 아직 그대로
산비둘기 우는 소리먼 계곡에서 들려오면꽃향기 따라 저물어 가는 하루둥둥 뜬 꽃잎 껴안고들판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따라시간이 흐르는데달빛 내려앉은 정원 어디쯤 어느 돌 틈에서귀뚜라미가 우는가별빛 총총히 내리는 푸른 밤 자귀나무 아래 누워시들어 가는 꽃잎을 보네
쉼도 없이 달려온 시간알몸뚱이세상 헛된 욕망태우며 또 태우며가슴 깊숙이 흐르는 회한의 빛 물초월한 듯 고요에 드는 평화로움저,아름다운 순응이여!
낫질 고단한 일상우쭐대며 지나가는 떼 바람이 거만하다나를 분리해 내려는 몇 겹의 바람이내 안의 나를 뒤쫓는다바람 빠진 풍선마냥향방을 가늠 못하는 좌충우돌의 언어와 단어의 유희 속쉽게 읽히는 문장에 숨어 지낸다숱한 밑동 잘림의 계절을 땅에 묻고바람 위에 선 부추 뿌리만도 못한 농부놀이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단풍 쏟아질 때쯤내가 네 곁을 떠나고네가 내 곁에서
돌멩이 하나 강물에 던졌다강변에 펼쳐지더니 밤다운 밤눈썹달이 갈참나무 정수리 위로 막 지나가고어둠을 물고 반짝이는 저 반딧불 좀 봐밤을 감았다 떴다까마득한 그 여름밤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개똥벌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니유년이곳으로 재잘재잘 걸어서 소풍 왔던 기억그 길은 아득하기만 한데쉼없이 물살은 흐르고더 큰소리로 소용돌이치는 여울물 소리목
조금씩 새어 나오는 숨소리사랑의 마음 행여 들키려나마음의 뒤꿈치를 들어야 했다내 마음 동그랗게 부풀더니 가리고 숨겨도 새어 나와커다란 울림의 종소리 된다천 리 밖까지 울려 퍼지던 애끓는 내 사랑의 종소리 그대의 가슴까지 전달되려나.